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SangHun Park·2023년 8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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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마음 가는 대로 살자

인생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을 물질이나 지위, 사회 통념이나 타인의 시선, 어떤 이념이나 명분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두었다. 마음이 내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들으면서 행복한 삶을 스스로 설계했다. 계속 그렇게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고 싶다고 한다.

내 인생은 나의 것

평생 공부하는 사람,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 돈을 버는 데 골몰하는 사람, 일만 하는 사람, 권력을 좇는 사람, 신을 섬기는 사람 등 백 사람이 있으면 백 가지의 삶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화려해 보여도 자유의지로 만들어낸 삶이 아니면 훌륭할 수 없다.
나는 내 삶을 스스로 설계하지 않았다. '닥치는 대로'열심히 살았지만 내가 원하는 삶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산 것은 아니었다. 지금부터라도 내 삶에 대해 더 큰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고 싶다. 살아가는 모든 순간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에서 의미와 기쁨을 느끼고 싶다.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부터라도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살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해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이 세상을 더 훌륭하게 만드는 데 보캠이 되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내 자신도 더 훌륭해져야 한다.

왜 자살하지 않는가

왜 자살하지 않으냐고 카뮈는 물었다. 그냥 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사는 이유를 찾으라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삶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오늘 하루 그 의미를 충족하는 삶을 살았는지 판단해야 한다. 정답은 없다. 우리는 각자 정체성이 다른 자아들이다. 누구도 타인에게 삶이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한다고 대신 결정해줄 수 없다. 삶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중요한 건 나름의 답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 삶은 훌륭할 수 없다. 아무리 많은 돈과 큰 권력을 가지고 있어도,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라고 해도, 의미를 모르는 삶은 비천하고 허무할 뿐이다. 숱한 고난을 받고 살다가 모진 핍박을 받아 죽을지라도, 스스로 뚜렷한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며 살았다면 훌륭한 인생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죽음이라는 운명

'죽음 다음에 무엇이 있을까? 만약 내일 죽는다면 오늘 무엇을 할까? 잘 죽으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것일까?' 혼자 이런저런 대답을 생각해본다. 답을 꼭 찾아야 할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남은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은 단순히 삶의 끝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죽음은 삶의 완성이다.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스토리가 크게 달라진다.

남자의 마흔 살

마흔 살이 되던 새해 첫 날 아침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그 생각이 났는지, 아니면 그 생각 때문에 잠을 깼는지 분명하지 않다. 하필이면 왜 그때였는지 모르겠다. 꼭 그때였어야 할 이유는 없다. 어쨋든 그날 아침 인생의 끝을 얼핏 보았다. 무엇인가 내게 속삭였다. "질풍노도 같았던 네 청춘의 열정은 바닥이 드러났다. 인생열차의 엔진은 식어버렸다. 이젠 오르막을 달릴 수 없다. 내게 남은 길은 평지와 내리막뿐이다"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늙고 병들고 죽는다. 그런데 일반적 명제에 불과했던 이 말이 그날 아침 문득 존재의 자각으로 바뀌었다. 시간이 더는 지천으로 남아돌지 않았다. 삶이 무겁게 다가와, 오래 잊고 지냈던 질문을 다시 던졌다. 왜 사느냐? 남은 삶을 어떻게 살려 하느냐?

나도 남들처럼 훌륭한 인생을 살고 싶었다. 어떻게 사는 인생이 훌륭할까. 일단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하고 싶어서 마음이 설레는 일을 하자. 그 일을 열정적으로 남보다 잘하자. 그리고 그걸로 밥도 먹자. 이것이 성공하는 인생 아니겠는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

쓸모 있는 사람 되기

글을 잘 쓰려면 어휘를 많이 알아야 한다.
어휘를 늘리기 위해 추천하는 책 리스트

  • 박경리 토지
  • 조정래 태백산맥
  • 황석영 장길산

사회에 폐를 끼치지 않고 살려면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착한 사람,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지만 기본은 '쓸모 있는 사람'이다.

즐거운 일을 잘하는 것

배부른 돼지와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비교하지 말자. 철학자는 그 자체로 훌륭한 것이지 돼지와 비교해서 훌륭한 게 아니다. 배가 고파야만 철학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아무리 잘난 철학자도 먹지 않고는 철학을 할 수 없다.

