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오전 클라이밍을 하러 갈까 했지만 오늘은 휴식. 별다른 이유는 없다. 어제 집에 늦게 오기도 했고... 그냥 좀 쉬고 싶었다. 나만 우YB 선생님 없어...
오늘은 14시부터 17시까지 「굴」, 18시부터 20시 30분까지 「애수」 연습에 참여한다. 이외의 연습 작품은 내가 출연하지 않는 작품이므로 패스. 「굴」은 쓰루 좀 돌고 디테일 잡는 시간을 가졌다. 템포나 뉘앙스는 괜찮고, 연출적인 디테일. 그리고 내일 공연 전에 테크니컬 리허설을 해야 할 것 같다. 이 작품과 관련해서 좀 체크해야 할 부분이 몇 군데 있었는데, 그 부분들에 대한 것들을 전부 털었다. 아니 근데 갑자기 내 팔의 근지구력을 요구하시는 겁니까?? ...사실 그렇게 막 요구되는 뭐시깽이는 아니긴 하다. 15분 동안 양초를 들고 있을 수도 있지 그치. 내 역량의 범위 내의 것이니 아무렴 어때. 다른 무엇보다 「굴」과 「적들」이 연속되어 있는 날의 전환에 대한 이슈가 가장 신경쓰였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도 오늘 처리되었다.
「애수」는 출연하기는 하지만 짧게 나오고 끝이라, 내가 고려해야 할 건 딱히 없었다. 오늘은 뭐... 연습 못 나온 배역에 대한 대타 해주는 게 더해지긴 했지만. 이 작품은 나보다는 다른 분들이 신경써서 잘 해주셔야지. 나는 얹혀가는 것뿐이다. 그러고보니 내일의 「폴렌카」 단역 앙상블은 누가 하려나. 난 그저 앙상블 작품에 대해서는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임할 뿐이다. 그것들까지 부담을 느끼면 못해 못해...ㅋㅋ
아 근데 뭐라고 해야 하나, 이번 공연은 학회 공연이라서 그런지 지금까지의 극단 공연하고는 사뭇 다른 느낌인 부분이 많다. 난 좋은 것 같다. 솔직히 이번 기획은 살짝 촉박하게 정해진 거라 좀 걱정했는데, 걱정했던 것에 비해 잘 풀리는 느낌. 진짜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이게 맞나...하고 있었는데, 지금까지의 공연 중 준비가 가장 원활하게 진행된 것 같다.
오늘은 계묘년 계해월 정유일, 음력으로는 10월 23일. 전반적으로 그럭저럭 잘 흘러갔다. 우YB 선생님도 만날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하지만 그건 뭐 어쩔 수 없는 거니까.
날 것 그대로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일 수도 있겠다. 사회성으로 포장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 때로는 그런 이야기를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이가 있다는 것. 가령 운동과 자해에 대한 간단한 고찰이라거나, 그런 이야기를 적당히 늘어놓을 수 있는.
생각해봤는데, 최근 몇 년동안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는데 여전히 드러나는 특성이 있다. 지나친 이상화와 평가절하. 나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방어 기제 중 하나다. 인간에 대해서도 집단에 대해서도 상황에 대해서도. BPD에 대한 의심의 가장 큰 이유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상대에 대해 이상화된 사고를 할 때도 평가절하된 사고를 할 때도 외부에는 중립적으로 표현하려고 해왔다. 그 편차가 클수록 상대에게도 혼란을 주고 여러 모로 좋지 못할 것 같아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게 터져 나올 때가 있다. 사실 요즘은 이상화된 사고는 잘 감추지도 않는 것 같다. (왜 긍정적이어 보이는 태도마저 숨기려 하는지 의문시할 수 있는데, 난 긍정적으로 보지 못할 때와의 편차를 크게 두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보면 상대는 이상화된 반응을 기대하게 되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의 나의 반응에 실망하곤 하거든.) 그 표현의 시행착오 기간에 알게 된 사람들은 보통 나에 대해 좋은 것도 싫은 것도 감정 표현을 잘 안 하는 (혹은 못 하는) 사람으로 인식한다. 요즘은 그 시절보다는 기본적인 감정 표현은 남겨둘 수 있게 되었다.
