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전에
지금부터 적는 저의 이야기는 마이스터고를 진학하기전부터 개발자를 겪고 군대를 다녀오고 난 후 까지의 과장없는 저의 실제 이야기입니다.
언젠가는 써야지하다가 지금이 가장 큰 인생의 변곡점에 서있는것같아 앞으로의 계획도 세울겸 고등학교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을 정리해보기위해 글을 작성합니다.
저는 꿈도 방향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소심한 성격 탓에 늘 다른 사람들에게 끌려다녔고,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그저 그런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며 살아왔습니다.
그런 저에게 변화의 실마리가 찾아온 건 중학교 2학년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문득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너, 마이스터고라고 알아?"
당시 저는 평범하게 일반계 고등학교를 나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당연한 길이라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 제게 친구는 마이스터고 팸플릿을 건네며, 함께 입학설명회에 가보지 않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솔직히 그다지 내키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친구의 권유를 뿌리치기도 어려웠고, "한번 가보지 뭐"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 길에 따라나섰습니다.
제가 처음 방문한 마이스터고는 놀랍게도 소프트웨어마이스터고가 아닌 '항만물류마이스터고'였습니다. 그곳에서 여러 입학 설명을 듣고, 학교생활까지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항만물류라는 분야는 제게 좀처럼 와닿지 않았고, 결국 관심은 입학설명회를 끝으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날의 경험은 제게 적지 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취업연계형 교육이라는, 그동안 상상해 본 적 없던 길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큰 충격이었기 때문입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해 대학으로 가는 것만이 당연하다 여기던 제 생각은, 그렇게 조금씩 흔들리며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항만물류마이스터고 자체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마이스터고라는 존재를 알게 된 그 순간부터 제 안에서는 무언가가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전국에 어떤 마이스터고들이 있는지 하나하나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기계, 제빵, 조선, 에너지처럼 그동안 이름조차 몰랐던 다양한 분야의 학교들이 있었고, 그 목록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묘한 설렘이 차올랐습니다.
아무런 꿈도 없던 제게, 남들보다 한발 먼저 분야를 정하고 경력을 쌓아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엄청난 동기가 되었습니다.
목표 없이 흘려보내던 시간에 처음으로 방향이라는 것이 생기는 기분이었습니다.그렇게 여러 학교를 살펴보던 어느 순간, 문득 어릴 적부터 제가 가장 좋아했던 것이 게임과 컴퓨터였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늘 곁에 있어 당연하게 여겼던 그 관심사가, 그제야 하나의 진로로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곧장 소프트웨어마이스터고를 찾아보았고, 마침내 그 입학설명회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이후 입학설명회에서 교육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앞으로 지내게 될 기숙사와 학교생활 이야기까지 하나하나 접하다 보니, 개발자라는 직업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일인지 조금씩 실감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 없던 것을 내 손으로 만들어 낼 수 있고, 그렇게 만든 것으로 누군가의 불편함을 덜어 줄 수도 있는 직업.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막연했던 관심은 "바로 이거다"라는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이후 전 목적도 생겼겠다 마이스터고에 입학하기위해 학교에 계신 진로상담선생님께 도움을 받기위해 찾아갔습니다.
성적 및 앞으로의 진로등 제 고민을 털어놓은 후 상담을 통해 진로에 대한 확신을 얻은 뒤, 가장 먼저 마주한 현실은 낮은 성적이었습니다.
마이스터고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성적 향상이 반드시 필요했기에, 저는 이를 목표로 삼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결과 상위 50% 정도였던 성적을 상위 30%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입학 후 코딩을 배울 때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 코딩 학원을 다니며 미리 기초 실력을 쌓았습니다.
그렇게 나름의 준비를 마치고 입학한 소프트웨어마이스터고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평범하다면 평범한 학생이었지만, 개발을 좋아하는 마음만큼은 남들 못지않았습니다.
