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그리고 싶은데, 재능은 없을 때

soryeongk·2025년 10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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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한테 시키면 된다. 근데, 내 말을 잘 안 듣는다.. 똑같이 만들라고 시켜도, 꼭 뭐 하나씩 다르게 만드는 이놈을 훈련시킨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기록해 봤다.

난 내가 화가가 될 줄 알았어

학교다니는 내내, 내 교과서에는 글보다 낙서가 많았고, 필통 속 샤프는 하나 뿐이면서 젤리펜은 깔별로 모았다. 유치원 때부터 줄곧 마음 한 켠에는 예술가의 꿈을 꾸고 있었고, 중학생 때까지도 웹툰 작가,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동화책 그림 작가 등 그림을 그리는 직업을 갖고 싶었다. 인스타그램 첫 게시물도 내 그림 자랑이다.

언젠가 "꿈이 바뀐 이유가 뭔가요?" 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너무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안난다고 답했는데, 그 후에 천천히 생각해보니 바뀐게 아니라 포기한 것이었다. 화가는 나의 오랜 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치원 이후로는 한 번도 장래희망으로 제출해본 적이 없었다. 남들에게 당당하게 말할 정도로 그렇~게 그림에 소질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때도 그림은 줄곧 그렸는데, 대학 졸업 즈음부터 그림을 그리는 일이 줄었다. 공부하기 싫을 때 그리는게 그림인데,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줄어드니 그림 그리는 시간도 함께 줄었다. 취미로도 즐기지 못하고, 손이 굳고, 상상력과 표현력이 함께 하향곡선을 그렸다. 내 생각대로 손이 따라주질 않으니, 그림 그리는 것도 그리 즐겁지 않았다.

Hey, AI~ 그림 그려줘~

AI가 조끔씩 고개를 들 즈음, 지인의 추천으로 미드저니(Midjourney)를 처음 배웠다. 개발자에게 친숙한 구조라서 프롬프트 입력 자체는 어렵지 않았는데, 문제는 상상력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라인워크의 낙서, 끽해봐야 소묘 정도였는데, 아주 화려한 색감과 질감을 표현하는 미드저니를 마주하니 뇌가 멈췄다. 그리고 싶은게 없었다.

내 손으로 그릴 수 있는 2D 캐릭터 말고, 디자이너처럼 입체감있는 그림을 아주 멋드러지게 만들고 싶었는데... 그 날 수강생 대부분은 디자이너였기 때문에 나를 제외한 모두가 다닫다닥 타이핑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무엇을 더 하면 좋을지 몰라 손을 멈췄다. 다행히 그 날 강의를 맡은 교수님께서 다양한 주제를 주셔서 이것저것 만들어볼 수 있었지만, 내 상상력의 한계에 충격을 받은 채 수업은 끝났다.

미드저니한테 상상력 위임하기

미드저니의 프롬프트에 사용되는 파라미터를 제대로 익히는 것이 먼저였다. 수업 시간의 제한으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프롬프트도 많았기 때문에 혼자 이것저것 넣어봤다. 여전히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이 없으니, 마음에 들지도 않았지만, 프롬프트 훈련을 통해 상상력을 키울 수 있었다.

미드저니 프롬프트는 터미널 명령어 마냥 {{생성할 이미지를 설명}} --option value 의 형태로 구성되어있다. 예를 들어 a photo of an axolotl dancing on the solid black background, studio light, hyper realistic --s 300 --w 50 --c 20 의 형태다.

미드저니는 1번 요청으로 4개의 이미지를 생성한다. 생성된 4개의 이미지 중 맘에 드는 것을 골라 디벨롭하는 형태로 작업을 이어가면 된다. 그러니 처음 프롬프트를 적절하게 넣어 기본적으로 마음에 드는 구도와 표현, 색감을 세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첫 4개 이미지를 잘 만들기 위한 기본 파라미터가 style, chaos, weird이다.

