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2021년 돌아보기

임채욱·2021년 1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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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 한 후 실천하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얼마나 실천했는지에 대한 회고를 또 다시 진행하면서 2020년부터의 1년이 너무 간략하게 표현되어 있어 빠진 부분을 보강해보려한다.

어쩌다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는가

학교를 다닐때는 서울로 올라와서 취업을 해야겠다! 라고 생각한적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어쩌다 서울로 올라와서 취업까지하게 된건지 다시 한번 돌아보려한다.

2019년 12월 창원에서 한 회사에서 최종면접인것으로 알고 있던 면접을 합격하였으나 추가적인 면접이 있다는 소식을 받게 된다.

또한 추가적인 면접은 다른 지원자들을 추가로 받아 진행하기에 정확한 일정을 알려줄수가 없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을 만드는 회사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마침 교내에 붙어있던 42seoul 홍보 포스터를 보고 지원하게 된다.

결국 42seoul 1기에 합격하게 되며 서울에서 진행하는 오리엔테이션, 창의캠프를 참가하며 과정에 대해 준비하게 되었다.

이때 창의캠프에서 만난 친구들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몇주 후 피씬이라는 한달 동안의 선별 과정을 거치게 된다.

서울로 올라오다

42seoul의 선별 과정인 피씬은 C언어로 과제를 진행하고 매주 시험을 치르게 된다.

당시에는 1기였기에 아무런 정보가 없었고 과제와 시험이 본과정 선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몰랐기에 한달동안 혹독한 스케줄로 개발 공부를 진행하였다.

매일 아침 9시에 42seoul 클러스터(학습을 진행하는 장소)로 출근하여 막차가 다니는 10시까지 개발 과제를 진행하였다.

과제 내용은 C언어로 진행되었고 이미 C언어를 알고 있었지만 제한된 환경(vim 사용), 맥 환경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적응하는데 많은 애를 먹었다.

42seoul에는 개발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주어지는 과제는 처음 개발을 하는사람들이 무난하게 진행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애초에 동료기반 학습을 하는곳이기도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C언어를 모르고 있었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많은것들을 알려주게 되었다.

알려주는 과정을 많이 하게 되다 보니 시간상 과제와 시험 준비는 조금씩 부족해질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고 내가 작성한 코드를 피드백을 받으면서 다른 사람과 의견을 주고 받고 이해하는게 얼마나 어려운일인지 알게 되었다.

여러 불안 요소는 있었지만 결국 42seoul 본과정에는 합격하게 되었다.

이 때 많은 사람들과 의견을 주고 받았던것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최대한 파악하려하는 나를 만드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던것 같다.

그런데 어쩌다 부스트 캠프를?

본과정에 시작한지도 몇달이 지났다.

본과정이 시작될 무렵 코로나가 무섭게 퍼지면서 클러스터는 닫히게 되고 몇달동안 과정이 진행되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온라인으로 과정을 진행하게 되었다.

당시 42seoul 본과정은 온라인을 위한 학습 기반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에로사항이 있었다.

혼자서 과제를 진행하는것은 피씬에서 겪었던 의견을 주고 받는 과정을 겪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피씬때 만났던 동료들과 모여 과제를 진행하게 된다.

주로 카페에서 과제를 진행하였는데 과제를 진행하다보면 밤새는 일도 자주 있었기에 매일 같이 모여서 하지는 못하였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코로나가 진정되지는 않았지만 무한정으로 본과정을 닫을 수 없었기에 결국 클러스터가 열리게 되었다.

다시 클러스터가 열린것은 여름이 다가오던 시기였다.

이때쯤의 나는 슬슬 과제 진행 속도의 슬럼프를 겪고 있던 시기였다.

그러던 중 한 동료가 부스트캠프 풀스택 과정을 추천해주었다.

처음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얘기를 들어볼수록 괜찮아보였고 그 동료와 함께 지원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동료는 다른 교육 과정을 합격하였고 부스트 캠프는 나 혼자 참가하게 되었다.

부스트캠프에서 만난 고비

부스트 캠프도 한달의 선별과정이 있었다.

매일 주어지는 과제를 해결하고 그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여 gist에 올리는 형태였다.

처음에는 리눅스 환경을 설정하는 것과 같은 간단한 과제였다.

42seoul에서 이미 리눅스 환경은 익숙해진 상태였기에 큰 어려움없이 과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갈수록 cs지식과 더불어 javascript를 다양하게 활용하는 과제가 나오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사실 과제 자체의 어려움도 있었지만 가장 힘들었던것은 여러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긴것이다.

선별 과정 도중에 가족 여행을 갔었고 42 동료들과 강릉 여행도 갔다.

매일 나오는 과제를 해야했던 나는 과제가 없는 하루 정도만 여행에 참가할 수 있었고 과제가 있는 날에는 여행지에서 혼자 과제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본가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죽어 한동안 우울해하기도 하였다.

이 때가 나의 가장 큰 고비였던것 같다.

동료의 격려가 없었다면 이 고비를 넘기지 쉽지 않았을것이라 생각한다.

결국 이 역경을 모두 이겨내면서 내 정신력이 많이 강해진 것을 느꼈다.

부스트캠프와 42seoul을 병행하다

부스트 캠프도 합격하게되면서 부스트캠프 본과정와 42seoul 본과정을 동시 진행하게 되었다.

다행히 42seoul은 시간적 제약이 없었기 때문에 병행하는데는 지장이 없었다.

그래서 아침9시부터 저녁 7시까지는 부스트캠프, 저녁이후부터 새벽 2시까지는 42seoul과 같은 지옥같은 일정을 5개월간 진행하게 된다.

이때의 5개월은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것 같다.

밥먹는 시간과 방 청소 시간 등을 최대한 아껴가면서 오로지 개발에 몰두했던 기간이었다.

airbnb 클론, IssueTracker, slack clone 등의 프로젝트를 거치면서 바닐라js, reactjs, nodejs, mysql, mongoDB, git, pull request, code review, test code를 익히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러 2020년 12월, 부스트캠프가 끝이 났다.

현재

여기까지가 회사에 입사하기전에 있었던 일들이다.

그 이후로는 1년 돌아보기라는 글에서 적었듯이 취업을 하고 지금까지도 회사를 다니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했던 회고에 대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운동은 반만 성공했다.

원래 목표는 집에 구비한 턱걸이 봉과 아령, 그리고 달리기로 체력을 늘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모든 과정을 꾸준히 진행하지는 못했고 주말 오전 30분 달리기, 격일로 턱걸이 및 운동과 같이 이전보다는 나아졌지만 당초 목표했던 충분한 운동량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심도 깊은 개발
최근에 nestjs에 대해서 알아보고 간단한 튜토리얼 수준의 프로젝트를 진행해보고 있다.

또한 회사에서 사이트프로젝트 형태로 정산 서버를 nestjs로 만들고 있다.

nestjs를 공부하고 사용하면서 기존에 알지 못했던 개념들을 많이 알게 되는 중이다.

이에 더불어 ruby책, ruby on rails 책을 읽고 real mysql 책을 읽고 있는데 이러한 책들을 읽어가면서 점차 시야가 넓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real mysql 책을 다 읽으면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을 점차 읽어나갈 것이다.

테스트코드
nestjs를 하게 되면 기본적으로 test code file이 자동 생성된다.

이에 따라 테스트 코드를 간단하게라도 만들기 시작했다.

단, mocking을 제대로 하는 법을 아직 잘 모르는 문제가 있어 좀 더 연구를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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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을 추구하는 개발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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