다만 학교생활 내내 저를 따라다닌 고민이 하나 있었습니다. 정작 제가 어떤 개발 분야를 하고 싶은지 감을 잡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취업을 해야 했기에, 마냥 고민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학교생활은 제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습니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한동안 집에서 화상통화로 수업을 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그때는 원격으로 진행되는 수업 내용을 제대로 집중해서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이후 등교가 재개되어 학교에서 직접 수업을 듣게 되었을 때, 놓쳤던 부분들을 따라잡기 위해 남들보다 몇 배는 더 공부해야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시기의 부담이 결코 가볍지는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개발이라는 것 자체가 좋았고, 그중에서도 게임 개발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그래서 게임 개발부터 시작하게 되었고, 그 노력의 결과로 운이좋게 교내 대회에서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좋아하는 일로 성과까지 얻으니 개발에 대한 애정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하지만 게임 개발을 이어갈수록 무언가 저와는 방향이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제가 개발한 것이 화면에 직접 그려지고 눈에 보이는 순간을 특히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결과물이 눈앞에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과정에서 큰 흥미와 성취감을 느꼈던 것입니다.
이러한 성향 때문인지, 다른 친구들은 1학년 때부터 하고 싶은 분야(백엔드, 프론트엔드, AI, 하드웨어 등)를 미리 정하고 2학년부터 그 분야를 깊게 파고들었던 반면, 저는 게임 개발로 시작해 안드로이드, 웹 프론트엔드까지 두루 거칠 만큼 한 분야에 쉽게 정착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특정 기술을 깊이 있게 다뤄보지 못했고, 이대로 가다가는 취업에 불리하겠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습니다.
화면에 직접 그려지는 개발을 좋아했던 만큼, 저는 자연스럽게 안드로이드와 웹 프론트엔드 사이에서 진로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두 갈래 중,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한 안드로이드 네이티브 개발자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굳혔습니다.
그렇게 방향을 정한 뒤, 저는 안드로이드 분야를 집중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교내외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개인적으로도 여러 사이드 프로젝트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만드는 일 자체를 좋아했고, 또 즐겼습니다. (물론 오류를 마주하는 순간만큼은 그리 반갑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대단히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개발을 좋아하는 저의 진심을 좋게 봐주신 기업이 있었고, 덕분에 저는 3학년 때 취업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인 채, 저의 진짜 개발자로서의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첫 번째 회사에서 겪었던 이야기들 — 처음 맡았던 안드로이드 키오스크 프로젝트, 웹과 모바일을 동시에 공부하며 성장했던 시간, 10만 명이 넘는 사용자가 이용하는 서비스를 유지보수하며 번아웃과 성장을 함께 겪었던 순간들, 그리고 제가 추구하는 개발 가치와 회사가 바라는 업무 사이에서 고민하다 결국 이직을 결심하기까지의 과정 — 은 아래 글에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첫 회사에서 근무할 당시, 저는 산업기능요원 자격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신분 특성상 이직을 결정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추구했던 코드리뷰 문화, 그리고 제대로 된 트래픽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마음까지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물론 회사에서도 코드리뷰 문화를 정착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빠르게 PoC 과정을 거치고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맡아야 하는 환경에서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이직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이직을 마음먹은 뒤로는 회사를 다니면서 틈틈이 면접을 준비했고, 여러 회사에 지원할 이력서를 다듬어 나갔습니다.
쉽지 않은 병행이었지만, 목표가 분명했기에 꾸준히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제가 생각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회사
코드리뷰 문화가 정착되어 있고, 규모 있는 트래픽을 경험할 수 있는 곳
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회사에 입사한 뒤, 저는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지금까지는 거의 체계 없이 홀로 관리하던 프로젝트들을 다뤄왔는데, 이곳에서는 진짜 서비스를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협업 프로젝트를 마주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일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코드는 몇천 줄을 넘어갔고, 오래된 레거시 코드도 곳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그 레거시를 이해하고, 이를 마이그레이션하는 작업까지 거쳐야 했습니다.
두 번째 회사에서 제가 맡았던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Pug 템플릿 기반의 레거시 화면을 React 컴포넌트로 이식하는 작업을 담당했는데, 단순히 화면을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구조까지 신경 쓰며 개발해야 했습니다.
또한, 플랫폼에서 새로운 이벤트가 나올 때마다 그에 맞춰 UI와 내부 정책을 새롭게 변경하는 이벤트 대응 업무를 맡았고, 매일 QA에서 발견되는 오류들을 수정하는 일도 함께 진행했습니다.
