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덧 세월이 흘러 이 자리에 서 있게 되었다.
그동안 수많은 일들이 스치듯 지나갔고, 크고 작은 시련도 겪었다. 하지만 매 순간 어떻게든 그 어려움을 헤쳐 나가며, 지금 여기서 새로운 도전과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앞으로도 다양한 일들이 펼쳐질 테고, 그것을 어떻게 헤아리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내 삶의 방향이 바뀔 것이다. 그래서 이 순간, 그간 배우고 경험하며 깨달은 소중한 교훈들을 한데 모아 정리해 본다.
🔉 이 글에서 서술하는 내용은 개인적인 생각과 판단이라는 점을 명시한다 🔉
- 나는 다음과 같은 목적으로 이 글을 작성한다.
- 지금까지의 인생을 돌아보기 위해서
-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정리해보기 위해서
이 글은 타인을 향한 설득이 아닌, 나 자신을 성찰하기 위한 자기지향적인 기록이다.
최근 한 영화배우가 시상식에서 이런 말을 했다.
“여러분, 남의 말 듣지 마시고, 그냥 꿈을 향해서 열심히 하세요. ”
이 말은 오랜 무명 생활을 끝내고 처음 받은 상에 감격한 나머지 나온 것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말을 필터 없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그래! 이 사람이 노력으로 스타가 됐는데, 나라고 못 할 게 뭐야?’ 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배우나 아이돌이 되기 위해 애쓰고 있을 거다.
( 배우와 아이돌을 예로 들었지만,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
노력하는 것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몇 년간 시도해 봤는데도 그 분야에 재능이 없고 성공 가능성이 낮다면, 더 잘할 수 있는 다른 영역으로 과감히 옮겨갈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사람은 "메타인지"가 중요하다.
내가 이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냉정히 판단할 능력이 중요하고,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조언해 줄 수 있는 그 분야의 선배가 필요하다.
영화배우가 되려고 하다 실패한 사람들의 사례를 우리가 어떻게 알겠는가?
그들이 누군지 모르는데!
아이돌 데뷔를 노리다 실패한 사람들의 사례도 마찬가지로,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들이 누군지 모르는데!
현실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백 배, 천 배는 더 많다.
그런데 우리는 막연히 스타가 된 사람들의 시상식을 보고, 방송에 나오는 아이돌들을 보고, 유튜브에서 그들이 어떻게 스타가 됐는지 떠드는 모습을 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저 사람도 성공했는데… 나라고 못 할 게 뭐야?' 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어떤 일을 할 때 백 번, 천 번 중 한 번 있을 법한 예외를 고려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전략이다.
➡️ 극소수의 사례에 얽매여 인생을 사는 사람은 연애든 사업이든 그 어떤 분야에서도 결국 실패하게 된다.
안 될 사람은 그만두는 게 맞다.
물론 이걸 핑계 삼아 노력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몇 년을 시도해 봤고, 정말로 솟아날 구멍이 안 보이는데 인생을 갖다 박는 행위는 위험하다.
필자의 지인은 배우 지망생이다.
이제는 30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지만, 배우가 되겠다고 인생의 10년 가까이를 투자했다.
이 시간만 투자하지 않았으면 회사에서 과장을 달고 준수한 월급을 받았을 세월인데, 배우 지망생 생활을 하느라 경력이 없어서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과연 이 사람이 배우 지망생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시작할 수 있을까?
개발자가 되고 싶어 수년간 노력했음에도 취업에 성공하지 못하고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면, 다른 분야로 전향할 용기가 필요하다.
몇 년 동안 공무원을 준비했지만 계속 낙방했다면, 다른 분야를 찾아보는 용기가 필요하다.
만약 " 나는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 인생을 바칠 거야. 성공하든 실패하든 후회하지 않을게. " 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게 살 자신이 없다면, 한 분야에만 무모하게 올인하지 말자. 어느 정도 해봐도 각이 나오지 않는다면, 과감하게 방향을 틀어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것이 현명하다.