인생의 성공은 멀리 있지 않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그것을 남들만큼 잘하고, 그 일을 해서 밥을 먹고살면 최소한 절반은 성공한 인생이다. 돈 때문에, 남의 눈을 의식해서,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서, 또는 사회의 평판 때문에 즐겁지 않은 일을 직업으로 선택한다면 그 인생은 절반 실패하고 들어가는 것이다. 꼭 즐겁지 않더라도 최소한 괴롭지 않은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

재능 없는 열정의 비극

열정과 재능의 불일치는 회피하기 어려운 삶의 부조리이다. 재능이 있는 일에 열정을 느끼면 제일 좋다. 그러나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이기만 하다면, 재능이 조금 부족해도 되는 만큼 하면서 살면 된다. 경쟁은 전쟁이 아니다. 져도 죽지는 않는다. 이겨서 꼭 행복한 것도 아니다. 사람은 저마다 가진 것으로 인생을 산다. 가진 것이 많다고 꼭 행복한 건 아니다. 적게 가져도 행복할 수 있다. 끝없는 경쟁 속에 살아야 하지만, 즐기면서 경쟁에 임하면 이겨도 이기지 못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옳은 일을 필요할 때 친절하게

남에게 좋은 기운을 주려면 먼저 내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 내가 누군가를 싫어하거나 무시하거나 미워하면 그 사람도 내게 똑같은 마음을 가지게 된다. 가라고 하든 텔레파시라고 하든, 하여튼 그런 게 있는 것 같다. 대화를 할 때 느끼는 어조의 미세한 변화, 마주보면서 감지하는 안면 근육의 소소한 움직임, 악수하면서 가하는 힘의 강약만으로도 호불호의 감정이 오고 간다. 소통과 인간관계의 비결은 자기의 마음을 닦는 것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해도 타인을 미워하거나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섣불리 평가하려 하기보다는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교감해야 한다. 내가 다른 사람을 바꾸어 놓을 수 없다. 바꾸려고 해서도 안 된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대한다. 이것이 재미있는 일을 즐겁게 하는 비결이다.

떳떳하게 놀기

아무리 즐거워도 일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놀고 사랑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 노는 것은 좋지 않다. 일하는 것은 좋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마음 놓고 놀기가 어려워진다.

낚시를 가거나 당구를 칠 때 마음 한 구석이 왠지 불편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 불편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첫째는 자격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노는 데는 시간과 정력, 비용이 든다. 나름 열심히 인간의 도리를 하고, 죄의식을 크게 느끼지 않는 정도로만 나가서 노는 것이다.

둘째는 도덕적 부담감이다. 내가 사는 이 사회 어느 곳에선가 절망을 견디다 못해 자살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밤낮 없이 두 가지 세 가지 일을 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스스로 자책을 하게 되지만 이것도 근본적 해법은 없는 것 아닌가 싶다.

놀 때는 떳떳하게 노는 게 좋다. 하지만 약간의 도덕적 부담감을 느끼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 부담감은 노는 시간과 방법을 스스로 제한하는 데 도움이 된다. 떳떳하게 놀고 싶어서 가족과 사회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더 적극적으로 감당하도록 자극한다. 삶에는 선악이나 옳고 그름을 명확하게 재단할 수 없는 것이 많다. 놀이가 그렇다. 지나치지만 않다면, 스스로 죄의식을 느끼지 않아도 될 범위 안에만 있다면, 밝은 마음으로 당당하게 즐기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싹이 난 감자맛

누군가와의 영원한 작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아리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깊게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운이 좋아서 비행기가 어느 바닷가 넓은 백사장에 성공적으로 불시착했다고 상상하자. 그 사람에게 무엇을 꼭 해주고 싶은가?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주고 싶다는 그 생각과 느낌을 마음에 새기자. 영원한 이별의 상상이 가슴 찢어지게 아린 맛을 주는 그 사람에게, 꼭 해주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대로를 하라. 그것이 좋은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영원히 헤어진다고 해도 가슴을 아리게 만드는 사람이 없다면 그대는 잘못 산 것이다. 사랑하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며 산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야 하고, 사랑받을 준비를 해야 한다.

손끝만 스쳐도 마음이 설레고 입맞춤만으로도 황홀감에 빠지는 연애 시절은 오래 가지 않는다. 한 이불을 덮고 같은 욕실을 쓰고 상대방의 몸과 마음을 다 알고 나면 설렘과 황홀감이 있던 자리를 편안함과 친숙함이 차지한다. 연인은 사라지고 남편 또는 아내라는 가족이 생기는 것이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가족은 '서로에 대한 사랑과 책임의식으로 맺어진 어른과 아이들의 생활공동체'이다.

