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23년 8월

신두다·2023년 9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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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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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아무튼, 술

  • 김혼비 | 에세이 | 링크
  • 처음 '아무튼' 시리즈를 읽은 것은 21년 10월 정혜윤 작가님의 아무튼, 메모였다. 그때 정말 재밌게 잘 읽어서 다른 시리즈도 읽어봐야겠다 생각했었는데, 뭔가 끌리는 책이 없어 미루던게 한참이 지났다. 근데 아무튼 시리즈에 술에 대한 얘기다? 참을 수 없지.
  • 이 책은 술에 대한 작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읽으면서 더 자주 생각하는 건 '나의 기억'이었다. 내 첫 술,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 까먹은지 오래지만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여러 술자리들, 숙취에 찌들어 다시 마시면 사람이 아니라며 점심에 해장을 하고 저녁에 다시 만나던 친구들(이제는 그러기 힘들다), 뭐 그런 것들이 계속 떠올랐고 재밌었다.
  •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술을 좋아하시나 모르겠다. 아마 아래 문장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면, 나와 비슷한 사람일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으며 추억 여행을 해보시는 것은 어떠할지.

    그렇다. 오늘의 술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늘 어제 마신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내일을 위해 오늘도 마신다. (p.104)


36. 오래 준비해온 대답

  • 김영하 | 에세이 | 링크
  • 초반에 로마에서 겪었던 에피소드를 읽을 때는 너무 공감이 되어서 속으로 정말 깔깔거리며 웃었다. 지금껏 약 11개 나라의 수 많은 도시를 여행하며 가장 최악이었던 곳을 꼽으라면 나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로마를 고를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었던 곳이다. 인종차별 비슷한 것도 당했던 것 같고.
  • 그나마 다른 도시에서 좋은 기억을 쌓았지만 그래도 이탈리아는 내게 '굳이'라는 단어를 붙이기 가장 좋은 나라가 되었다. (굳이 이탈리아를 가?) 평생 휴가 우선순위에서 밀릴 것이란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이탈리아에 가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작가님처럼 시칠리아 어디 작은 마을에 한달 정도 살다보면, 내가 아씨씨에서 느꼈던 그 좋은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을텐데.

반면 젊은이들은 자신의 취향도 내세우지 않으며 낯선 곳에서 받는 새로운 감흥을 거리낌없이, 아무 거부감 없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사람들이다. 늙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세상과 인생에 대해 더이상 호기심을 느끼지 않게 되는 과정이다. 호기심은 한편 피곤한 감정이다. 우리를 어딘가로 움직이게 하고 무엇이든 질문하게 하고 이미 알려진 것들을 의심하게 만드니까. (p.297)

  • '나이를 먹으면 뭐가 좋냐'는 질문에 나는 '취향이 생기는 것'이라고 답한다. 예전에는 취향이랄게 별로 없었다. 그게 음식이건, 사상이건, 사람이건 말이다. 다 나쁘지 않았고, 다 알아보려 했고, 다 잘 지내보려고 했다. 근데 지금은 싫어한다고 말할 음식도 생겼고, 어떤 것에는 굳이 시간을 할애하지 않으며, 또 모든 사람과 잘 지내겠단 욕심도 버렸다. 취향이 생긴다는 게 다른 취향엔 벽을 세운다는 것과 꼭 같은 말은 아니지만, 가끔은 나도 세상으로 열린 창문을 조금씩 닫고 있는 걸까 무섭다.

37. 다정소감

  • 김혼비 | 에세이 | 링크
  • 아무튼, 술과 같은 작가님이다. 아무튼, 술의 프롤로그만 읽고 너무 재밌어서 확신에 차 바로 주문했다. 솔직히 아무튼, 술 만큼 재밌게 읽지는 않았다ㅎ 그래도 확실한 건 색깔있는 생각을 하는 분이다.

38. 이기적 유전자

  • 리처드 도킨스 저, 홍영남/이상임 역 | 과학 | 링크
  • 지난 달에 읽었던 인지심리학의 연장이다. 워낙 유명한 책이고 낯선 분야라서 한 번 도전하는 마음으로 샀는데, 의외로 굉장히 술술 읽혀서 놀랐다.
  • 이 책을 읽으면 허무주의에 빠진다거나 그게 아니라 적어도 우리의 자유의지에 굉장한 회의를 품게 된다는 악명을 들어 쫄았었는데, 막상 읽으면서는 왜 사람들이 그랬을까 물음표를 상당히 많이 띄웠다. 우리가 자기 복제자인 유전자에 의해 조종되는 껍데기일 뿐이라 메시지가 오독되지 않도록 도킨스 박사는 상당히 자주 해명했던 것 같은데.. 나는 오히려 아래가 이 책이 가지는 가장 큰 의미가 아닌가 싶다.