기본 프롬프트

파라미터 명 프롬프트 입력 형태 설명 값의 범위(기본값)
style --s || --style 이미지를 얼마나 꾸밀지를 결정. 값이 높을 수록 미드저니가 다양한 꾸밈요소를 추가함. 미드저니의 개입을 없애고 싶다면 --style raw를 입력하면 되고, 프롬프트에 충실한 이미지를 뽑음. 0 ~ 1000 (100)
chaos --c || --chaos UI 상에서는 variety로 명명. 이미지를 얼마나 다양한 형태로 뽑을지를 결정. 값이 높을 수록 생성되는 4개의 이미지가 서로 다른 표현이나 형태를 가짐. 0 ~ 100 (0)
weird --w || --weird 이미지를 얼마나 이상하게 뽑을지를 결정. 값이 높을수록 진짜 이상한 그림이 나옴. 개인적으로는 조금 고어한 이미지도 많이 나온다고 느낌. 0 ~ 3000 (0)

an axolotl만 입력하면 위와 같이 평범한 우파루파를 만든다.

--s 500을 주면 우파루파를 꾸며준다. 이미지가 뭔가 허전하다고 느끼거나, 화려한 이미지를 뽑고 싶을 때 주로 사용한다. (an axolotl --s 500) 상상력이 부족한 나에게 style 파라미터는 매우 좋은 도구지만, 가끔은 프롬프트에서 너무 멀어질 때도 있어 값을 조금씩 늘리면서 조절한다.

--c 100을 주면 각각 다른 표현의 우파루파를 만든다. (an axolotl --c 100) 미술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어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질감이나 표현, 구도에 한계가 있다. 이럴 때 chaos 값을 넣어 아이디어를 얻곤 한다.

--w 1500을 주면 조금 이상한 우파루파를 만든다. (an axolotl --w 1500) 비현실 혹은 판타지적인 그림을 만들 때 추가하곤 하는데, w값이 높을 수록 좀 더 고어하거나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디벨롭 시키기

생성된 4개의 이미지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variation을 주고 scale up 하면서 내 입맛에 맞게 조금씩 바꾸면 된다.

그리고 최근 웹 버전에서는 edit 기능도 좋아서 국소부위 수정도 편해졌고, 심지어는 미드저니로 생성하지 않은 일반 이미지 위에 미드저니를 얹는 것도 가능해졌다. 위 이미지처럼 내가 수정하고자 하는 부분을 브러쉬로 표시하고, 프롬프트를 입력하면 해당 부분만 수정에 들어간다.

문제점 그리고 싶은 것이 없어서 막막하다. 연습에 속도가 안 붙는다.
레슨런 미드저니에게 상상력을 위임하자.

따라하기

미드저니한테 상상력을 위임하는 것만으로는 발전할 수 없다. 내 스스로 프롬프트를 쓸 수 있해 여러 단어를 알아야 했다. 영어 공부에 쏟은 시간과 돈에 비해 내 단어장은 매우 얇았다. 재질이나 느낌을 표현하는 영어 단어를 모르기 때문이다.. 읽으면 아는데, 내가 직접 표현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고, 원인은 2가지였다.

  1. 각각의 이미지의 차이를 만드는 요소가 무엇인지 모름
  2. 그걸 설명하는 단어나 표현을 모름

하지만 괜찮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미드저니도 그걸 아는지, /describe 라는 명령어를 제공한다.

/describe 뒤에 이미지를 넣으면 그 이미지를 위한 프롬프트를 생성해준다. 다양한 이미지를 넣어보면서 표현 단어와 작가들의 이름을 알 수 있다. 예뻐보이는 그림이 있으면 미드저니에게 describe 시키고, 여기서 알게 된 단어를 넣어 이미지를 생성해보면서 공부했다.

레슨런 모방을 통해 다양한 프롬프트 표현을 배울 수 있다.
문제점 여전히 "내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다.

그림으로 말하기

디자이너 지인 중 그림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이 만든 그림과 함께 캡션을 남기는데,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그림에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가 연결되니 그 감동도 오래 남았다. 미술관이나 전시회를 많이 다니진 않았지만, 설명만 길고 그림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작품도 많았는데... 나도 이 분처럼 짧은 글만으로도 전달되는 직관적인 그림을 만들고 싶어졌다.

