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라는 환상

HYUNGU, KANG·2025년 3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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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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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로서 업을 시작한 처음 몇 년 동안, 여느 사람과 같이 나 또한 ‘시니어’ 또는 ‘사수’라는 존재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었다.

3년쯤 지나자 그 환상은 허물어졌는데, 연차란 그저 흘러간 시간에 붙은 숫자에 불과할 뿐
그것이 곧 업에 대한 진심이나 헌신을 보증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같은 시간을 투자했다고 해도, 그 안에서 얻어지는 질적 깊이는 사람마다 명백히 다르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무언가를 배운다.
이 배움이란 단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마주치는 필연적 과정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의 삶을 흔드는 어떤 사건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그 배움의 순간들은 우리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었던 신념을 무너뜨리기도 하고,
이로부터 비롯된 철학적 고민은 자기 자신을 더 견고하고 단단한 존재로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배움이란 결코 끝나지 않는다.
우리의 의식이 깨어 있는 한, 배움은 끝없이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그렇다면 깨어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업’에 있어서는 어떻겠는가?

자신의 업에 있어 배움을 등한시하고 수동적인 자세를 갖는 순간,
그 사람은 안광을 잃고 얼어붙은 눈을 한 채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손가락만 움직이는 존재로 전락한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고 귀찮음을 느끼며,
얕은 수준의 지식으로 ‘인지’ 하고 있는것을 마치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버린다.

연차는 쌓여만 가고, 자신이 시니어의 자리에 이르렀다고 스스로 믿게 되지만,
정작 모르는 것이나 실수를 마주했을 때 이를 되짚고 성찰하는 의지는 사라진다.
결국 그 사람은 길 한복판에 멈춰 선 거대한 코끼리가 되어 다른 이의 길까지 가로막게 된다.

이러한 올바른 태도와 성찰이 결여되었을 때 남는 것은,
자신이 그저 그 자리에서 소비한 ‘시간’뿐이다.

문제가 생기면 이렇게 자신이 소비한 시간과 감정만을 앞세우는 존재를 나는 시니어 호소인이라 부르려 한다.

시니어는 연차나 감정을 내세우지 않는다. 상황을 파악하고 본질(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끊임없이 지식을 추구하며, 스스로를 복기하고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모든 분야에는 그 본질을 관통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피카소의 황소 시리즈를 본 적이 있는가?
그림 속 소는 점점 형태가 단순해지면서, 마침내 본질만을 남기고 나머지를 덜어낸 채 추상화된다.

이처럼 무언가를 창조할 때, 우리는 먼저 끝까지 더해보고 덧붙여 가면서,
결국엔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부차적인지 깨닫게 된다.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할 줄 알게 되면, 비로소 사물에 대한 분별력과 통찰력을 얻게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 자리로 나아가는것은, 부족함을 알고 스스로를 향한 끊임없는 질문과 올바른 자세로부터 시작된다.

시니어는 없다. 경험의 수준이 다른 그러한 사람들만 있을 뿐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을 나는 좋아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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