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인생 드디어 결정

octofox·2023년 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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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린이 시작

나는 코딩을 배우게 된게... 19살 때부터였다.
내가 그때 필리핀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때였다. 건설 현장에서 봉사했는데 건물이 거의다 준공된 시점에는 그 안에 TV와 음향기기가 들어왔다.
필리핀은 빈부격차가 정말 심한 나라다. 그래서 도둑들이 많다. 그런 이유에서 나와 몇몇 사람들은 밤중에도 건설현장을 지켰다. 안에 들어있는 값 비싼 기계들을 훔쳐갈 수도 있으니 말이다.

밤중에 건설현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있을까? 누구는 성경을 읽고 누구는 코딩을 했다.
나는 그때 네이버를 켜서 웹툰을 보고 있었다.
건설 현장에 인터넷은 사실 건설 중역들이 사용하는 비공개 네트워크였는데 누구 한명이 우리가 너무 심심해 보였는지 비공개 와이파이를 몰래 알려주어서 사용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내 뒤에서 관리자가 와서 지금 어떻게 인터넷을 사용중인지 물었다. 갑자기 소리 없이 뒤로 다가와서 너무 놀랐다. 그래서 나는 모든일을 사실대로 말씀드렸다. 그렇게 다음 날 부터 와이파이 비밀번호가 변경되서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나와 같이 나이트 가드를 서는 사람들은 나를 원망했다. 코딩을 업으로 하는 사람도 있었기에 인터넷을 못하니 일을 못하게 되어서... 그리고 죽도록 심심해서 일 것이다.

나는 너무 미안했다. 나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잉여로워졌다. 그래서 결심했다. 와이파이를 해킹하기로...
그때 부터 나는 밤중에 아이패드에 칼리리눅스와 네트워크 패킷, 3way handshake, 사전공격, wpa2 등을 pdf로 담아와서 공부했다. 그리고 삼성노트북에 외장 수신기를 달아서 패킷을 모아 보았다. 말 그대로 불법을 저지르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역시 패킷을 모으는 것부터 막혀서 나의 공부는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건설 현장에서 사용하는 와이파이로 드나드는 패킷을 잡는다는게 정말 오랜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건설현장에서 낮중에 하루종일 잠복할 수도 없는 노릇에 그때 삼성노트북은 윈도우 7이었다. 모든게 너무 느리고 어려웠다. 그래서 맘 좋게 포기했다.

무슨 일 할거야?

그렇게 나는 코딩을 시작했다.
19살에 딱 무언가 '이제는 성인이니까!' 하는 생각이 들때 나는 진로가 걱정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직업에 대한 몇가지 중요한 점은 이렇다.

  1. 어느 정도 시간의 자유가 있는가?
  2. 공간의 제약이 있는가?
  3. 안정적인가?
  4. 단순한가?
  5. 건강을 해치는가?

그렇게 3가지 정도의 직업을 후보 두었다.

  1. 미용사
  2. 목수
  3. 화이트 해커

미용사는 그때 선택했어도 그렇게 후회하는 선택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도 미용실 어딜가나 기다려야하는 거 보니 말이다.
목수는 내가 건설에서 조금 일도 하고, 창작의 즐거움이 있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호흡기가 엉망인 나는 먼지가 너무 많으면 힘들다...
화이트 해커는 시간은 없어 보이고, 단순하지 않고... 다만 미래에 점점 중요해져서 포텐셜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적성에 맞았다. 애기 때부터 시계란 시계는 다 분해하고, 해부하고, 게임이 돌아가지 않으면 초등학생 때 게임설치 오류 검색만 하루종일하고 기뻐하고 그랬으니 말이다.

그리고 밤에 같이 보초를 섰던 코딩을 하던 형님들의 삶이 좋아보였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코딩도 하고 봉사도 하니 말이다.
그곳에는 우리 모두 알만한 kingStone 저장장치를 만드는 공장이 있었다. 그곳 제품을 알리익스프레스로 팔기도 하고 형님들 중 한명은 컴퓨터를 너무 잘해서 필리핀 신문에 나왔던 사람도 있었다. 은퇴하셨지만 말이다... 당연히 모두 필리핀 사람들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 대한 장점을 생각하며 막연히 컴퓨터를 공부하기로 맘 먹었다.

그렇게 해킹보안학과에 들어가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렇게 2년 정도 공부하고 C를 배우고 포렌식, 리버싱, 복호화, 모의해킹, 웹해킹에서 너무나 헤매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 일자리를 찾아보았는데, 보안관제일은 3교대 밤낮으로 딱 그거 하나였다.
하지만 앱, 웹 개발 일자리는 눈에 꾀 많이 띄였다. 마침 웹해킹에 관심이 있었고 마음속에는 풀스택 웹 개발자에 웹 보안까지 하는 진정한 풀스택이 되어보자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php를 사용하는 정말 작은 4인 회사에 들어갔다. 회사의 주 수입원은 온라인 판매였다. 코딩은 사장님 혼자하셨다.

첫 직장

그렇게 3년간 회사다니게 되었다.
php 게시판, php 재고관리 웹앱, cafe24 커스텀, 파이썬 인공지능, flutter 앱, react & 크롤링을 위한 chrome extension 개발까지...
정말 많은 분야를 경험해보았다. 하지만 뭐... 급여가 오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급여가 문제도 아니었다. 문제는 나의 미래였다.
이렇게 많은 분야를 경험은 했지만 이제 "octofox씨는 어느 분야에 전문가이신가요?" 하고 물어본다면... 나는 "전문가요? 제가요? 아닌데요" 하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어느 한 분야에 몸 담그기를 갈망했다. 하지만 회사에서 혼자서는 무엇을 하든 무리였다. 사수도 없었고, 지속가능한 코딩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서비스 하나에만 백엔드에 들어가는 기술만 TypeScript, typeorm, type-Graphql, pm2. 프론트 기술은 react, apollo client, vite, chrome-extension... 혼자 하려니 스택을 단순화하는 것이 필요했다. 결과적으로 프로잭트를 끝마치지는 못했다.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에서 공간과 시간에 대한 장점을 생각했지만 정신적인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배우는 즐거움이 고통이 되었다.

그렇게 내가 원하는 프로그래머의 삶을 다시 그리게 되었다. 여러가지를 배우면 다 좋을거라고 생각되던 것이 너무 괴로워졌다. 나는 나 나름대로 덕업일치를 이뤄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니었다. 그렇게 퇴사를 결심했다.

퇴사하고 다시 ios 삽을 잡았다

정말 넓게 그리고 얕게 컴퓨터 세상을 돌아다녔다. 이제는 금이 나오는 구덩이를 팔 것이다. ios를 하기로 결정지었다. 지속가능해 보이고 결국 복잡해보이는 것들을 정복하다 보면 내 삶을 단순하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만능 개발자? 존재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아니다.

조로와 같은 3도류 보다는 미호크 같은 일도류가 더 마음에 든다.

ios는 업데이트가 느리다. 안드로이드에서는 진작에 나왔을 것들이 ios에서는 정말 느리게 나왔다.
아이패드에 계산기를 넣어주지 않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나는 그 점이 너무 좋다. ios는 개발자를 위해서라도 미래에 대한 허튼 걸음은 나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ios 개발자라고 내 소개를 해야겠다.

해커도 아니고, 풀스택 웹, 풀스택 앱 개발자도 아닌 저는

안녕하세요. ios 개발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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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라고 우기는 노답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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