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eaking Bad"에서 본 교육직과 기초과학의 몰락

조 은길·2024년 9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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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친구들과 기숙사 모여서 밤새 오버워치를 하다가 질리면 맥주 한 병 놓고 같이 몰아보던 추억의 드라마이다. 당시에는 죽음을 눈 앞에 둔 주인공이 가족에게 약간의 유산이라도 남겨주기 위해 발버둥 치던 초보 마약상의 좌우충돌기 정도만 보였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미국에서 히트를 쳤던 이유는 드라마에서 미국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고스란히 녹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 작가는 주인공인 월터 화이트를 통해 어떤 문제를 녹여냈는지 미국사람들은 어떤 부분에서 월터에게 공감을 느꼈는지를 알아보자.

🔉 이 글에서 서술하는 내용들은 개인적인 생각과 판단이라는 점을 명시한다 🔉
🔉 이 글은 특정 사회 현상을 비판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 🔉


월터 화이트 ( Walter White )

드라마 브래이킹 배드의 월터는 고등학교 화학 선생님인데, 선생님이 되기 이전 미국 최고의 공대 중에 하나인 Caltech에 굉장히 명망 있는 화학 연구원이었다.
연구집단 내에서도 뛰어난 인재였던 월터는 엑스선결정학(X-ray crystallography)에 대한 탁월한 연구 성과를 내게 되었고 그의 광자 방사선 촬영에 대한 연구논문은 노벨상을 수상하는 프로젝트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나중에는 화학을 같이 공부한 친구 몇 명들과 같이 Grey Matter라는 스타트업을 차렸는데, Grey Matter를 중간에 그만두게 되면서 선생님의 길을 걷게 된다.

Grey Matter는 월터의 연구성과들로 인해 수십억 달러의 기업으로 성장하게 된다. 가끔씩 월터가 엄청나게 성공한 두 친구의 생일 잔치나 파티에 초대되어 가면서 많은 컴플렉스를 느끼는 그런 장면도 등장한다.

이거는 미국에서 순수 과학을 연구나 교육의 목적으로 하는 사람과 과학을 응용해서 기업을 만드는 사람의 빈부 격차가 너무너무 커져 버린 결과, 대부분의 미국 학생들이 STEM의 응용과학에만 집중하고 순수과학으로 가지 않으려고 하는 트렌드의 원인이 두드러지고 있는 상황이었다는 거를 드라마에 집어넣은 것 같다.

이상적인 사회에서는 사람이 어떤 진로를 선택하든 기본적인 생계는 보장받을 수 있어야한다.

'아 나는 후배들을 키우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나는 선생님이 될래. '
'돈이 중요하기 때문에, 기업가가 될래. '
'새로운 걸 탐험하는 게 좋으니까, 연구자가 될래. '

그런 여러 가지 길을 선택하고도 기본적으로 인간의 존엄이 보장되는 인생을 살 수가 있어야 하는데, 월터처럼 기업의 길을 가지 않고 교육이라는 자신보다는 공동체를 위한 길을 갔던 사람이 인생이 너무 비참해지는 장면이 나온다.

첫번째 시즌 첫번째 에피소드에서, 월터가 교사 월급으로만 먹고 살 수가 없어서 세차장에서 알바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근데 세차를 하고 있던 스포츠카는 자기가 방금 학교에서 혼냈던 학생 소유의 차였고, 학생의 비웃음을 애써 무시한채 자동차 바퀴를 무릎 꿇고 닦고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

어느날 월터는 세차장에서 쓰러지고 구급타를 타고 실려간다.
그리고 병원에서 페암 3기 환자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항암 치료를 받게 되더라도 2년 정도 수명이 남았다. 문제는 월터의 급여로는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가족들이 병원비를 위해 모금행사를 하고, 월터의 아내는 함께 Grey Matter를 창업한 월터의 옛 동료들을 찾아가 병원비를 월터 몰래 부탁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급여의 양극화

사실 미국에서 선생님들의 임금이 굉장히 오랫동안 오르지 않았다.
주 정부의 재정 악화가 주된 사유지만, 동결된 임금이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공립 학교 선생님들이 기본적인 생계도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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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산업의 발달이 촉진시킨 양극화

