봄에 나는 없었다 후기

slobsur·2022년 2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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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봄에 나는 없었다
작가 : 애거사 크리스티(Christie, Agatha)
출판사 : 포레

봄에 나는 없었다를 읽었다. 읽게 된 계기는 유튜브 1사라를 보고 나서였다. 해당 영상엔 책 큐레이터 정지혜님이 나오셨다. 고민을 책으로 처방해주는 분이었다. 이 분이 사연을 듣고 처방한 책이 바로 '봄에 나는 없었다'였다.

이 글에는 봄에 나는 없었다에 대한 내용이 많습니다.

요약 및 후기

시대 배경은 1938년쯤으로 추정. 장소는 영국과 터키이다.
주인공은 조앤 스쿠다모어이다. 영국인에 손주까지 본 중장년 여성이다. 주인공은 막내 딸 부부를 보기위해 영국에서 바그다드로 간다. 다시 돌아오는 길에 천재지변으로 터키의 한 역에서 1주정도 체류한다. 시간을 보낼만한 것도 없다. 그러면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기억들은 대부분 남편과 자식, 지인들과 관련된 것들이다. 근데 떠오르는 기억들은 안 좋은 것뿐이다.
그 예로 몇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딸 에이버릴이 엄마에 대해 성토하는 부분이다.

"엄마가 우리를 위해 실제로 뭘 하시는데요? 엄마는 우리를 씻겨주지 않아요. 그렇죠?"
"그래......"
"음식을 만들어주지도 머리를 빗겨주지도 않아요. 전부 유모가 하죠. 유모는 우리를 재워주고 깨워줘요. 엄마는 우리의 옷을 만들어주지도 않아요. 그것도 유모가 하죠. 우리와 함께 산책을 나가는 것도..."
"그래, 내가 유모를 고용해서 너희를 돌보게 하잖니. 내가 유모의 봉급을 준다는 얘기지"
106p

생략되었지만 뒤에 봉급은 아빠가 주지 않냐고 얘기가 이어진다. 조앤 자신은 아이를 잘 키웠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육아는 전적으로 유모가 한다는 점을 에이버릴이 꼬집는다. 그치만 주인공은 그걸 일관되게 부정한다.

주인공의 지인인 레슬시 셔스턴과 로드니 사이에는 묘한 말과 행동을 자주 표현된다.
다음은 지인 중 한 명인 레슬리 셔스턴의 묘 앞. 조앤과 남편(로드니)은 레슬리에 대해 얘기한다. 그리고 남편의 신경쇠약 증세가 나타난다.

그녀의 눈길을 좇으며 로드니가 천천히 비문을 읽었다.
"찰스 에드워드 셔스턴의 사랑하는 아내 레슬리 에이델라인 셔스턴, 1930년 5월 11일 영면에 들다. 신께서 그들의 눈물을 닦으소서."
그리고 말없이 가만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레슬리 셔스턴이 이런 차가운 대리석 밑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지독하게 이상해. 셔스턴 같은 타고난 멍청이가 아니면 누가 저런 구절을 택할까. 레슬리는 평생 울어본 적이 없을 텐데."
"당신이라면 어떤 구절을 택하겠어요?"
"레슬리의 묘비에? 모르겠어. 시편에 나오는 구절 아닐까? 당신 앞에 흡족할 기쁨이*, 그 비슷한 말인데." 
(중략)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조앤, 내가 바라는 천국은 말이야, 우스운 공상 같지만 난 가끔 이런 상상을 해. 출근하려고 하이 스트리트를 내려가다 좁은 골목에서 벨 워크로 꺾어 들어가는데 어느 날 눈앞에 계곡이 있는 거야. 초록 풀밭과 양옆으로 나무가 우거진 야트막한 언덕들도 보여. 그 계곡은 죽 거기 있었어, 마을 한가운데에 비밀스럽게. 복잡한 하이 스트리트에서 그 계곡으로 들어간 나는 어리둥절해서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하겠지. 그때 사람들이 다가와 아주 가만히 말해주는 거야, 당신은 죽었다고......"
(중략)
집으로 가려고 남편에게 팔짱을 끼며 걸음을 재촉했는데, 그 순간 그의 코트 단춧구멍에 꽂혀 있던 철쭉꽃이 레슬리의 무덤가로 떨어졌다.
"어머, 이거 당신이 꽂았던 철쭉꽃이에요." 조앤은 말하면서 꽃을 집으려서 몸을 숙였다. 하지만 로드니가 급히 가로막았다.
"그냥 둬. 레슬리 셔스턴을 위해 그냥 두자고. 어쨌든... 우리의 친구였으니까."

* 시편 16장 11절, "삶의 길을 몸소 가르쳐주시니 당신 모시고 흡족할 기꺼움이, 당신 오른편에서 누릴 즐거움이 영원합니다"를 연상함.

로드니는 레슬리에 대해선 행동이 묘하다. 마치 연인과 할법한 행동을 한다. 지인과 연인의 선을 넘나드는(?) 말과 행동이 자주 나온다. 하지만 조앤은 전혀 의심하는 눈치가 아니다.

