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손잡이 안 잡고 등교하게 만든다는 그 과정이 어느새 반이나 지나왔다.
정신 차려보니 핀토스였다. 알고리즘 주간을 갈무리하고 C Lab 과정에 진입하면서는 봄이 절정이었다. 이미 동기들과도 다들 친해졌고, 벚꽃이 발 한 걸음마다 흐드러졌다.
확실히 C Lab의 초중반부에서 내가 조금 해이해졌었고 딱 그만큼 속으로 괴로웠던 것도 같다. C Lab의 마지막 프로젝트인 프록시 주차에 들어서야 다시 맘을 잡았다. 부족한 동기를 보듬고 자신의 것을 나눈 친구들과 늘 내 곁에 있어 줬던 친구들에게 감사하다.
C Lab도 이렇게 힘들었는데, 핀토스는 대체 어떨 것인가. 핀토스 직전에는 마치 10월의 고3마냥 손톱을 심하게 뜯고 이런 저런 우환이 앞서 맘이 힘들었다. 그랬던 두려움의 대상 핀토스였는데 눈 떠보니 벌써 네 차례의 핀토스 프로젝트 중 두 개가 끝났고 조 편성이 바뀌었다. 밤 바람이 시원해서 오늘 그런 생각을 했다. 음. 벌써 이렇게 됐다니? 벌써? 정말? (아아, 글의 초입인데 이미 초두에 던진 자문에 대한 답을 해버렸다~)
하지만 또 동시에 마음의 지표가 전향되면 나는 답을 금새 번복해야 한다. 덜컥 이렇게 이곳에서의 학업이 "이렇게 끝나버린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어쩐지 지난 시간이 아득히 길었다고 느껴진다.
본격적으로 취준에 대한 압박감을 느낀다. 나는 그간 성장했음을 내가 알지만, 그것이 타인의 기준에 대었을 때에 충분한가에 대해 현실적인 눈을 떠야하는 것이다.
지금 복기하면 rb-tree와의 첫 대면이 가장 막막했고 오히려 proxy web 구축이 재밌었다. rb-tree의 작동법을 완전히 암기해야 구현이 가능한 수준이었기에 거의 해당 주차가 끝날 즈음에서야 나는 진정으로 구현에 대한 접근을 시작했었다. 언젠 안 그랬었냐만은 시간이 참 부족했다.
의욕을 조금 잃었는지 malloc lab 시기에는 스스로에게 당당할 만큼의 집중을 쏟지 못했다. 하지만 malloc을 구현하는 과제 역시 어려웠지만 이후 내용들을 이해하는데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어 이 역시 흥미롭게 느꼈다. 특히 말록 랩 기간에는 CS:APP의 저자가 직강하는 카네기멜론 컴퓨터공학과의 수업을 인강으로 들었다. (학부 학생들의 질문의 수준이 정말 높아 감탄하며 들었던 기억이 있다...)
proxy lab 주간에 들어서며 나름대로 이를 악 물었다. 보통의 3명짜리 팀이 아닌 총 인원 2명의 팀에 배정되었는데, 이것이 어쪄면 도약이었다. 같은 팀이었던 친구와 더불어 다른 친구들에게 적극적으로 나의 학업 과정을 공유했고 도움을 받았다.
내용적으로도 웹과 네트워크는 이전의 과정에서 다루지 않은 새로운 결이었고, 그래서 몰입력 있게 임할 수 있었다. 그 감사함과 자신감의 힘으로 핀토스의 문지방 앞에 섰다.
핀토스 첫 주차가 정말 재밌었다. 핀토스의 project 1 내용이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핀토스의 project 1 주차는 온전히 적극적으로 팀 플레이를 하는 방식을 채택했었는데, 이것이 많은 영감을 줬다. project 1 주차에는 정말로 "할 만 하다!"고 웃으며 말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다음 주차의 초입에 몸이 한 번 또 짜자작~ 갈라짐을 시작으로 웃음기는 가셨다. 잊을 만 하면 그렇게 되는 나의 나약한 몸뚱아리에 매우 큰 원망감을 느꼈다.
어쩌면 project 2 주차에서야 진정으로 "핀토스"의 시작이었다. 문자 그대로의 운영체제 구현 공부가 아닌, 모두가 두려워하던 그 멀고도 개념적인 시간 말이다.
우린 화목하기만 하던 r반 강의실의 분위기가 이전과 사뭇 달라짐을 이야기했다. 이번 프로젝트에 들어서부터는 방대해지는 과제의 범위와 수직 상승한 난이도에 순탄하기만 하던 나의 팀 플레이에서부터도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느끼기 시작했다. 1주차와는 차원이 달라진 2주차의 심도에, 공부를 안 한 것도 아닌데 도무지 어렵고... 긴 고민과 자괴감이 지나면 창 밖에 새벽이 어슴푸레 밝고...
또한 여러 협력사들의 발표를 들으며 퇴사 후 잠시 잊고 있던 현실감이 부쩍 목전으로 당겨져왔다. 그간 어려워도 감사하고 즐거운 공부 시간이었는데 한두 번 씩 이제 깨어나라고 찬물을 끼얹는 것 같은 작용을 했다.
이곳에서 내가 일취월장하였음을 공식적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사실은 마음만큼 "내 페이스대로" 되는 일이 아닌 성 싶다. 자기충만감이 넘치던 퇴사 직후 입소 직후의 내 일지를 보면 어쩐지 세 달 전의 내가 조금 멀어보인다. 해가 시나브로 뜨거워지며 옷도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마음 상태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으나 어쩐지 그 반대다.
핀토스에 대해선 구태여 한두 마디로 정리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꼈다. 핀토스가 가장 재밌었다는 선배 기수 분의 말에 공감한다. 그러나 이것을 전부 다 꼭꼭 씹어 소화하는 것이 쉽지 않다.
잠깐 도망쳐있었던 코테에 대한 대비도, 면접에서 이뤄질 이곳에서의 학업에 대한 질의를 준비하는 일도 더이상 미룰 수 없다! 게으른 생각이 들 때엔 그간 회사에 다니면서 느꼈던 막막함이나 답답함을 떠올려야 겠다.
이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늘상 나누는 말이 있다. 우린 서로가 없었다면 이곳에서의 교육 과정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란 말이다. 나에게 친절하고 다정한 모든 친구들에게 감사한다. 이곳에서 공학 지식 이외의 것도 얻어갈 수가 있다고 생각하면 내가 매우 다복한 사람임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