    생물 물질이 이처럼 개별 운반자 속에 포장되는 것은 뚜렷이 도처에서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생물학자가 이 세상에 등장하여 생명체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을 때 그 질문 대부분은 운반자, 즉 생물 개체에 관한 것이었다. 생물학자가 처음 인식한 것은 생물 개체였던 반면, 자기 복제자, 즉 유전자는 생물 개체가 사용하는 장치의 일부로 받아들여졌다. 생물학을 다시 올바른 길로 돌려, 역사상에서뿐만 아니라 그 중요성의 측면에서도 자기 복제자가 우선이라는 것을 우리 스스로 명심하기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노력을 들여야 할 것이다. (p.480)

  • 나는 오히려 인간 문화의 산실이라고 생각했던 것 중에 사실 그 시작은 그렇지 않았던(정확히는 유전자가 '정책을 수립'했던) 흥미로운 사례들이 많다고 느꼈고, 그래서 재밌게 읽었다.

39. 미래가 있던 자리

  • 아네테 케넬 저, 홍미경 역 | 인문 | 링크
  • 책 제목과 목차 정도만 보고 알라딘에서 바로 샀는데, 올해 읽었던 책 중 가장 실망스러운 책 중 하나였다. 이 책은 '중세 유럽의 역사에서 발견한 지속 가능한 삶의 아이디어'라는 부제로 크라우드 펀딩, 미니멀리즘, 공유 경제, 리사이클링을 얘기한다. 그런 아이디어가 현대에 와 생긴 것 같지만, 이미 중세에도 있었다는 것이다.
  • 알쓸신잡3 피렌체 편에서 두오모 성당의 돔 지붕을 완성한 브루넬레스키에 대해 김영하 작가님이 했던 말을 정말 좋아한다.

    예술가들 보면 바로 그 직전에 성공한 모델을 계속 연구해요. 작년에 이게 요새 대박인데, 연구하고. 문학도 작년에 등단한 스타 작가 연구하는데, 진짜 크게 도약하려면, 아주 오래된 것에서 영감을 가져와야 해요. 그래야 사람들이 새롭게 생각해요. 엉뚱한 고전 또는 한 30년 전에 흘러간 노래를 가져온다거나. 고전을 재생하는게 그 시기(르네상스)에만 일어나는게 아니고, 잘 보면 크게 도약한 예술가들은 자기 당대를 좀 싫어하고 진부해하고 위의 선배 아주 미워하고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그러고 브루넬레스키처럼 로마로 가버리는 거에요. 거기서 '야 이거 되겠는데? 여기는 되는데 천 년 전에 된게 왜 안되지?' 라고 갖고 왔을 때 큰 혁명을 일으켰잖아요.

  • 이런 순간을 만나길 기대했는데.. 몇몇 부분은 좀 억지 같기도 했다. 가령, 그때의 리사이클링이랑 지금의 리사이클링의 맥락이 같다고 할 수 있나? 이 책의 저자는 중세사를 가르치는 교수인데, 중세사에 대해 연구는 했고 책을 써야하긴 하는데 뭘 쓸까 하다가 결국 키워드 장사를 한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내 취향이 아니었다. 억지로 다 읽긴 했는데, 다음부터 책 살때는 서점에서 꼭 보고 사야지.

40. 결혼•여름

  • 알베르 카뮈 저, 장소미 역 | 에세이 | 링크
  • 올해 가장 실망스러운 책 2다. 나는 왜 4월에 읽었던 크리스티앙 보뱅의 환희의 인간을 읽을 때의 교훈을 잊었던가. (똑같은 프랑스인 작가의 에세이다) 까뮈라는 명성에 별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특히 노벨상을 받고 유명해지기 직전의 에세이가 포함되어 있다는 얘기는 참을 수 없었다. 뭐든 그 사람이 성공하기 전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건 내게 매우 흥미로운 주제니까.
  • 그렇다고 이 책이 원래 별로인 책이란 건 아니다. 나는 시를 읽지 않는다. 근데 이 책은 시적인 책이다. 그러니 나와 취향이 안 맞는거라고 하는게 맞다. 프랑스의 에세이가 다 이런건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조심해서 신중히 내 시간을 할애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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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의 교훈

  • 온라인에서 책을 사기 전에 서점에서 꼭 읽어보고 사자. 나는 책이 재미없다고 중간에 덮지 않기 때문에(다 안 읽으면 독서노트에 못 쓰니까) 내 소중한 시간을 더 소중히 생각해야 한다.. 재미없는 책 끝까지 읽는 것도 미련한 거라고는 하는데, 난 아직 내 상황에서는 동의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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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B SaaS 회사에서 Data Analyst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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