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하는 객체들의 공동체

HeeSeong·2022년 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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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객체지향이란 실세계를 직접적이고 직관적으로 모델링할 수 있는 패러다임'이라는 설명과 마주하게 된다. 이런 식의 설명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은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이란 현실 속에 존재하는 사물을 최대한 유사하게 모방해 소프트웨어 내부로 옮겨오는 작업이기 때문이기 때문에 그 결과물인 객체지향 소프트웨어는 실세계의 투영이며, 객체란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사물에 대한 추상화라는 것이다.

아쉽게도 실세계의 모방이라는 개념은 객체지향의 기반을 이루는 철학적인 개념을 설명하기에는 적합하지만 유연하고 실용적인 관점에서 객체지향 분석, 설계를 설명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객체지향의 목표는 실세계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1. 협력하는 사람들


손님, 캐시어, 바리스타는 주문한 커피를 손님에게 제공하기 위해 협력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맡은 바 책임을 다한다. 손님은 카페인을 채우기 위해 커피를 주문할 책임을 수행한다. 캐시어는 손님의 주문을 받는 책임을 성실히 수행한다. 바리스타는 주문된 커피를 제조하는 책임을 수행한다.

커피 주문이라는 협력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은 커피가 정확하게 주문되고 주문된 커피가 손님에게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맡은 바 역할과 책임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요청과 응답으로 구성된 협력

요청과 응답을 통해 다른 사람과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으로 하여금 거대하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게 만든다.

역할과 책임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협력하는 과정 속에서 특정한 역할을 부여받는다. (손님, 캐시어, 바리스타)

역할은 어떤 협력에 참여하는 특정한 사람이 협력 안에서 차지하는 책임이나 임무를 의미한다.
(커피를 주문하는 임무, 주문을 받아야만하는 임무, 주문된 커피를 제조해야 할 책임)

특정한 역할은 특정한 책임을 암시한다. 협력에 참여하며 특정한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역할에 적합한 책임을 수행하게 된다.


  • 여러 사람이 동일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 어떤 캐시어가 주문을 받는지, 어떤 바리스타가 커피를 제조하는지는 크게 상관이 없다.
  • 역할은 대체 가능성을 의미한다.

    • 역할에 따르는 책임을 수행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을 고용해 대체할 수 있다.
    • 책임을 성실히 이행할 수 있다면 된다.
  • 책임을 수행하는 방법은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 요청을 받은 사람들은 요청을 처리하는 방법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요청을 처리할 수 있다. (다형성)
  • 한 사람이 동시에 여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 한 사람이 캐시어와 바리스타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2. 역할, 책임, 협력


역할과 책임을 수행하며 협력하는 객체들

협력의 핵심은 특정한 책임을 수행하는 역할들 간의 연쇄적인 요청과 응답을 통해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목표는 사람들의 협력을 통해 달성되며, 목표는 더 작은 책임으로 분할되고 책임을 수행할 수 있는 적절한 역할을 가진 사람에 의해 수행된다.

협력에 참여하는 각 개인은 책임을 수행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며, 이를 통해 연쇄적인 요청과 응답으로 구성되는 협력 관계가 완성된다.

애플리케이션의 기능은 더 작은 책임으로 분할되고 책임은 적절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객체에 의해 수행된다. 객체는 자신의 책임을 수행하는 도중에 다른 객체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시스템은 역할과 책임을 수행하는 객체로 분할되고 시스템의 기능은 객체 간의 연쇄적인 요청과 응답의 흐름으로 구성된 협력으로 구현된다.

객체지향 설계라는 예술은 적절한 객체에게 적절한 책임을 할당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책임은 객체지향 설계의 품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3. 협력 속에 사는 객체


객체는 애플리케이션의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존재한다. 아주 작은 기능조차 객체 혼자 감당하기에는 버거울 정도로 복잡하고 거대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객체는 다른 객체와의 협력을 통해 기능을 구현하게 된다. 객체지향 애플리케이션의 아름다움을 결정하는 것이 협력이라면 협력이 얼마나 조화를 이루는지 결정하는 것은 객체다. 결국 협력의 품질을 결정하는 것은 객체의 품질이다.

객체는 다음 두 가지 덕목을 갖춰야 하며, 두 덕목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1. 객체는 충분히 '협력적'이어야 한다.

    객체는 다른 객체의 요청에 충실히 귀 기울이고 다른 객체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할 정도로 열린 마음을 지녀야 한다. 외부의 도움을 무시한 채 모든 것을 스스로 처리하려고 하는 전지전능한 객체는 내부 복잡도에 의해 자멸하고 만다.

  2. 객체는 충분히 '자율적'이어야 한다.

    객체 공동체에 속한 객체들은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협력에 참여하지만 스스로의 결정과 판단에 따라 행동하는 자율적인 존재이다. 객체지향 설계의 묘미는 다른 객체와 조화롭게 협력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개방적인 동시에 협력에 참여하는 방법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자율적인 객체들의 공동체를 설계하는 데 있다.