어떤 분야에서는 나의 최선이 누군가의 최소도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아무리 내가 그 분야를 좋아한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그 분야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안 보인다면, 더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보는 게 필요하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잘 하는 일 중에서 돈이 되는 일을 찾아서 그 분야를 생업으로 삼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하면 된다.
일반적으로
잘 하는 일과좋아하는 일은 다르다.
유튜브를 해보지 않으면, 자신이 유튜브에 재능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렇게 자신이 어떤 분야에 재능이 있는지 알지 못한채,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사람은 모름지기 내면이 깊어야지. ”
“외모만 보고 판단하는 얕은 사람들은 내 쪽에서 사절이야. “
➡️ 과거의 나는 이런 이분법적 사고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것이 얼마나 순진하고 오만한 생각이었는지를 깨달았다.
인간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혜안을 가진 이는 단 1%에 불과하며, 나머지 99%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상대를 정의한다.
이것이 냉혹하지만 명확한 현실이다.
외모를 단정하게 가꾸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난이도는 급격히 낮아진다.
면접장이나 비즈니스 미팅, 혹은 소개팅 자리에서 첫인상이 주는 무게감은 절대적이다.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은 언제나 겉으로 드러나는 이미지와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누군가 내 진심을 알아봐 주길 기대하며 살아가지만, 사실 우리의 일상은 깊고 끈끈한 관계보다 가볍고 스치는 인연들로 채워지는 경우가 훨씬 많다. 찰나의 순간에 스쳐 지나가는 이들 중 과연 누가 나의 내면을 탐구할 열의를 보이겠는가?
결국 외모를 가꾸는 행위는, 나의 내면을 보여줄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비효율을 제거하는 가장 지혜로운 전략이다.


옷을 잘 입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사회적 지능을 판단할 수 있다.
그렇다고 비싼 옷을 입자는 말이 아니다.
상황에 맞는 의상을 입을 줄 아는 사람이 되자는 말이다.
수업 시간에 풀정장을 입고 오거나, 라운지바에 운동복 차림으로 오는 사람은 되지 말자.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은 상대방에게 거부감을 주어, 함께하고 싶지 않다는 인상을 남기기 쉽다.
✅ 학생이면 학생다운 룩을 입고, 데이트를 나가면 남친룩을 입고, 클럽에 가면 클럽에 맞는 룩을 입을 줄 아는 사람이 되자.
- Q. 스티브 잡스나 마크 주커버그는 맨날 같은 반팔에 청바지만 입고 다니는데요?
영화 "크레이지, 스투피드, 러브"(2011)에서 라이언 고슬링 & 스티브 카렐이 쇼핑하러 가는 장면에서 이러한 점을 꼬집는 대사가 등장한다.
스티브 잡스는 그 이름이 브랜드가 된 사람이다. 더이상 복장이 그를 정의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옷을 입고 다니던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평범한 월급쟁이 일반인이 뇌의 활용도를 높인다고 같은 옷만 입고 다니면, 그냥 사회성이 떨어져보이는 사람일 뿐이다.
전후 관계를 명확하게 하기를 바란다.
사람에게는 각자의 체취가 존재한다. 그것이 좋은 향일 수도 있고, 악취일 수도 있는데 본인의 식습관과 연령대에 따라서 달라진다.
문제는 이 향이 누군가에게 악취일 경우,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떤 식으로든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유학시절 기숙사에 살 때, 서양인 특유 체취로 힘들었던 경험이 있었다. 우연히 술자리에서 이 주제가 나왔는데, 룸메이트들도 동양인 특유의 체취로 힘들어했던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래서 우리끼리 찾은 합의점은 향수를 뿌리자는 것이었다.
이제는 향수를 뿌리는 것은 하나의 습관으로 자리잡았고, 자신의 냄새를 관리하는 중요한 루틴이 되었다.
나는 자신의 체취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안 좋은 냄새일 수 있다면, 그러한 부분을 관리하는 것이 나를 만나는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단순하게 생각해보자!
