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한 지 8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밸류업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개인 투자자와 기업, 기관, 외국인 등 이해관계자간 시각차와 여·야 갈등, 정부 정책과 시장 상황의 엇박자 등 풀어야 할 숙제가 늘어나며 당초 기업가치 제고라는 목표에서 벗어나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1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기업가치제고계획(예고 포함)을 공시한 기업은 50여곳으로 집계됐다. 2600여개 코스피·코스닥 상장 기업 중 밸류업에 동참하고 있는 기업의 비율이 2%도 되지 않는 셈이다.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 금융투자협회 등 유관 기관들이 인센티브 방안과 설명회 등으로 참여를 독려하고 있지만, 세제개편안과 상법 개정, 금투세 등 추진 정책들이 하나도 확정되지 못하면서 기업의 참여 요인도 떨어지고 있다.
정부정책은 또 한번 여·야 갈등에 발목이 잡혔다. 거대 야당과 충분히 소통하지 않고 법 개정이 필요한 정책을 추진한 것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주식 상속세 저감, 밸류업 참여 기업에 대한 법인세 감면, 배당소득 분리과세, 금투세 폐지 등은 모두 국회를 거쳐야 시행할 수 있는 정책이다.
국회가 국감에 들어가며 관련 법안 논의는 여전히 요원한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코리아 부스트업'이라는 별도의 프로그램까지 추진하며 여·야 사이는 더 멀어졌다. 정부안이 기업들의 주주환원 확대를 유도하는 방식이었다면 야당은 기업의 지배구조를 고치는데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거대야당이 추진하고 있는 정책도 추진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미 정부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제시한 상법 개정안이 기업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상법에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고치는 것 하나만으로도 수개월간의 시간이 지체되고 있다.
지배구조 개선은 기업과의 대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의 한 축을 담당하는 지배구조 개선이 필수 선결 과제로 꼽히지만, 기업은 경영환경과 경쟁력 약화를 우려한다.
'지배구조 개선' 자체에는 공감하지만,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주주 중심의 방식이 아닌 기업과 경영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것이 기업의 주장 요지다. 정부와 기업, 개인 투자자뿐 아니라 지배구조 개선에는 외국인과 연기금 등 기관 투자자까지 엮여 있다.
외국에서는 밸류업 정책을 위해 재벌 중심의 기업 지배구조가 먼저 해결돼야 한다고 조언했고, 연기금은 최근 강조된 ESG경영 우수기업을 스튜어드십 코드(의결권 행사 지침)에 포함시켰다. 결국 지배구조를 개선한 기업에 더 많은 투자를 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연기금의 투자는 주식시장 전체를 움직이는 힘을 갖는다.
최근 한국거래소가 발표한 '밸류업 지수'에 대한 비판도 여전하다. 그동안 정부가 강조했던 '저평가' 기업이 아닌 주가순자산비율(PBR)은 높고 자기자본수익률(ROE)는 낮은 기업이 대거 포함되면서다.
밸류업 지수가 밸류업 정책을 반영하지 못하면서 기업과 투자자 모두에게 혼란만 키웠다는 지적이다. 기업은 향후 경영 방향을 잃었고, 정책에 대한 신뢰도를 낮추는 결과를 불러왔다.
결국 밸류업 정책의 당초 목표였던 국내 주식시장 저평가문제 해소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코스피는 전쟁 중인 나라보다도 낮은 연간 성장률을 보이고 있고, 호재는 가장 늦게, 악재는 가장 먼저 반영하는 시장으로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밸류업 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정부가 정책을 이끌어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가 필수인 정책임을 고려하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챙겨야 한다는 것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밸류업 프로그램 자체가 단기간에 승부를 보는 프로그램이 아닌 만큼 당장의 증시 변화로 판단하긴 어렵지만, 아직까지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동참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특히 정치적 불확실성이 큰 만큼 최대한 신속하게 합의를 도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합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밸류업에 참여한 기업들의 공시 이행 여부 등 장기적인 관점에서 꾸준히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AI 3줄 요약
-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정치적 갈등과 정책 미확정으로 인해 기업 참여가 저조하며, 당초 목표인 기업가치 제고에서 벗어나고 있다.
-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한 논의도 기업들의 반발로 지연되고 있으며, 밸류업 지수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회적 합의와 정책 일관성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