미국은 오로지 어떤 특정 분야만 급속으로 발달하다보니까 미국은 분명히 1차 자원을 가지고 먹고 사는 경제가 아님에도 네덜란드 병과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리하자면 특정 산업이 엄청나게 발전해서 높아진 임금의 산업 종사자들이 소비를 늘리고 거기에 따른 물가가 상승한다. 하지만 그 산업에 종사하지 않는 모든 미국 사람들의 임금은 오르지 않아서 가난해지는 이런 현상이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결국 실리콘 벨리, 벤처, IT, 응용 기술 이 쪽으로 가지 않는 사람들은 가난해지고 있는 현실, 그래서 옛날에는 좋은 직업이었던 교사 같은 직업으로 재능 있는 사람들이 가지 않고 돈이 되는 응용과학 분야로 갈 수밖에 없는 현실, 그로 인해서 교육의 질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비판까지 드라마는 간접적으로 그리고 있다.


교육을 바라보는 시선

일반적으로 동양에서는 문화적으로 스승과 부모를 동일시하고 존경하는 유교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미국과 비교해볼 때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좋았다.

2024년 기준, 캐나다는 교사 부족으로 교사 자격증이 없는 사람도 교사에 지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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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는 교사의 절반은 향후 12개월 내에 교직을 그만둘 것을 고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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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심각한 공교육에 대한 위기를 겪고 있는데에 대한 하나의 단서는 '교육을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이다.

"핀란드에서는 자녀에게 적합한 학교를 찾는 것에 대한 불안감은 거의 없습니다. "

학교 교육을 한 아이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는 '공공재'로 볼 것인지 아니면 학교를 아이가 기업과 노동 시장에 필요한 인재로 키워내는 일종의 '서비스와 상품'으로 볼 것인지 나라와 사회 문화에 따라 이 시선이 다르다.

즉 이 시선이 다르면 교사들에 대한 학부모들의 기대치도 달라지는 것이다.

교육을 공공재로 여기는 문화를 가진 나라들은 학교생활을 아이들이 겪어야하는 사회 경험으로 여기고 거기서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훨씬 더 유연한 태도를 취한다.

그러나 학교 교육을 '서비스와 상품'으로 여기는 사회일수록 마치 쇼핑몰 고객 상담실에 악성 컴플레인을 제기하듯 교사들에게 요구를 하고 학부모로서 권리를 소비자로서의 권리와 동일시하는 행동을 합리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교사라는 직업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나라에서는 이미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다.


기초과학의 몰락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의 차이

"기초 과학의 목적은 기존 과학 지식에 기여하고 미래의 발견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응용 과학은 주로 과학 지식과 원리를 실제 현실 세계의 특정 문제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용적으로 적용하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
자료 출처 - 기초 과학과 응용 과학: 차이점 이해

천재 수학자 스리니바사 라마누잔이 남긴 라마누잔의 정리는 블랙홀의 원리를 이해하는 근거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라마누잔의 능력을 알아보고 원조해줬던 영국의 수학자 G. H. 하디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의 천재성과 성과는 생계에 대한 위협으로 증발했을 것이다.

라마누잔의 정리는 코로나 백신도 아니고, 뛰어난 AI 기술도 아니다.
그러나 세상을 이해하고 인류 발전의 또다른 가능성을 제공한다.

아쉽게도 이러한 막연한 미래 가치에 한정된 현재의 자원을 투자할 수 있는 국가와 기업은 많지 않다. 잘못 됐다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리고 지금도 이름 모를 수학자와 과학자들이 생계를 위협 받으며, 다른 진로를 택하거나 자신을 써줄 수 있는 국가로 이민을 간다.

이와 같은 현실을 목격한 젊은이들은 부와 명예를 보장받을 수 있는 의대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글을 마치며

과거에는 그냥 재미있게만 정주행했던 드라마에 사회 비판의 코드가 숨겨져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그리고 이 드라마에 이런 코드가 숨겨져 있었고, 이런 현상의 원인 중 몇 가지를 분석해봤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이러한 점을 염두해두고 드라마를 봤을 때, 월터에게 이입되는 감정이 더 깊어진 것같다. 아마 시청자 모두가 월터의 선택이 잘못된 것을 알지만, 그의 선택을 이해할 수는 있을 것이다.


🎓 자료 출처 및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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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길로만 가는 "조은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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