결혼은 구애의 종착점이 아니다. 혼인한 이후에도 배우자에게 이성으로서 매력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외모를 건강하고 보기 좋게 가꾸어야 한다. 다정한 말과 이벤트로 계속 점수를 따야 한다. 손잡기와 입맞춤, 팔베개와 같은 소소한 구애 행동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생활이 고달프고 일이 바쁘고 아이들 때문에 속상한 일이 있어도 남편 또는 아내를 연인으로 여기면서 배우자가 다른 여자 또는 다른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사로잡아야 한다. 구애는 단순한 짝짓기 수단을 넘어 소통과 공감의 기쁨을 만드는 행위이다. 구애 행동으로 표현되지 않는다면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그것 말고는 사랑의 감정을 인지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옳게 사랑하는 방법

부모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중대한 잘못은 자녀의 삶을 대신 설계하고 자녀의 행복을 대신 판단하는 데서 시작된다. 부모는 누구나 딸 아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그러나 아무리 지위가 높고 돈이 많은 사람도 자녀에게 행복을 상속해 줄 수는 없다.
부모는 자녀가 자신의 행복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지켜보고 격려하면서 필요할 때 적절한 도움을 주는 선에 머물러야 한다.

만약 자식이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면 두 가지를 가지도록 도와줄 수 있다.
첫째는 행복을 느끼는 능력, 둘째는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이다.
행복을 느끼는 능력을 가지려면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자녀가 스스로 이것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시행착오를 경험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자기가 옳다고 믿거나 좋다고 생각하는 삶의 방식을 강제해서도 안 된다. 자녀들은 부모가 그렇게 할 경우 그것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양육은 가훈이나 규칙을 정해두고 예의범절을 익히게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이를 사랑해주고 부모 스스로 좋은 삶을 사는 것, 그것이 양육의 핵심이다. 아이들은 부모가 의도적으로 가르치고 보여주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것까지 느끼고 이해한다. 부모의 꿈, 정서, 가치관, 감정, 부모가 외부 환경의 자극에 대응하는 방식, 이 모든 것이 아이의 뇌에 영향을 준다.

아이를 잘 키우려면 도를 닦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따지고 드는 아이를 존중해야 한다. 공정성에 대한 인식이 일찍 발달하는 아이일수록 지적 재능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사회성은 가장 높이 발달한 생물학적 재능이다. 끝없이 "왜?"를 쏟아내는 아이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

최악의 훈육 방법은 아이를 때리는 것이다. 승복할 수 없는 폭력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하는 경험은 소통과 공감 능력 발달을 심각하게 저해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언어로 대화하는 것이다. 뱃속에 들어 있을 때부터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완전한 문장으로 아이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아이의 뇌 속에 음성 정보를 처리하는 뉴런과 신경세포가 제대로 자리 잡게 하려면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갓난 아이 때부터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이를 씻길 때도 지금 목욕을 할 것이지, 아니면 조금 더 놀다가 할 것이지를 물어보는 게 좋다. 어느 쪽이든 큰 문제가 없는 경우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제대로 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나 스스로 내 인생을 만들어나가는 사람은 아주 작은 일에도 쉽게 행복을 느끼게 된다.

품격 있게 나이를 먹는 비결

몇 가지를 제대로 준비해야 하는 것이 있다. 돈, 건강, 그리고 삶의 의미이다.
늙으면 일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근력뿐만 아니라 일반 지능과 판단력, 민첩성, 집중력이 모두 떨어진다. 젊은이들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일자리를 얻기가 어렵다. 따라서 은퇴하기 전에 노년기의 소비생활을 감당하는 데 필요한 돈을 확보해두어야 한다.
자식에게 과도한 투자를 하거나 너무 일찍 재산을 증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노년기에는 만성 질병에 걸릴 위험이 크기 때문에 생활비 말고도 더 많은 자산을 비축해둘 필요가 있다.
노년기 삶의 자기 결정권을 지키려면 되도록 건강해야 한다. 건강하지 않으면 즐겁게 활동적으로 살 수 없다. 건강을 좌우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결정적인 것은 생활 습관이다.
자기 결정권을 지키는 세 번째 조건은 삶의 의미에 대한 확신이다.
젊을 떄와 마찬가지로 일, 놀이, 사랑, 그리고 연대를 계속해야 한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면 하는 게 최선이다.

