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사상에도 '영토'의 개념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모순되는 것들이 끊임없이 대립하며 세력 경쟁을 한다. 영토의 기본 전제는 분리다. 기본적으로 분리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위험한 것은 분리를 넘어선 단절이다. 나는 내 머릿속에서 서로 싸우고 있는 것들 중 결코 어떠한 것에도 다른 것을 압도하는 힘을 주고 싶지 않다. 차라리 존 롤스가 말한 '무지의 장막'을 펼치겠다.
사람들에게는 각자 정의가 미치는 범위, 즉 정의의 범위scope of justice가 있다. 누구나 정의를 추구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의가 미치는 영역은 한계선이 있다. (...) 수전 오포토우의 말을 빌리면, 이렇게 "어떤 사람이나 집단이 도덕적 가치, 규칙, 공정성이 적용되지 않는 외부세계에 존재한다고 인식할 때 도덕적 배제moral exclusion가 일어난다." (p.147)
이 책은 인류가 살아남는 것을 넘어 최상위 포식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친화력'이라는 새로운 진화론적 관점을 제시한다. 이전에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왜 사람들이 허무에 빠지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쓴 적이 있는데, 이 책을 읽고 조금은 공감하게 되었다. 내가 지금 이런저런 감정을 느끼는 것, 어떤 행동을 선택한 이유 같은 것들이 결국은 수십만 년 전부터 내려온 무언가에 의해 결정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부쩍 하곤 한다. 그럴 때 허무를 느끼지는 않지만, 고통스러운 감정을 느낄 때면 좀 짓궂다는 생각이 든다.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난 냉철한 이성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지금도 이성의 힘을 더 믿는 편이지만, 이제는 '이성만이'에서 '만'을 빼고 생각한다. 결국 세상을 살아가는 건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늘 불안하고 뭔가에 흔들리고 있는 존재이고, 그 마음을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공감하고 함께 있어주는 건 이성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그래야 그 안에서 문제를 찾고 이성에게 해결책을 내놓으라고 종용할 수 있지 않을까.
최근 개인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술 한잔 함께 해준, 내 옆에 있다고 말해준 친구들에게 너무 고맙다. 그 마음이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원래 다정한 존재로 진화했기 때문이라고 해도 상관 없다. 우리가 그렇게 설계되었다고 해도 모두가 그렇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마음 하나하나가 내겐 모두 특별하다. 잊지 않고 보답하겠다.
선물 받은 책이다. 얼마만에 받는 책 선물인지 모르겠다. 내 독서관에 큰 영향을 준 유현준 건축가는 책 선물 받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고 한다. 자기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 같아서라고 하는데, 나는 정반대의 이유로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난 이 책을 어떤 마음으로 읽었을까, 어느 부분을 좋아했을까, 왜 그랬을까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 조금은 더 잘 알 수 있게 되는 것 같아 좋다. 기회가 된다면 이 책에 대한 얘기도 함께 나눠보고 싶다.
이 책은 저자의 10개월 간의 수영 입문기다. 나도 새벽 수영반을 6개월 정도 다닌 적이 있어 많이 공감하며 읽었다. 유아풀에서 음파음파를 배우고, 처음 물 속에 몸을 던질 때 여지없이 가라앉는 나를 보며 참 당황스러웠던게 기억난다. 어느 정도 익숙해진 다음에도 계속 물을 먹으며 수영을 하는데 대체 내가 이 새벽에 왜 이렇게 물을 먹고 있나 회의했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 지나니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그렇다. 내게 이 책은 단순히 수영을 배우는 것에 대한 얘기가 아니었다. 한 사람이 어떤 일을 새로 시작하고, 별다른 진전 없음과 똑같은 일의 반복을 견뎌내고 아주 조금씩 나아가 결국은 변화를 만드는 얘기인 것 같다. 똑같은 매일 속에서 계속 뭔가를 배우면서.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뭔지 모를 힘을 얻게 된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