예의 바르게 행동하면,
➡️ 그게 항상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마이너스는 안 된다.
그러니까 최소 "본전 치기"는 된다.
근데 무례하게 행동하면,
➡️ 타인의 감정이 상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무조건 마이너스이다.
지금이나 훗날에 그게 어떤 식으로든 당신에게 안 좋게 돌아온다.
- 결론
본인이 사회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던지,
➡️ 예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행동이다.
예의 바르게 한다고 무슨 돈이 들어?? 시간이 더 들어가??
근데 예의 바르게 하면, 그게 어떤 식으로든 나한테 좋게 돌아와!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도 있고, 누군가의 호의를 받을 수도 있고!!
그럼 예의를 안 갖출 이유가 뭐야?? 🤔
사람은 누구나 최상의 서비스를 최소한의 비용으로 누리고 싶어 한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는 공급자가 먼저 제안하는 할인이나 추가 서비스를 오히려 경계해야 할 때가 있다. 대가 없는 배려는 상황에 따라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1. 갚아줘야 한다는 부담감
지인들이 자발적으로 할인을 해주거나 서비스를 더 제공하면, 사람들은 보통 감사함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갚아야 할 부담을 안게 된다. 이 추가 서비스는 순수한 호의에서 나온 것이지만, 받는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보답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2. 소비자의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지인 의사가 공짜로 시술을 해준다고 해서 받았는데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만을 솔직히 말하기가 어렵다.
➡️ 할인을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로 이런 문제가 생긴다.
공짜나 할인을 받으면 소비자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예: 불만 제기)를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잦다.
결국, 원하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받을 때는 그냥 정가로 사는 게 더 편안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지인 가게를 일부러 피하는 사람도 많다.
➡️ 가끔 가서 매출을 올려주려 해도, 과도한 할인이나 서비스를 받으면 불만이 있어도 입 밖에 내기 힘들어진다.
➡️ 그래서 지인과의 거래는 오히려 더 피곤한 면이 있다.
술 마시고 술주정 부리는 사람을 멀리하면, 대한민국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은 현저하게 줄어든다.
그래서 술주정 부리는 사람을 무조건 걸러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이 만취해서 길바닥에서 잘 수도 있고, 토할 때까지 마실 수 있으며, 앞뒤가 맞지 않는 헛소리를 할 수도 있다.
사람이기 때문에 술 마시고 실수할 수 있는 법이다.
다만 술을 좋아하고 술주정을 부린다고 해서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술에 만취하면 타인을 대할 때 무척 공손해진다. 술집에서 화장실에 가거나 담배를 피우러 나가다가 다른 사람과 살짝만 부딪혀도 먼저 정중하게 사과를 건넨다.
이것은 육체적인 강함과는 무관하다.
복싱 선수나 보디빌더 같은 이들도 술을 마시면 똑같이 공손해지기 마련이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술에 취하면 더 조심스럽게 행동한다. 그러나 술을 잘못 배운 이들은 취할수록 고삐가 풀린 듯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 든다. 더 강해 보이려 애쓰고, 옆 사람과 눈을 맞부딪치며 과격한 언사와 신체 접촉을 일삼는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반드시 걸러야 한다.
필자는 설령 직접 목격하지 않았더라도 술 먹고 싸운 적이 있다는 말만 들으면 그 즉시 관계를 정리한다.
취했음에도 평소보다 조심하지 않고 공손해지지 않는 이는 절대로 정상이 아니다. 술이 사람을 못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원래 못된 사람임을 술이 알려주는 것뿐이다.
이런 이들과 자리를 함께하는 것은 시한폭탄을 짊어진 채 술을 마시는 것과 같다.
술을 마시고 조금이라도 공격성을 보이거나 말투가 강압적으로 변한다면, 진지하게 인연을 끊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드라마나 미디어가 비춘 실리콘밸리의 화려한 이미지 때문일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스타트업은 성장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수많은 인재가 회사와 운명을 같이하며 동반 성장하겠다는 야심찬 꿈을 품고 스타트업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대다수 스타트업은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중소기업의 또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스타트업의 현실은 이미 잘 정리해 놓은 글이 있고, 이보다 더 잘 정리할 자신이 없기에 여기에 링크를 남긴다.