이때부터 평소에 하는 생각이나 소원 등을 담아 그림을 만들어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뭘 그려야할지 모르겠다"는 고민의 연속이었는데, 주제가 정해지니 마음이 편했다. 이때부터 "어떻게 표현하는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2번의 전시를 통한 레슨런

AI 커뮤니티 ttai로 약 6개월간 활동하면서 2번의 전시를 해볼 수 있었다. 그룹으로 참여하다보니 통일감을 위해 최소한의 제약 조건이 있었고, 남들에게 보여줄 것을 생각하니 의미 전달에 더 집중해 볼 수 있었다.

첫 번째 전시

2024년 12월, 감사하게도 첫 번째 전시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어느 스튜디오에서 "불경기"를 주제로 한 파티를 개최하는데, 그 스튜디오에 걸어둘 작품을 만들어달라는 의뢰였다.

작품의 통일감을 위해 아래와 같은 조건을 두었다.

  1. 불(fire)의 요소가 있을 것
  2. 파란색을 기본 색으로 쓸 것

불경기와 관련한 다양한 뉴스와 인터뷰를 찾아보고, 스스로의 생각도 정리했다. 근데,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고, 그림으로 뽑아내기가 너무 힘들어 같은 소속의 디자이너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림에서 무엇을 봐야할지 하나를 정하세요"

오호.. 그러고보니, 아주 화려한 그림이라도 기억에 남는 오브제는 1~2개에 그친다. 이 불경기를 나타낼 수 있는 좋은 오브제를 정하는 것에 집중했다.

립스틱 효과를 주제로 불타는 립스틱을 가운데에 두고, 다른 사물을 배치했다. 겨울이면 불경기가 악화되고, 특히 작년 겨울에는 신선품목의 가격이 부담스러웠던 기억에 채소와 과일을 만들었다.

다른 사람들의 작품과 비교하니, 내 그림은 뭔가 난잡했다. 분명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잘 담았는데, 무언가 아마추어의 느낌이다. 인공지능이 생성했다는 느낌이 너무 강하고, "우와!"하는 포인트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디자이너에게 피드백을 요청했다.

그녀의 피드백
1. 립스틱 효과라는 주제 선정과 가운데에 큰 립스틱을 배치한 것 모두 좋다.
2. 인공지능스러움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 사람들은 AI가 생성한 이미지라고 하면 매우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데, 실제 사진도 구도나 빛에 따라 합성처럼 보일 때가 많다. 그러니 AI가 만든 것 같다는 점이 단점이 될 이유는 없다.
3. 지금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 것이 맞다. 알고 있는 작품이나 구도, 표현, 색감이 디자이너보다 적은 것은 어쩔 수 없다. 핀터레스트 등을 보면서 의도적으로 분석해보면 좋다. GPT는 행동 묘사에 강하고, 미드저니 describe는 분위기나 표현에 강하니 이 둘을 모두 사용해봐라.

두 번째 전시

2025년 6월, 두 번째 전시 기회가 생겼다. 내가 소속된 또 다른 데이터 커뮤니티, 데이터야놀자의 동명의 행사에서 전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번 제약은 다음과 같다.

  1. 음악처럼 흐르는 데이터를 컨셉으로 할 것
  2. 데이터와 관련한 요소가 있을 것
  3. 컨퍼런스의 메인 컬러인 블루로 통일할 것

이번엔 잡다한 것을 없애고 새로운 색감을 사용해보고 싶었다. 산점도와 히트맵을 표현한 브로콜리 모양의 구조물과 막대/선 그래프를 표현한 알록달록한 구조물을 넣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약간의 추상화를 통해 잡다함은 덜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림 속 무엇이 메인이 되는지는 조금 애매해 보이는 문제가 있다.

문제점 메인이 되는 오브제가 없다.

계속 연습하기

지금까지의 작업에서 발견한 문제와 레슨런을 바탕으로 다시 생각을 기록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전시와 달리 아무런 제약도 없지만, 여전히 내 그림은 부족함이 많아 보였다. 하지만, 그 차이를 발견할 수 있는 눈이 없다. 바쁜 디자이너에게 또 피드백을 요청하기 전, GPT 쓰앵님의 도움을 받아 보았다. 디자이너에게 그림을 프롬프트에 써도 될지 허락도 받았다.