조앤은 아들이 변호사가 되길 원한다. 왜 되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듯이 보인다. 위에서 이어 농부가 되고 싶은 아들(토니)과 그걸 부정하는 조앤(어머니, 주인공)이다.

"아빠가 한때 농부가 되고 싶어하셨다는 게 사실이에요?"
"농부? 아니, 그런 일 없었다. 아니 그래, 오래전에 그랬지. 그건 그냥 소년들이 하는 공상 같은 거였어. 하지만 우리 집안은 대대로 변호사 집안이잖니. 우리 법률사무소는 이 지역에서 꽤 유명하고. 넌 그걸 자랑스러워해야 해. 네가 거기 들어갈 수 있다는 걸 감사해야지."
"하지만 전 거기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동아프리카에 가서 농장을 할 거예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마라, 토니. 그런 허무맹랑한 헛소리는 두 번 다시 꺼내지도 마. 당연히 넌 법률사무소에 들어가야지! 네가 외아들인데."
"아뇨, 변호사가 되고 싶지 않아요. 아빠도 알고 계시고 약속도 하셨어요."
조앤은 깜짝 놀라서 토니를 빤히 보았다. 아들의 차가운 단호함에 기가 질렸다.
그녀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자식들이 하나같이 달려들어 버릇없게 굴다니.
"다들 내게 왜 이러는지 모르겠구나. 아빠가 계셨어도 이럴 수 있을까!"
99p

아들은 농부가 되고 싶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래서는 안된다고 한다. 하지만 납득할만한 이유는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아들은 진짜 동아프리카로 떠난다. 동아프리카로 떠나버린 아들에 대해 남편(로드니)과의 언쟁이다.

 로드니는 아들이 행복하지 않을 위험에 대한 부담이라고 대답했다.
 조앤은 그가 행복 운운하는 것이 가끔씩 못 견디겠다고 말했다. 다른 생각은 안 하느냐고, 삶에 행복만 있느냐고, 그보다 훨씬 중요한 다른 것들도 있다고 말했다.
 로드니는 그게 뭐냐고 물었다.
 "이를테면 의무감이 있죠." 조앤은 한동안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로드니는 의무감 때문에 변호사가 될 수는 없다고 못박았다.
 조앤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면서 그런다고 약간 불끈해서 받아쳤다.
 "토니의 의무는 아빠를 기쁘게 하는 거지 실망시키는 게 아니잖아요."
 "난 실망하지 않았는데"
 당연히 조앤은 소리쳤다. 하나뿐인 아들이 지구를 반 바퀴나 돌아야 갈 수 있는 먼 곳에 살아서 만날 수 없게 됐는데 그럼 그게 기쁘냐고 말했다.
 로드니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 토니가 많이 보고 싶다는 건 나도 인정할게. 토니는 밝고 유쾌한 아이였지. 맞아. 난 그 아이가 그리워..."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에요. 당신이 단호해야 했다고요!"
 "결국 토니의 인생이야. 조앤. 우리 인생이 아니라고. 우리 인생은 끝났고 좋든 나쁘든 마무리됐어. 활동적인 부분이 그렇다는 뜻이야 (후략)"
 174p

조앤은 아들이 변호사가 되길 원한다. 그치만 아들은 그럴 생각이 없어보인다. 그렇기에 남편이 나서서 아들을 변호사가 되도록 이끌길 원한다. 하지만 남편또한 그럴 생각이 없어보인다. 그렇기에 남편을 설득하지만 납득할만한 주장은 없다. 행복보다 의무감이 답한다. 무슨 의무가 있어서 아들이 변호사가 되어야 하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조앤이 눈치가 없어 보이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다음은 남편과 조앤의 대화

"오, 조앤 이러지 말자고. 우리가 아이들한테 어떤 일을 하는지 생각해봐. 우린 아이들에 대해서 뭐든 안다고 생각하잖아. 온전히 우리 손아귀에 잡힌 무력하고 어린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최선을 알고 있다는 듯 굴지."
"당신은 그 애들이 자식이 아니라 노예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네요."
"노예 아닌가? 우리가 주는 음식을 먹고 입혀주는 옷을 입고 시킨 대로 말하는데! 그게 아이들이 지불하는 보호의 대가 아니각? 하지만 아이들은 매일매일 자라서 자유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지."
"자유요? 그런 게 있기나 해요?"
조앤이 경멸하듯 묻자 로드니는 천천히 무거운 어조로 대답했다.
"아니, 없는 것 같아. 당신 말이 맞아, 조앤..."
그러더니 그는 어깨를 늘어뜨린 채 느릿느릿 방에서 나갔다.
108p

갑작스레 바뀐 어조, 그리고 늘어뜨린 어깨 등을 보면 뭔가 이상함을 감지해야 한다. 하지만 조앤은 딱히 뭘 하진 않는다.