상태와 행동을 함께 지닌 자율적인 객체

흔히 객체를 상태와 행동을 함께 지닌 실체라고 정의한다. 이 말은 객체가 협력에 참여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한다면 그 행동을 하는데 필요한 상태도 함께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객체의 자율성은 객체의 내부와 외부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으로부터 나온다. 객체의 사적인 부분은 객체 스스로 관리하고 외부에서 일체 간섭할 수 없도록 차단해야 하며, 객체의 외부에서는 접근이 허락된 수단을 통해서만 객체와 의사소통해야 한다. 즉 객체는 다른 객체가 무엇을 수행하는지는 알 수 있지만, 어떻게 수행하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과거의 전통적인 개발 방법은 데이터와 프로세스를 엄격하게 구분한다. 어에 반해 객체지향에서는 데이터와 프로세스를 객체라는 하나의 틀 안에 함께 묶어 놓음으로써 객체의 자율성을 보장한다. 이것이 전통적인 개발 방법과 객체지향을 구분 짓는 가장 핵심적인 차이다. 자율적인 객체로 구성된 공동체는 유지보수가 쉽고 재사용이 용이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협력과 메세지

객체지향의 세계에서는 오직 한 가지의 의사소통 수단만이 존재한다. 이를 메세지라고 한다. 한 객체가 다른 객체에게 요청하는 것을 메세지를 전송한다고 말하고 다른 객체로부터 요청을 받는 것을 메세지를 수신한다고 말한다. 메세지를 전송하는 객체를 송신자, 수신하는 객체를 수신자라고 부른다.

메서드와 자율성

객체는 다른 객체와 협력하기 위해 메세지를 전송한다. 수신자는 먼저 수신된 메세지를 이해할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한 후 미리 정해진 자신만의 방법에 따라 메세지를 처리한다. 이처럼 객체가 수신된 메세지를 처리하는 방법을 메서드라고 부른다.

객체지향 프로그래밍 언어에서 메서드는 클래스안에 포함된 함수 또는 프로시저를 통해 구현된다. 따라서 어떤 객체에게 메세지를 전송하면 결과적으로 메세지에 대응되는 특정 메서드가 실행된다. 메세지를 수신한 객체가 실행 시간에 메서드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은 다른 프로그래밍 언어와 객체지향 프로그래밍 언어를 구분 짓는 핵심적인 특징 중 하나다. 이것은 프로시저 호출에 대한 실행 코드를 컴파일 시간에 결정하는 절차적인 언어와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이다.

메세지와 메서드의 분리는 객체의 협력에 참여하는 객체들 간의 자율성을 증진시킨다.

외부의 요청이 무엇인지를 표현하는 메세지와 요청을 처리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인 메서드를 분리하는 것은 객체의 자율성을 높이는 핵심 메커니즘이다. 이것은 캡슐화라는 개념과도 깊이 관련되어 있다.


4. 객체지향의 본질


  • 객체 지향이란 시스템을 상호작용하는 자율적인 객체들의 공동체로 바라보고 객체를 이용해 시스템을 분할하는 방법이다.

  • 자율적인 객체란 상태와 행위를 함께 지니며 스스로 자기 자신을 책임지는 객체를 의미한다.

  • 객체는 시스템의 행위를 구현하기 위해 다른 객체와 협력한다. 각 객체는 협력 내에서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며 역할은 관련된 책임의 집합이다.

  • 객체는 다른 객체와 협력하기 위해 메세지를 전송하고, 메세지를 수신한 객체는 메세지를 처리하는 데 적합한 메서드를 자율적으로 선택한다.


객체를 지향하라

클래스가 객체지향 프로그래밍 언어의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구성요소인 것은 분명하지만 객체지향의 핵심을 이루는 중심 개념이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Javascript 같은 프로토타입 기반의 객체지향 언어에서는 클래스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객체만이 존재한다. 프로토타입 기반의 객체지향 언어에서는 상속 역시 클래스가 아닌 객체 간의 위임 메커니즘을 기반으로 한다. 지나치게 클래스를 강조하는 프로그래밍 언어적인 관점은 객체의 캡슐화를 저해하고 클래스를 서로 강하게 결합시킨다.

훌륭한 객체지향 설계자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할 첫 번째 도전은 코드를 담는 클래스의 관점에서 메세지를 주고받는 객체의 관점으로 사고의 중심을 전환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클래스가 필요한가가 아니라 어떤 객체들이 어떤 메세지를 주고 받으며 협력하는가다. 클래스는 객체들의 협력 관계를 코드로 옮기는 도구에 불과하다.

객체지향의 핵심은 클래스가 아니다. 적절한 책임을 수행하는 역할 간의 유연하고 견고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클래스의 구조와 메서드가 아니라 객체의 역할, 책임, 협력에 집중하라. 객체지향은 객체를 지향하는 것이지 클래스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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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성장하고 싶은 개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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