메인 오브제가 중앙에 잘 보이는 배치

마지막까지 문제가 되었던 "그림에서 무엇을 봐야하는가?"를 연습할 수 있도록 위 그림 속 디자이너의 작품처럼 메인 오브제가 중앙에 잘 보이게 하는 그림을 만드는 연습부터 했다.

GPT 쓰앵님의 피드백

  • 배경과의 대비가 약함
  •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안보임 (없었기 때문..)
  • 여백이 없어서 답답함

이번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명확하게 했다.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명확하게 한 뒤에 GPT에게 아이디어와 프롬프트 추천을 받았다.

내가 생각하는 명절의 의미와 함께 각자의 추석이 다름을 표현하고 싶다고 전했다. 보름달을 표현한 원 안에 각자의 연휴가 그려지면 좋겠다고 하니 미니어처 형식을 추천해 줬다. 추석 연휴에 맞춰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고 스스로 뿌듯해 했다.

그런데, 막상 작업을 완료하고 보니, 미니어처들의 디테일이 떨어지고, 여전히 여백이 부족했으며, 이것보다 좀 더 선명한 그림을 뽑고 싶었다.

연휴가 끝나자마자 내가 좋아하는 일본 밴드 녹황색사회의 내한 공연을 다녀왔다. 청춘과 희망을 노래하는 이 밴드의 공연은 오랜 시간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에 감상을 그림으로 뽑아보았다. "부끄러운가 청춘은"이라는 노래의 첫 가사 "상처난 곳부터 익어가는 과일"을 모티브로 결국 그 상처를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과일이나 돌 등에 멍이나 균열이 생기고, 거기서 예쁜 꽃이 자라는 그림이 떠올랐고, 역시 GPT에게 프롬프트 추천을 받았다. 내 머릿 속 이미지가 명확해서 프롬프트 작성도 금방이었다. 이번에는 디테일에 집중하는 단어를 많이 넣었고, 내가 생각하는 색감의 꽃다발 사진을 찾아 sref(style reference)로 추가했다. 덕분에 지금까지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이 나왔다.

더 다양한 표현 연습하기

이제, 내가 다녀온 공연들의 후기를 하나 둘 남겨보고 있다. 녹황색사회 바로 전 콘서트는 세카이노오와리 내한 공연이었다. 세카이노오와리는 어둡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꿈을 꾸게 하고, 힘을 낼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밴드로, 보컬의 어린 아이 같은 목소리가 마치 동화 속에 있는 분위기를 만든다. 노래 가사에서도 악마, 인어공주, 잠자는 공주, 마법사, 삐에로 등의 인물을 많이 사용하는 점을 떠올려 동화적인 이미지를 탐색하다가 타로카드를 발견했다.

이번에는 각 멤버의 카드를 만들다보니, 일관성이 중요했다. sref(style reference)는 녹황색사회 때처럼 원하는 느낌을 쉽게 따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각자의 특징을 드러내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약간 금빛 카드에 핑크색 강조가 있는 색감에서는 벗어나질 못했다. 오렌지색 머리는 죽어도 안만들더라... 그리고 전체적으로 어두운 탓에 추가 보정 작업도 필요하겠다는 것도 다시 한 번 느꼈다.

최근에 보기 시작한 만화 체인소맨이 악마와의 싸움을 주제로 한 것을 떠올려, 어릴 때 동경(?)하던 매혹적인 악마도 만들어 봤다. 메인 오브제를 명확히 하고 전체적으로 선명하고 밝음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모방하고 싶은 작가의 이름이나 작품을 넣어 첫 이미지에서 느낌을 잘 만드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앞으로 해볼 것 sref 없이도 내가 그리고자 하는 것을 프롬프트에 잘 담아내는 것을 해봐야 겠다.

모방으로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 진짜 내 프롬프트를 찾으며 한 단계 레벨업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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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프론트엔드 개발자 령이의 어쩌구 저쩌구

1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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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19일

미드저니 궁금했는데 이렇게 정성스러운 포스트 작성해주시다니 너무 감사합니다!

매번 작업해보고 개선점을 발견하고, 피드백을 받고 발전시켜 나가는 모습이 멋있구
명절 작업물부터는 주제가 확실히 집중적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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