- 스타트업을 떠나며 알게 된 것들
위의 글 중 감명 깊게 와닿았던 부분을 공유한다.
" 회사의 형태가 스타트업이든 대기업이든 간에 고용주는 직원을 고용해서 최대의 효과를 뽑고 싶어할 뿐이라는 것을요.
성공의 파이는 오로지 오너의 몫이에요.
개평을 던져주듯이 일부 금액을 돌려줄 수도 있겠지만, 그저 호의에 기대야 할 뿐 계약상의 문구가 없다면 공허한 거에요. "

" 25년간 유통업계에 종사하며 대기업 직장인으로 살았다. 휴일 근무며 야근도 마다하지 않고 직장에 몸을 던진 결과 승진을 거듭해 임원이 되었다. 그러다 50대 초반, 추석을 하루 앞두고 갑작스럽게 퇴직을 맞았다. 손에 남은 건 짐을 담은 바나나 박스 세 개뿐이었다. "
《 아들아, 돈 공부해야 한다 中 》
바늘구멍 같은 경쟁을 뚫고 대기업에 입성했다 해도 장밋빛 미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평사원이 임원의 별을 달 확률은 단 0.83%, 사장 자리에 오를 확률은 0.036%라는 가혹한 숫자가 이를 증명한다. 당신이 이 기적 같은 확률을 뚫어낼 극소수의 인재가 아니라면, 퇴직 이후의 삶을 대비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임원이라는 높은 문턱을 넘지 못한 절대다수는 만년 부장으로 머물다 40대 중반에서 50대 사이에 권고사직이라는 파도를 맞이한다. 2024년 기준 한국인의 기대 수명이 84.3세임을 고려할 때, 50세 퇴직은 남은 34년의 생애를 소득 없이 버텨야 한다는 뜻이다. 잔인한 진실은, 그 긴 시간을 버텨내야 할 당신이 더 이상 젊지도, 기회가 많지도 않다는 사실이다.
물론 임원이 된다고 해서 노후 고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은 만년 부장보다 조금 더 두터운 자본의 방패를 가졌을 뿐이다. 결국, 회사는 당신의 명함은 만들어줄지언정 인생 끝까지 책임져 주지는 않는다.
" 대한민국에서 노후에 돈 걱정이 없는 임원은 10% 정도이다. "
《 연봉 2억 대기업 임원들이 퇴직 후 노후가 어려워지는 이유 I 정선용 中 》

필자에게 유학의 꿈을 꾸게 하고 지금도 존경하는 형님이 한 분 계신다.
미국 명문 대학교 두 곳에서 학위를 받으시고, 금융업계에서 일하셨다. 손꼽는 엘리트이셨지만 사업만 하면 번번이 미끄러져 고배를 마셔야 했다.
음식을 잘 먹는 사람들은 유튜브와 먹방이라는 흐름을 타서 유명 크리에이터가 되었다.
이런 프로 먹방러들이 만약 2000년대에 활동했다면, 지금과 같은 인기를 누릴 수 있었을까?
아마 그냥 식비가 많이 드는 사람으로 남았을 것이다.
이처럼 세상에는 '시대 흐름'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내 능력과 사회적 흐름이 맞물릴 때, 그리고 그 흐름에 올라탈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큰 부자가 된다.
누가 먹방이 뜰 거라고 10년 전에 예측했겠는가? 누가 1인 방송이 뜰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우리는 그저 미래를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양한 것을 시도하며 시행 횟수를 늘리는 것뿐이다.
유튜버 빠니보틀은 30-40만 원 벌려고 시작했던 여행 유튜브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여기에는 크리에이터의 인간적인 매력과 기획력도 작용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유튜브와 1인 방송 시대라는 큰 흐름에 올라탔다는 것이다.