이런 식으로 과거의 안좋은 기억들을 계속 생각하고 떠올린다. 그러다 스스로에 대해 깨닫게 된다. 믿고 싶은 사실보다는 진실을 마주한다.
진실보다는 편안한 것을 사실이라고 믿었다는 점을 깨닫고 인정한다. 믿고 싶은대로, 혹은 믿고 싶은 사실만을 믿었다는 것을 깨닫고 인정한다. 자식들이 불행한건 조앤이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인정한다. 남편과 레슬리는 서로에게 사랑의 감정이 있었음을 깨닫고 인정한다.

 참된 진실보다는 유쾌하고 편안한 것들을 사실이라고 믿는 편이 수월하기 때문에. 그래야 자신이 아프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 몰랐다.
 에이버릴에 대해 그랬다. 그 아이가 겪었던 고통에 대해 그랬다.
 조앤은 에이버릴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202p
 딸은 집에서 불행했다. 그리고 그녀가 불행했던 건 조앤이 딸에게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주기 위해 조금도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3p
하지만 레슬리 셔스턴은 아름답지도 젊지도 않고 되는 일도 없는 여자였다. 지친 얼굴, 우스꽝스럽게 한쪽이 일그러지는 미소를 짓던 레슬리 셔스턴. 로드니가 그런 여자를 사랑했다고ㅡ정말 열렬하게 사랑해서 1미터보다 더 가까이 다가갈 수조차 없었다고ㅡ인정하는 것이 싫었다.
(중략)
그날 애셀다운에서 둘 사이에는 그런 감정이 오갔고, 조앤은 그것을 느꼈다. 그랬기 때문에 성급히, 그렇게 겸연쩍게 도망치듯이 물러났던 것이다. 그녀는 알면서 단 한순간도 인정하지 않았다...
214p

그렇게 터키에서의 옛 기억을 떠올리고 인정하기 싫었던 사실들을 인정한다. 그리고 남편에게 너무 가혹했음을 깨닫는다. 돌아가서 남편을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영국에 복귀한다. 다짐과는 다르게 조앤은 이전과 같은 모습을 보인다.

 에이버릴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영국과 독일이 전쟁을 벌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조앤은 정신을 차렸다.
 "기차에서 만난 부인도 그런 말을 하더구나.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어. 아주 지체 높은 부인인데,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아는 듯했어. 난 믿기지가 않는구나. 히틀러는 감히 전쟁을 일으키지 못할 거야."
 "글쎄요, 모르죠..." 에이버릴이 생각에 잠겨 대꾸했다.
 "아무도 전쟁을 바라지 않는단다. 얘야."
 "네. 하지만 사람은 때로 바라지 않던 일을 당하기도 해요."
 "나는 이런 대화가 몹시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을 집어넣거든." 조앤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 말에 에이버릴은 미소만 지었다.
 242p

딸과의 대화에서 이전처럼 믿고 싶은대로 믿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다정하게 미소를 지었다.
"당신이 갑자기 헨리 숙부님의 제안을 거절하고 농사를 짓겠다고 했던 때 기억해요?" 조앤이 말했다.
"그럼, 기억하지."
"내가 못 하게 한 게 다행이었지 않아요?"
257p

농사를 짓고 싶어서 농사를 꿈꾸던 남편에게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농사를 시켜주긴 커녕 못 하게 한게 잘한 것 아니냐고 확인을 한다. 이렇게 소설은 마무리된다.

총평

주인공은 타인의 시선을 엄청 의식하는 사람, 명예를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다. 농부의 아내보단 변호사의 아내가 되고싶어 남편의 꿈을 좌절시킨다. 농부의 어머니보단 변호사의 어머니가 되고 싶어 아들의 꿈을 강요한다. 그리고 자식들 또한 타인들의 시선에선 좋은 평을 받는다. 본인이 생각한 목적대로는 되었다. 그치만 아이러니하게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여 저러한 행동을 했지만 정작 타인들은 조앤을 우러러 보거나 부러워하지 않는다.

이 글을 보며 주인공과 비슷한 사람들이 생각났다. 누구나 이런 사람이 생각나지 않을까 싶다. 저 사람은 왜 저 나이가 되도록 변하지 못 했는지 이해가 할 수 없다. 지능 수치는 생각보다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사회성, 의지, 눈치 등도 지능과 연관이 있다는 글을 본 것 같다. 선천적으로 저러한 부분에 대한 지능이 낮다면 그럴 수 있는 걸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고 하면 차라리 인정하기 쉽다. 선천적으로 저렇다면 바뀔 수도 없는 것이지 인정하면 된다고 생각이 든다.

영화나 소설 등 이야기들을 보고 납득할 수 없는 캐릭터를 보면 항상 생각한다. 내가 혐오하는 저 캐릭터 같이 말하거나 행동하진 않았을까?하고 나의 과거를 돌아본다. 그리고 저러지 말아야겠다 다짐한다. 금방 까먹긴 하지만 무의식 중엔 남을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내 행동이 달라질 거라 생각한다. 이야기들의 장점이라 생각한다. 이런 부분이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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