학교에서 단체로 한 검사에서 불안, 우울, 분노 수치가 지나치게 높게 나와 상담실에 불려 갔던 고등학생 때에 비하면 여러 가지로 완화된 상태이긴 하다. 그 흔적이 SKT의 CLOUDBERRY에 들어 있었는데, 서비스 종료되면서 그냥 날려 버렸다. 왜 다운로드 받아두지 않았냐고? 글쎄. 그건 그냥 그렇게 된 거다.
그런 건 있긴 하다. 누군가 약속 시간보다 늦었을 때 그에게 화를 내지는 않지만, 약속 시간 몇 분 전부터 속으로는 계속 의식하고 있다. 그러지 않으려고 약속 시간 조금 전부터는 아예 시계를 안 보고 있기도 하고. 하여간 이러한 특성들이 여전히 남아있기는 하구나. 10여 년 전 나는 주장했다. "치료 받아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라면 나 혼자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고, 나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면 치료 따위 효과 없을 것이다." 이제 와서는, 글쎄. 정밀 검사든 전문가 상담이든 받아봤으면 뭔가 달랐을까. 그래도 요즘은 자해 같은 건 하지 않는다. 하지... 않는다? 사실 앞서 살짝 언급된 "운동과 자해에 대한 간단한 고찰"이 이와 관련된 대화였다. 자신을 혹사시킬 정도의 과격한 운동은 자해와 다르지 않다. 안전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식의 막무가내가 되지는 말아야지. 아무튼 요즘은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목이나 팔에 손톱 자국이 생기진 않잖아(...).
앞서 극장 연습
파트에서 진짜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이게 맞나...하고 있었는데
라는 텍스트를 작성하는데, 몇 주 전에 있었던 살짝 불쾌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신은 일과 관련된 고민을 하는 사람에게 "꼭 직장을 가져야 해요? 아르바이트도 있잖아요."라는 발언을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니면 적당히 아무 중소기업이나 들어가서 일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꼭 원하는 회사에 들어가야 해요? 아무 직무로나 시작하는 방법도 있어요." 같은 발언을 한다거나. 솔직히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적당히 아무 중소기업에 들어가는 걸로 해결될 일이었으면 그렇게 고민하고 있지도 않았겠지. 근데 특정 누군가에게만 그딴? 식으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는 언행을 하더라. 그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사람은 가끔 타인에게 가장 상처인 부분이나 컴플렉스인 부분을 아무렇지 않게 건드리곤 한다. 어쩌면 나 또한 언젠가 그런 적 있겠지. 그게 참 어렵다. 보통은 타인이 그런 부분을 건드려도 "몰라서 그랬겠지" 하고 가볍게 넘어가려고 하지만, 그렇기에 상대는 그 사실을 계속 모르고... 그게 좀 반복되면 그들의 관계는 점점 어긋나게 될 것이다. 누군가 나의 불편한 지점을 건드렸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 게 최선일까. 너무 티를 안내고 웃어 넘기면 상대가 나의 불편함을 모르기에 계속 건드리게 될 수 있고, 그렇다고 너무 불편한 티를 내면 분위기가 너무 싸해질 것 같기도 한데... 적절한 지점을 모르겠다.
가끔은 분위기 싸해지더라도 할 말은 하는 게 나은 것 같기도 하고. 물론 난 그런 상황에서 욱해서 싸우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긴 하다. 지난 여름인가 가을인가 언저리에도 지인이 다니는 교회 놀러갔다가 목사 사모님이랑 싸운 적 있다. 근데 그 사람은 좀 불쾌한 언행을 하긴 했어. 말로는 "불편하면 말 안해도 돼"라고 하면서 계속 캐묻는다거나. "너는 이렇게 선하고 독실한 신자인 나에게 어떻게 그렇게 대할 수 있니?" 하는 듯한 그 특유의 불쾌함. 난 도저히 그걸 참을 수 없었다. 지원사업 참여하면서 정서적으로 좀 더 안정된 이후의 시점이었다면 모를까. 솔직히 앞서 말한 그 불쾌함을 주는 언행을 하고 다니는 사람도 지원사업 전에 만났으면 싸웠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지금 시점에서도 적당히 넘길 자신이 없긴 해. 마주치지 말아야지...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