YouTube로 성공하는 방법
물론 그 후 수많은 여행 유튜버들이 등장했지만, 막대한 비용만 소모하고 조회수를 끌어내지 못한 채 '좀비 채널'로 전락한 사례도 적지 않다. 같은 콘텐츠라도 기획력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 게다가 구독자들이 크리에이터의 인간적 매력에 공감하고 좋아한다면, 대형 유튜버의 탄생은 시간문제다.
최근 몇 년 사이 "누구나 월 천만 원", "무자본 창업"이라는 자극적인 문구로 대중을 현혹하는 성공학 팔이들이 급증했다. 미디어에 출연하는 소위 '성공 전문가'들은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저도 했으니까요.”라고 하며, 마치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월 천만 원은 기본으로 벌 수 있는 것처럼 분위기를 조성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 봐야 한다. 정말 그렇게 쉽게 큰 돈을 벌 수 있다면, 본인이 왜 계속하지 않겠는가? 왜 그 좋은 방법을 남들에게 알려주려 하겠는가? 게다가 왜 불필요한 경쟁자를 스스로 만들겠는가? 한두 번은 월 천만 원을 벌었을 수 있겠지만, 그 수익이 지속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강의와 컨설팅으로 추가 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근로소득이든 사업소득이든, 월 천만 원을 버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사업에 실패한 이름 모를 수많은 사람들은 유튜브에 등장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존재를 쉽게 잊는다. 유튜브에 나오는 성공한 사람들은 극소수일 뿐이고, 실패한 대다수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인생의 설계도는 본인이 어떤 삶의 가치를 지향하느냐에 따라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 대한민국이라는 치열한 사회에서 개인은 조직 안에서 안정적으로 정년을 맞이할 것인지, 혹은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자신의 사업을 일궈나갈 것인지 명확한 노선을 정해야 한다.
특히 20대는 조직의 일원으로 사는 것이 적합한지, 아니면 스스로 길을 만드는 사업가적 기질이 있는지를 치열하게 탐색해야 하는 골든타임이다.
➡️ 단순히 취업 준비에만 매몰되지 말고, 소자본 창업과 같은 실전 경험을 쌓아보길 권한다.
운이 따라 수익을 낸다면 더할 나위 없고, 비록 실패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얻은 통찰은 취업 시장에서 대체 불가능한 본인만의 강력한 경쟁력이 될 것이다.
성공적인 사업을 꿈꾼다면 20대에 벌어들이는 소득은 오로지 자신의 성장을 위한 투자로 사용해야 한다. 특히 사업가 지망생에게는 '다양하게 써보는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평범한 물건부터 최상위 계층이 향유하는 최고급 제품까지 폭넓게 경험하며 시장의 흐름을 읽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나는 반드시 사업가로 성공하겠다", "큰 부를 창출하겠다"는 명확한 비전이 있다면 소비를 주저하지 말자.
사업의 본질은 사람들이 어떤 가치에 지갑을 여는지, 그리고 그 소비가 소비자에게 어떤 효용을 주는지를 정확히 꿰뚫어 보는 데 있기 때문이다.
20대에 쌓은 풍부한 소비 경험을 자산 삼아 30대에 본격적인 사업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 진정한 사업가는 지출을 줄이는 데 골몰하기보다, 어떻게 더 큰 가치를 창출하고 수익을 극대화할지 고민하는 데 시간을 쓰는 사람이다.
직장인은 수입의 확장을 고민하기에 앞서, 지출의 통제를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
직장인이라는 신분은 수입의 상한선이 정해져 있음을 의미한다.
이 길을 선택했다면 평생 검소함을 미덕으로 삼겠다는 결단이 필요하다.
➡️ 김짠부님 채널의 방식을 본받아 지출을 극단적으로 줄여야 한다.
과시욕을 채우거나 화려한 소비를 즐기고 싶다면 직장인의 삶은 본인에게 맞지 않는다.