3-3. 스스로 마주한 한계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저는 제 부족함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제 코드 해석 능력, 그리고 주변에서 늘 강조하던 "코드를 넓게 보는 시선"을 저 스스로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매일같이 올라오는 버그 해결 토큰을 처리할 때도 코드를 해석하는 능력이 부족했고, 업무적으로도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 구현이나, 내부 정책을 깊이 이해해야 하는 기능들이 토큰으로 할당되어 적잖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야근을 자처하는 날도 점점 늘어갔습니다.
무엇보다 회사가 제게 거는 기대가 컸던 만큼, 그 기대를 온전히 채우지 못했다는 부담이 컸습니다.
제 능력 밖의 일도 몇 가지 있었고, 결국 저는 입사 당시 회사가 기대했던 퍼포먼스를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채 6개월 만에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었지만, 제가 무엇이 부족한지를 분명하게 마주할 수 있었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다만,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서 저는 산업기능요원 자격을 잃고 군대에 가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처음에는 군 복무로 인해 생길 경력 단절이 두려웠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한창 스펙을 쌓아갈 시기에 군대에 가야 하는 제 자신이 싫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계속 고민하다 보니, 어차피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일이라면 차라리 하나의 경험으로 받아들이자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산업기능요원을 시작할 때 다녀왔던 훈련소의 연장선이라 여기고 마음을 비우니 한결 나아졌습니다.
다만 훈련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여전히 막막하게 느껴졌습니다.
이후 저는 훈련소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수한 뒤 자대로 배치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생각지도 못하게 군사경찰이라는 보직을 받게 되어, 말로만 듣던 군대를 색다른 자리에서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남들보다 빨리 전역한다는 사실 때문에 처음부터 상병으로 군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 점만큼은 분명 쉽지 않은 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불리한 상황들을 겪어낸 덕분에 오히려 사회생활 능력만큼은 눈에 띄게 성장했습니다.
이제는 누구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까지 생겼을 정도입니다.
그렇게 저는 짧지만 강렬했던 군 생활을 마치고 무사히 전역하게 되었습니다.
군대를 전역한 이후, 저는 다시 취업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군 복무를 하던 그 짧은 사이, 세상은 빠르게 달라져 있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코드의 맥락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던 AI가, 이제는 프롬프트 하나만으로 앱 하나를 출시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무기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변화를 마주하고 나니, 저 역시 새로운 기술을 습득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문제는 그 시간을 버티려면 당장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 지금 생각하면 그때 무슨 마음이었는지 모르겠지만 — 저는 닭갈비집 주방 알바에 지원했습니다.
하루 12시간씩 생전 처음 해보는 주방 일을 하며, 돈을 번다는 것이 이렇게나 힘든 일인지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원래는 퇴근 후 매일 공부하기로 다짐했었습니다. 하지만 하루 12시간을 꼬박 일하고 나면 '오늘은 그냥 쉬자'는 생각에 밀려, 결국 주방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적을 잃은 채 멍하니 설거지를 하고 있는 제 모습이 문득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순간 '아, 이제는 정말 개발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부터 구상해두었던 개발 아이디어 두 가지를 AI와 협업하며 다시 한번 개발에 도전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결심한 뒤로는 12시간씩 일하던 주방 일을 그만두고 근무 시간이 짧은 알바로 전향한 뒤, 개발에만 온전히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두 아이디어를 각각 웹과 앱으로 개발하며, 최초 기획부터 디자인, 기능 구현, 검수, 출시에 이르기까지 개발의 모든 흐름을 직접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을 거치며 저는 한층 더 성장한 개발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회고록은 이후에 따로 작성하겠습니다.)
군대에서 처음 계획했던 새로운 프로젝트와 역량 강화, 그리고 이력서 점검까지 마치고 '본격적으로 다시 개발자로 취업하기'라는 목표에 이르기까지, 전역 이후 장장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야 그 출발선에 서게 되었습니다.
현재 저는 그 목표를 향해 구직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써야지, 써야지 하고 미뤄왔던 이야기를 이제야 작성했습니다.
여러 일들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지금이, 지난 시간을 돌아보기에 알맞은 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고등학생 시절의 제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그 하나하나가 제게는 더없이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지금 저는 또 하나의 변곡점 위에 서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나중에 다시 돌아볼때 더 성장한 제가 되면 좋겠습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