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23년 10월

신두다·2023년 11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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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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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우리가 운명이라고 불렀던 것들

  • 슈테판 클라인 저, 유영미 역 | 과학 | 링크
  • '우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이다. 책을 요약하여 적을까 하다가 대신 기억하고 싶은 몇 가지 인용만 해둔다.

    계획에 따라 엄격한 논리로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키는 사람은 꼼꼼하고 심오할지는 몰라도 다양한 아이디어를 길어 올릴 수는 없다. (...) 반면 창조적인 사고는 연관성을 인식하고 기존의 재료로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낸 것이다. 자연이 신체의 설계도를 가지고 이미 모범을 보인 것처럼 말이다. 창조적 사고를 위해서는 외부로부터의 자극이 필요하다. 우리가 제어할 수도 없고 예언할 수도 없는, 우리의 사고에 미치는 영향들, 여기에 우연이 작용한다. (pp.136-7)

    논리적 사고가 있어야 우리의 착상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를 점검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2차적 단계다. 처음에는 언제나 우연에 대해 열려 있는 개방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p.138)

  • 집단 내 다양성이 중요하다는 말에는 평소 공감하고 있었으나 그 이유는 막상 명확히 대지 못 했던 것 같다. 아래 말이 좋은 대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커다란 사회가 작은 하위집단으로 나뉘어 있으면 새로운 것은 각각의 공동체 안에서 너무 큰 경쟁에 휩쓸리지 않고 퍼져나갈 수 있으며, 새로운 것이 기존의 것보다 더 우월할 경우 먼저 자신의 집단에서 자리매김을 한 다음 전체 사회로 퍼져나갈 확률이 높다. 카를 지그문트는 말한다.

    "다양성은 진보에 도움이 된다. 다양성은 우연이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모든 종류의 독점은 진화를 힘들게 한다." (p. 146)

  • 우연히 일어난 많은 일에서 이유를 찾으려 애쓰기 보단, 우연의 힘을 믿고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즐겁게 지켜보자.

47.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 정지아 | 에세이 | 링크
  •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쓰신 정지아 작가님의 첫 에세이다. 좋아하는 작가님인데다 술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참을 수 없는 제목까지 가졌으니 안 살 수 없는 책이었다.
  • 재밌게 읽었다. 에세이를 읽다보면 어떤 글은 작가의 경험을 듣고 있지만 실은 그로부터 내 경험을 회상하는데 쓰이기도 하고, 어떤 글은 작가의 경험에 그대로 빨려 들어가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는데 쓰이기도 한다. 이 책은 내겐 후자였다.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라며 술을 마실 때 가끔 작가님의 여느 술자리가 생각날 것도 같다.

48.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

  • 송길영 | 인문 | 링크
  • 송길영 작가님의 이전 책을 인상깊게 읽어서 이번에 신간이 나오자마자 바로 사서 읽어봤다.
  • 내게 송길영 작가님의 메시지가 주는 힘의 근거는 (스스로 Mind Miner라고 하시듯) '빅데이터에서 캐낸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공감가는 많은 말로 이루어져 있지만, 메시지가 충분한 근거와 함께 던져지고 있다는 느낌은 받지 못해 아쉬웠다. 작가의 '당위'가 책에 온통 넘실거리는 느낌이었다. (책 제목이 시대'예보'가 아니라 시대'예언'이 되어야하는 게 아닌가..?)
  • 작가님이 말한 '핵개인'이 요즘 흔히 말하는 '엠제트네 엠제트야!'의 그 엠제트에 가까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49. 안녕, 주정뱅이

  • 권여선 | 소설 | 링크
  •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를 살 때 딱 제목만 보고 함께 샀다. 권여선 작가님의 소설집인데, 신기하게도 안에 "안녕, 주정뱅이"라는 제목의 소설은 없다. (내가 본 단편집은 보통 책 제목이 단편 중의 하나던데)
  • 난 제목만 보고 가벼운 느낌의 "주류 문학"을 상상했는데 그보단 좀 무거운 책이었다. 좋은 소설들이다. 이 책을 읽고 권여선 작가님의 소설이 있는 책을 한 권 더 샀다. 조만간 읽게 될 것 같다.

50. 역사의 역사

  • 유시민 | 인문 | 링크
  • 부제처럼 정확히는 History of "Writing History"이다. 서양과 동양 골고루 '역사 서술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역사가랑 역사학자를 구분해서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신기했다.
  • 역사에 남는 이들은 결국 그렇게 남겨질만한 자신만의 철학적 배경이나 신념 같은 것이 명확히 있다. 이 책을 보면 역사가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어떤 역사가의 신념은 지금 내가 보기에도 너무나 위대하고, 또 어떤 것은 말도 안될 정도로 오만해 보이기도 했다. 여하튼 역사의 역사에 남았다는 것은 각자의 시대에서 나름의 쓸모가 있었다는 뜻일 것이다.
    • 참고로 위대하다고 느낀 역사가는 에드워드 H.카이다. 반면 랑케의 "있었던 그대로의 역사"관에는 도저히 동의할 수가 없다.
  • 역사를 좋아한다면 꼭 한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좋은 패키지 여행이었다.