조직의 일원으로 살아가기로 했다면 과도한 소비 습관과는 결별해야 한다.
➡️ 철저한 저축과 가계부 기록은 필수다!
정년까지 직장 생활을 이어갈 계획이라면,
“내 인생에 일확천금은 없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한다.
“나는 평생 로또 맞을 일이 없다”는 전제로 돈을 모아야 한다!
연봉 6,000~7,000만 원을 받는 5년 차 직장인이 자산을 형성하지 못했다면, 이는 경제적 무능력을 증명하는 꼴이다.
➡️ 자산 관리조차 못 하는 이가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달라고 외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고정된 수입 안에서 살아가는 직장인은 평생 자신의 자금 흐름을 예민하게 관리해야 한다.
➡️ 이런 제약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전하는 것이 사업이다.
하지만 사업의 불확실성과 위험을 짊어질 용기가 없다면, 그 대가로 사업가보다 몇 배는 더 독하게 아끼고 절약하는 삶을 수용해야 한다.
✅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만족스러운 길은 없다.
본인이 어떤 삶을 선택하든 자유지만, 그 선택한 삶에 맞는 방향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재테크로 완벽한 경제적 자유를 얻지 못했다면, 기업의 규모와 상관없이 누구나 퇴직 후 사업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사람들은 흔히 "왜 퇴직 후 너도나도 치킨집만 차리는지 모르겠다", "왜 준비 없이 시작해서 실패를 반복하는지 이해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평생 조직의 일원으로만 살아온 이들이 막상 야생으로 던져졌을 때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그리 많지 않다.
당장 생계는 유지해야 하는데, 명예퇴직 연령은 점차 낮아져 이제는 40~50대에 사회로 밀려난다.
남자의 경우 군 제대와 대학 졸업 후 30대 초반에 사회생활을 시작한다고 가정하면, 고작 10~20년 벌어서 남은 40년 이상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것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 계산인가?
결국 우리 중 대다수는 언젠가 자영업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그 상황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 지금 직장인이라 해서 '월급쟁이 사고방식'에만 갇혀 있지 말자.
➡️ 재테크 실패나 갑작스러운 은퇴에 대비해, 퇴직금이라는 마지막 보루를 지킬 실력을 키워야 한다.
"나는 사업과 거리가 먼 사람이야"라는 안일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사업가들의 마인드를 관찰하고, 줄 서는 식당을 보며 '왜 저 집은 성공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대기업 퇴직 후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으로 재취업에 성공하는 사례는 많다.
하지만 재취업의 문턱이 높을 때, 생존을 위한 마지막 선택지는 결국 사업이 된다.
✅ 이때 사업이라고 해서 반드시 치킨집 같은 요식업만 떠올릴 필요는 없다.
필자가 직장 생활 중 목격한 실질적인 사례들을 통해 그 가능성을 살펴보자.
- 사례 1: 업계의 전문성이 곧 수익 모델이 된 경우
건설사 임원 출신인J는 현직 시절 쌓은 강력한 인맥과 협상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는 업계 생리를 꿰뚫고 있었기에 9,000만 원 상당의 견적을 7,000만 원까지 조정하는 독보적인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퇴직 후 그는 이 전문성을 살려 기업의 원가 절감을 돕는 컨설팅 업체를 준비했고, 재직 시절 쌓은 두터운 신뢰 덕분에 이미 탄탄한 고객층을 확보한 상태다.
- 사례 2: 인적 네트워크가 새로운 시장을 열어준 경우
대기업 계열사 사장을 지낸 이 씨는 평소 교류하던 다른 기업 대표와의 인연을 계기로 화훼 시장에 뛰어들었다. 겉으로만 보면 '꽃 장사가 돈이 될까?'라며 의구심을 갖는 이들도 있겠지만, 시장의 구조를 깊이 들여다본 전문가에게는 화훼 산업 역시 거대한 잠재력을 지닌 블루오션이었다.
일반적으로 돈을 버는 일이 육아보다 더 어렵다.
