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23년 7월

신두다·2023년 8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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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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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얼굴 없는 중개자들

  • 하비에르 블라스, 잭 파시 저, 김정혜 역 | 경제/경영 | 링크
  • 원자재 중개 업체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나니 내가 몰랐던 세계가, 그것도 엄청나게 큰 세계가 더 있었다는 것을 알고 겸손해졌다. 미국의 옥수수 대농장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트레이더가 옥수수 가격을 조정하면 국제적으로 어떤 파급을 미치는지에 대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딱 그 정도만 예상하고 이 책을 골랐었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던 그들의 영향력은 단순히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 확실한건, 그들은 시대의 격변이 만든 기회의 순간을 기가 막히게 읽어냈다. 그리고 엄청난 리스크를 감수하고 행동했다. 읽는 내내 '허허, 참. 진정한 야수의 심장을 가진 사람들이구만'이란 생각을 자주했는데, 간혹 High risk High return의 수준을 넘어선 무모해보이는 결정들도 서슴없었다. 이렇게 시대를 읽고 내가 가진 모든 걸 잃을 수 있어도 Risk-taking하는 점은 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윤리적으로는 해서는 안 될짓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칭찬은 잘 못 해주겠지만.
  •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을 마음이 드시도록 서문의 일부를 인용한다.

    원자재 중개 업체의 영향력은 경제에만 미치지 않는다. 그들은 세계 전략 자원의 흐름을 마음대로 움직이고, 이런 지배력에 힘입어 정치 무대에서도 존재감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현대 사회에서 돈과 권력의 유착 관계를 이해하고 싶다면, 석유와 금속이 자원 부국에서 어떻게 흘러나오고, 돈이 재계 거물과 부패 관료의 주머니로 어떻게 흘러가는지 이해하고 싶다면 원자재 중개 업체에 대해 이해하면 된다.


31. 더티 워크

  • 이얼 프레스 저, 오윤성 역 | 사회과학 | 링크
  • 부제는 비윤리적이고 불결한 노동은 누구에게 어떻게 전가되는가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더티 워크의 정의는 아래와 같다. 책에선 더티 워크(Dirty Work)의 사례로 교도관, 미군 드론 조종사, 도살장 노동자, 시추선 노동자를 다룬다.

    에버렛 휴스의 말을 빌리면, 더티 워커는 "우리 모두의 대리인"으로서 사회의 다수 시민이 암묵적으로 동의한 불미스러운 일을 수행하는데도 위임자인 우리는 더티 워커에게 거리를 두고 그들을 멸시한다. ... (p.322)

  • 나는 이 책을 읽고, 이래서 사람은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도저히 내 활동반경 안에서는 생각조차 해볼 수 없는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그 전에는 고민도 하지 않고 답했을 질문에 새로운 고민을 해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책이다. 예를 들면 이런거다.

    실제로 도축 노동은 잔혹성과 사디즘을 조장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잔혹성에 대한 책임은 어느 쪽이 더 무겁게 져야 할까? 동물을 기절 시키고 죽이는 노동자인가(페타의 일부 회원은 도축 노동자를 중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니면, 그러한 대가에 대해 고민 한 번 하지 않고 고기를 먹는 소비자인가?
    패키릿은 소고기 정육공장을 그만 둔 후 한 친구에게 이 질문을 던졌다. "그 친구는 노동자의 책임이 더 크다고 열변을 토했다. 동물의 목숨을 빼앗는 물리적인 행동을 그들이 수행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패키릿은 반대 주장을 펼쳤다. "이 끔찍한 일을 다른 사람에게 위임한 채 먼 거리에서 이득을 보고, 그러면서 그에 대한 책임은 회피하는 사람들이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 이 사회에서 기회가 가장 적은 사람들이 떠맡는 도축노동에 대해선 더더욱 그렇다. (p.330)

  • 보이는 것만 보고 누군가를 욕하기로 결정하는 건 아주 쉽다. 하지만 결정하기 쉽다고 해서 그 결정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쉬워보일수록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의심해야 한다.