    끝으로, 이 책의 한계를 지적해 둔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이미 느꼈겠지만, 이 책은 이름난 왕궁과 유적과 절경 사이를 빠른 속도로 이동하면서 잠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인증 사진을 찍는 패키지여행과 비슷하다. (...) 하지만 패키지여행은 짧은 시간에 적은 비용을 들여 중요하고 이름난 공간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며, 이 책도 그런 점에서 쓸모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pp.318-9)


51. 평균의 종말

  • 코드 로즈 저, 정미나 역 | 사회과학 | 링크
  • 이 책도 정말 재밌게 읽었다. 우리가 당연시 여겨왔던 사회의 시스템이 사실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아는 건 충격적이면서 동시에 즐거운 일이다. 우리가 '평균'을 대하는 태도, 그로부터 나온 규범과 현재의 교육 제도나 회사의 채용/평가/관리 시스템까지, 이 모든 것의 근원이 궁금하지 않은가? 심지어 그 근원이 단 한 사람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면? 개인적으로는 정말 충격적인 사실들이 많았다.
  • 이 책의 메시지가 주로 '교육'에 포커싱되어 있어서 마케팅도 그렇게 된 것 같은데, 꼭 교육에 관심이 있어야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 이 책은 나를, 다른 사람을 어떻게 하면 더 잘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함부로 우리를 무언가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에 가두지 않고, '마땅히 걸어야할 것으로 정해진 길'이 아닌 각자에게 가장 잘 맞는 길을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하는 것 같다.
  • 요즘 세상이 바뀌어가는 걸 보고 있자니 누군가의 편의를 위해 개발된 '평균'이라는 것의 효용이 이제는 정말 다해가고 있는 것 같다. 뭐든 나아가려면 기존의 것을 밟고 가야 하는데, 이 '평균' 만큼은 아주 다시는 발을 못 붙이도록 모두가 함께 단단히 밟아주었으면 좋겠다.

52. 서사의 위기

  • 한병철 저, 최지수 역 | 인문 | 링크
  • 『피로사회』를 쓴 철학자 한병철 작가님의 신작이다.
  • 저자는 '정보'와 '이야기'를 구분해 이 둘에 대해 계속 얘기한다. 이 둘의 차이를 비유하자면 (지극히 개인적인 비유이지만) 삼성과 애플의 광고 컨텐츠의 차이와 비슷하지 않나 싶다. 삼성은 자사 제품이 얼마나 빠르고 기능이 더 좋은지를 주로 얘기하지만, 애플은 주로 "Think Different" 같은 서사를 더 많이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 저자는 "현대인이 정보와 소통에 도취되어 몽롱하고", "우리는 더 이상 소통의 주인이 아니며", "소통은 점점 더 외부에 의해 유도된다"고 말한다. 서사(이야기)의 위기란 바로 이런 시대적 맥락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 재밌었던 건 '상업화, 도구화된 스토리텔링'의 위험을 말하는 부분이었다. (저자는 '스토리텔링'과 '이야기'를 구분해서 말한다) 데이터 속에서 늘 스토리를 찾는 일을 하며 사는 나에게도 생각할만한 점을 주는 것 같다.

    스토리를 판다는 것은 결국 감정을 판다는 말과 같다. (...) 감정은 이성을 거치지 않고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그럼으로써 인지적 방어 반응조차 피해가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자신의 것으로 전유함으로써 전 반성적 층위의 삶을 점령해 버린다. 그럼으로써 의식적 통제와 비판적 성찰을 피해간다. (p.134)

    (...) 스토리텔링은 어떤 장소의 특별한 이야기마저 상업화한다. 그러한 이야기는 그 장소에서 생산되는 상품에 서사적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상업적으로 최대한 사용된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이야기는 공동체에 정체성을 부여함으로써 그 공동체를 형성해 나간다. 반면 스토리텔링은 이야기를 상품으로 만들 뿐이다.

  • 어려운 책이었다~

53. 이주하는 인류

  • 샘 밀러 저, 최정숙 역 | 인문 | 링크
  • 이 책의 메시지는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인류의 이동의 역사적 사례를 나열한 책이다.

    나는 이주가 강제와 비강제 또는 그 사이에 있는 모든 경우를 포함한 인간 경험의 핵심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p.269)

  • 400쪽이 넘는 책인데 읽는 내내 지루해서 힘들었다. 일단 서양의 관점에서 서양의 이야기만 다루고 있다보니 그 상세한 지명이나 역사를 잘 모르는 내가 공감하며 따라가기도 너무 어려웠다. 또 저자의 메시지를 뒷받침하기 위한 그저 사례집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흥미롭지가 않았다. 위에서 인용한 말은 269페이지의 것을 가져왔지만, 사실 저 메시지는 서론만 읽어도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결론은 이미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더 새로울 것이 없는데 거기에 사례를 채우기만 하는 느낌이랄까. '정보의 수집'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기대를 가지고 내내 읽었다.

그래도 10월은 좋은 책을 많이 만나 너무 즐거운 한 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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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B SaaS 회사에서 Data Analyst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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