반면, 육아를 하는 일은 돈을 버는 것보다 더 힘들다.
- 예시를 하나 들어보자.
월 1천만 원을 버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 수준은 특정 재능이나 운이 뒷받침되어야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다.
하지만 솔직히 육아는 학력이나 배경과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다.
고졸, 중졸, 초졸자까지도 육아를 해낸다.
따라서 돈 버는 일이 훨씬 더 어렵고, 육아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육아가 힘들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래서 수입이 더 높은 사람이 경제활동을 하고, 수입이 낮은 사람이 육아를 더 많이 담당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전업주부라면 육아는 본인의 역할로서 전담하는 것이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논리는 남편의 입장에서 다음과 같은 이유로 무효가 된다.
설령 남자가 돈을 많이 번다고 해도, 본인이 외롭지 않기 위해 육아에 참여해야 한다.
과거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사이의 아버지들은 대개 엄격한 모습으로 가정을 비우는 일이 잦았다.
어쩌다 집에 머무를 때조차 훈육과 잔소리를 도맡는 역할에 그쳤기에, 자녀들에게 아버지는 그저 멀고 두려운 존재로 각인되었다.
결국 자녀와 함께 추억을 쌓을 물리적 시간 자체가 부족했던 것이다.
대다수의 가정에서 자녀가 어머니를 더 가깝게 느끼는 현상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아버지의 노고를 머리로는 이해할지라도, 어린 시절 형성된 정서적 유대와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애착의 깊이를 거스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 요즘 시대의 아버지들은 이런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할 필요가 없다.
물론 힘들게 일하고 와서 육아까지 하는건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노후 대비를 하는 마음으로 아이들과 가능한 많이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자녀와 정서적 유대를 쌓는 일에는 소홀한 채 오로지 경제적 부양에만 전념하는 아버지는 훗날 자녀들이 자신을 그저
ATM기로만 여기는 현실을 마주하며 한탄한다.
이러한 남성들은 과거 자신이 육아와 정서적 교감에 참여하지 않았던 사실은 간과한 채, 필요할 때만 자신을 찾는 자녀들을 보며 "자식 키워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라고 서운함을 토로한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존재인 자녀가 경제적 지원이 필요할 때 외에는 나를 돌아보지 않게 된다면, 부모에게 그보다 더 서럽고 고통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어떤 아버지는 자녀에게 이렇게 묻기도 한다.
"아빠가 없으면 너희 삶이 어떻게 될지 한번 상상해봐. 너희 지금 학원비도, 먹고사는 것도 전부 아빠가 벌어오고 있잖아. 아빠 없으면 진짜 비참해질 거야."
틀린 말은 아니다.
경제적 제공이 가족의 생존에 중요한 요소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자녀가 성장하여 그 사실을 이성적으로 인지하게 된다 하더라도, 유아기에 마땅히 형성되었어야 할 정서적 애착은 성인이 된 후에 다시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들은 아무리 바쁘더라도 자녀를 낳아 기르기로 선택한 이상,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에 온 힘을 다해야 한다. 현재의 피로와 스트레스가 버겁다는 이유로 자녀와의 교감을 외면한다면, 그 결과는 고스란히 노년의 지독한 외로움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모든 아버지는 늙고 병들었을 때, 자녀가 자신을 어머니만큼 좋아해 주기를 바란다.
➡️ 하지만 이것은 아버지라는 이유만으로 당연히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자녀가 아주 어릴 때부터 함께 시간을 보내며 신뢰를 쌓으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훗날 자녀에게 어떤 아버지로 기억되고 싶은지 스스로 질문하며 행동하자!

10대에는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할 필요 없이 부모님이 정해준 길을 따르기만 하면 되었고, 20대에는 좋은 대학과 직장이라는 정해진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것이 전부였다. 어느덧 30대가 되어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나니, 이제는 나의 생계와 노후를 온전히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시점에 섰다.
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 앞에서, 내가 기억해야 할 기준들을 되새기기 위해 이 글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