일흔여덟에 쓴 수필집에서 밉게 늙는 사람들의 특징을 이렇게 정리했다.

  • 평소 잘난 체, 있는 체, 아는 체를 하면서 거드름 부리기를 잘 한다.
  • 없는 체 한다.
  • 우는 소리, 넋두리를 잘 한다.
  • 마음이 옹졸하여 너그럽지 못하고 쉽게 화를 낸다.
  •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한다.
  • 남의 말을 안 듣고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다음과 같이 정반대로만 한다면 노인이든 청년이든 똑같이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다.

  • 잘난 체, 있는 체, 아는 체 하지 않고 겸손하게 처신한다.
  • 없어도 없는 티를 내지 않는다.
  • 힘든 일이 있어도 의연하게 대처한다.
  • 매사에 넓은 마음으로 너그럽게 임하며 웬만한 일에는 화를 내지 않는다.
  •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신중하게 행동한다.
  • 내 이야기를 늘어놓기보다는 남의 말을 경청한다.

기적을 일으키는 거울뉴런

맹자는 측은지심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주장했다.
개인이 생존하는 데는 사회적 결속과 유대, 상호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경쟁에서 이겨 살아남으려면 다른 사람을 이기는 능력뿐만 아니라 타인과 쉽게 공감을 이루어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타인의 기쁨뿐만 아니라 아픔에도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그대가 해고 노동자들의 고통과 죽음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고 눈물이 나려 한다면, 그것은 그대가 지극히 정상적인 인감임을 입증하는 생물학적 증거가 된다.

진보의 생물학

일과 놀이와 사랑만으로는 인생을 다 채우지 못한다. 그것만으로는 삶의 의미를 온전하게 느끼지 못하며, 그것만으로는 누릴 가치가 있는 행복을 다 누릴 수 없다. 타인의 고통과 기쁨에 공명하면서 함께 사회적 선을 이루어나갈 때, 우리는 비로소 자연이 우리에게 준 모든 것을 남김없이 사용해 최고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그런 인생이 가장 아름답고 품격 있는 인생이다. 공감을 바탕으로 사회적 공동선을 이루어나가는 것을 나는 '연대'라고 부른다.

삶을 망치는 헛된 생각들

신념의 도구가 되는 것

신념은 훌륭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사람은 훌륭해야 한다. 나는 내가 가진 신념 덕분에 내 자신과 내 삶이 더 훌륭해지는 지를 주의 깊게 살핀다. 내 자신을 비루하게 만드는 신념은 좋은 것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 나는 신념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불운을 어찌할 것인가

지나온 삶에 완전히 만족하기는 쉽지 않다. 살아온 삶과 앞으로 예견되는 삶에 다 만족하기는 더욱 어렵다.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하기 어려운 것은 설계 오류, 능력 부족, 판단 착오 등 스스로 책임져야 할 마땅한 여러 이유가 있다. 자신의 부족함을 성찰하고 더 노력하면 이런 것을 어느 정도는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게는 문제가 없는데 세상이 잘못되어서, 또는 단지 운이 없어서 만족스런 인생을 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면 사태가 간단치 않다. 세상의 부조리와 불운은 내 힘으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삶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변경거리가 아니다. 실제로 이 둘은 사람의 인생에 막대한 영향을 준다.

삶에는 인과관계를 찾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그냥 일어나는 일이고, 일단 일어나고 나면 되돌릴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내 선택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은 주어진 환경으로 받아들이는 게 최선이다.

출생이라는 제비뽑기

삶의 가장 큰 부조리는 출생의 행운과 불운이 아닐까 싶다. 출생은 제비뽑기와 같다. 태어날 때 주어진 환경과 조건 중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
출생의 행운과 불운은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불편하지만 부정 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러나 태어날 때 받은 어떤 행운도 행복한 생활, 훌륭한 삶, 성공하는 인생을 완벽하게 보장하지는 않는다. 출생의 행운과 불운은 이미 벌어진 일이다. 바꿀 수 없다. 행운은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야 한다. 불운은 온전히 혼자 감당하면서 극복해나가야 한다. 누군가 곁에서 거들어준다면 감사할 일이다. 다른 방법은 없다.

나는 영생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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