32. 아버지의 해방일지

  • 정지아 저, 이진원 역 | 소설 | 링크
  • 읽는 내내 아버지 생각이 나서 가끔 어느 부분에선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아니, 영화건 소설이건, 엄마아빠 얘기하는 건 반칙 아닌가 괜히 투덜도 대면서. 좋은 소설이다.
  • 불과 내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개인이 뭔가 신념이란 걸 가지기가 어려운 시대였지 않나 싶은데(꼭 거창한게 아니어도, 난 가끔 식당에서 혼술밥을 하며 불과 내 대학생 초반까지는 혼밥이란 것이 아예 없었다는 것에 놀라곤 한다), 군사정권 시절에 그것도 좌우 문제면 오죽했겠나. 그게 무엇이건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살아가려는 사람은 대단한 것 같다. 그 신념을 지지(혹은 묵인)해주는 가족은 더 대단한 것 같기도 하고.

33. 어머니의 유산

  • 미즈무라 미나에 저, 송태욱 역 | 소설 | 링크
  •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에 대한 얘기다. 김영하 작가의 추천 도서라 읽어보았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는 아버지에 대해 애틋함이 깔려있는데, 이 소설은 다르다. 미워하면서도 결코 떨어질 수 없고, 벗어나고 싶지만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그런 것에 대한 얘기다.
  • 어머니의 죽음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두 자매가 갈듯 하면서도 자꾸 살아나는 어머니를 보며 투덜대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그 끈질긴 생명력을 보다보니 '아니, 도대체 언제 죽는거야?'라는 생각을 나까지도 하게 된다. 그만큼 심리묘사가 훌륭하단 얘기다.
  • 좀 뜬금없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난 '젊음의 불확실성이 주는 가능성'의 힘에 대한 생각을 자주했다. 아마 화자가 50대고 유쾌한 상황에 있는 것은 아니며, 내가 50대가 되었을 때 할법한 고민들도 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지금은 쥐뿔도 없지만 5년, 10년 뒤의 나는 달라져 있을 수 있다는 근거없는 자신감은 젊음이 주는 특권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아직 난 젊어서 참 다행이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34. 인지심리학

  • 존 폴 민다 저, 노태복 역 | 인문 | 링크
  • 이 책을 인터넷으로 구매하시기 전에 꼭 서점에 가서 크기와 양을 보고 결정하시길 권한다. 책을 받아보고 깜짝 놀랐다. 마치 대학생 때 고대정치사상 수업에서 플라톤의 국가를 교재로 사서 처음 봤을 때의 기분과 같았달까.
  • 이 책을 읽으며 인지심리학에 대해 내가 참 협소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심리학'은 상담을 하거나 심리를 파악하려는 학문 정도겠거니 생각했고, '인지심리학'에 대해서는 지난 달 독서노트에서 말했던 것처럼 너무 비즈니스적인 효용 같은 측면에서만 생각했던 것 같다.
  • 실제로는 범위가 훨씬 방대함에 놀랐다. 물론 저자가 말했듯 인지심리학의 범위가 명확히 정해져있는 것은 아니지만, 뇌과학/신경과학은 기본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그래서 책 띠지에 'AI 시대에 가장 필수적인 학문'이라고 써놨나 싶다.
  • 원제는 How to Think 이고, 부제는 Understanding the way we decide. Remember and make sense of the world 이다. 제목 그대로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이해하는지, 어떻게 생각하고 결정하는지에 대한 얘기를 한다. 구체적인 이론에 대해서는 내가 딱히 여기서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근데 이 말은 하고 싶다. 내가 보는 세상은 내가 만든 표상으로 이루어져있고, 그러니 겸손해야하고,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고. 그래야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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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B SaaS 회사에서 Data Analyst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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