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걸그룹 리센느가 흙바닥 위에 서서 〈LOVE ATTACK〉을 불렀다. 2024년에 발표한 이 노래는 이듬해 차트에서 한 차례 순위가 올랐다가 다시 내려갔다. 올해 리더 원이가 여러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찍은 콘텐츠들이 서서히 입소문을 타면서, 그제야 팀을 알게 된 사람들이 지난 무대와 라이브 영상을 찾아보며 친밀감을 키웠다. 그리고 차트 밖으로 밀려났던 〈LOVE ATTACK〉은 톱 10에 다시 진입했고, 결국 1위 무대까지 찍었다.
내가 본 것은 순위가 아니라 그 서사였다. 사람들은 원이를 먼저 알게 된 뒤, 멤버들이 무명의 시간 동안 묵묵히 쌓아 올린 일들을 찾아보았다.
나는 삶이라는 것이 종종 이야기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지금 겪는 일을 그 자리에서 다 이해하지 못한다. 다음 선택을 하고 나서야 앞선 일이 자신에게 무엇이었는지 알게 된다. 오래 애써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일 역시 그 안에 있다.
지금 개발자로 첫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곧바로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취업 문턱은 실제로 높다. 기업이 신입 개발자를 뽑는 경우는 줄었고, 처음 경력을 만들려는 사람에게도 실무 경험을 묻는다. 다른 직무에서 옮겨 왔거나 짧은 경력으로 다시 지원하는 사람도 같은 문턱 앞에 선다. 누군가 '인생은 이야기니까 기다려 보라'고 해도 생활비와 불안은 그대로다.
불합격 통보의 아픔은 대개 짧다. 그런데 개발자가 되려고 쌓아 올린 시간과 여러 번 고친 포트폴리오까지 한 번에 부정당했다고 여기기 쉽다. 회사가 실제로 내린 판단은 이번 채용에서 그 지원자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데까지인데, 사람은 종종 '나는 개발자가 될 수 없다'는 결론까지 스스로 덧붙인다.
내가 삶을 이야기로 생각하는 이유는 이 두 문장을 구분하고 싶어서다. 불합격은 받아들여야 할 사실이지만, '나는 개발자가 될 수 없다'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판단이다. 실력이 부족했을 수도 있고, 회사가 다른 경험을 원했거나 애초에 뽑는 자리가 적었을 수도 있다. 정확한 이유를 듣지 못했다면 좋은 쪽으로 지어낼 수도, 가장 나쁜 쪽으로 단정할 수도 없다.
두 문장을 구분하고 나면 다음에 살필 것도 달라진다. 자신 전체를 의심하는 대신, 이번 지원에서 보여 주지 못한 경험과 준비하는 동안 실제로 달라진 것을 확인한다. 어제는 화면을 따라 만들었지만 오늘은 컴포넌트를 나눈 이유와 클릭 뒤 상태를 확인한 순서를 설명할 수 있다면, 무엇이 바뀌었는지는 아는 것이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면 준비 방식을 바꿀 이유가 되고, 달라진 것이 있다면 다음 지원에서 더 분명히 보여 줄 근거가 된다.
무엇이 달라졌는지 확인한 다음에는 같은 준비를 계속할지, 방식을 바꿀지 판단할 수 있다. 때로는 잠시 멈춰 생계를 챙기거나 다른 일을 택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각자의 형편에서 내릴 선택이다. 나는 같은 직업을 끝까지 붙든 선택만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성 개발자인 내가 신입 채용에 지원하는 후배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은 합격을 예언하는 쪽보다, 회사가 한 번의 채용에서 내린 판단과 지원자가 앞으로 내릴 선택을 나누어 보게 하는 쪽에 가깝다. 준비하는 동안 무엇이 실제로 달라졌는지 함께 살피면, 합격을 보장할 수는 없어도 무엇을 더 할지와 언제 멈출지는 멘티가 스스로 정할 수 있다.
늦게 피는 일이 더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에게 같은 때를 요구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가장 늦게 핀 꽃을 좋아한다.
무관심의 시간을 묵묵히 버텨내며 이야기를 쌓아올린 그룹 리센느는 최근 상암운동장에서 5만 관중 앞에 서서 하프타임 쇼를 했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도 인고의 시간 뒤에 지금을 추억으로 이야기할 결말이 함께하길 바란다. 아직 이야기는 진행 중이고, 그대는 노를 저어야 한다.
우연히 보게된 글인데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최근에 이직준비를 하면서 서류 광탈을 하고 있는데요.
계속 떨어지다보니 저도 모르게 좀 나태해지기도 하고 좌절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저도 리센느를 보면서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또 열심히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요.
이 글을 읽어보니 왠지 모르게 다시 열심히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자 이제 피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