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년 10월부터 23년 9월까지, 2년 간의 42SEOUL 공통과정을 마쳤다. 교훈을 얻어도 자꾸 까먹는 나니까 적어두고 기억하려고 한다.
42SEOUL이 알려 준 것
42SEOUL의 커리큘럼과 커뮤니티를 통해 배운 것은 이렇다.
1.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기
- 42SEOUL에서는 '이곳은 실패가 허용된 곳이고, 실패는 성장의 밑거름'이라는 분위기가 있었다. 학생들은 실패하면 '덕분에 뭘 고치면 된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고, 과제나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을 때 다음 과제 제출 가능 시기까지 주어지는 쿨타임에는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자'고 말했다.
- 특히 시스템 문제로 시험 시작 시간이 넘도록 대기해야 했던 상황에서 모두가 '이번 시험은 못 보나 본데' 하며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텍스트 에디터를 켜고 자기가 준비한 답안코드를 홀로 타이핑하던 한 사람에게 감명 받았던 기억이..
- 어쨌든 이런 학풍 속에서, 실패했을 때에도 '타격감제로'의 상태를 유지하고 계속 앞으로 가는 자세를 배웠다. 나에게는 가장 큰 수확이었다.
- 한편, 평가 직전 공개되는 평가기준과 랜덤매칭되는 평가자와 내 프로그램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일어날 다양한 상황들에 대비해, 사전 테스트, 동료의 리뷰, 메모리 누수 등 기본적인 사항 재확인 등으로 완벽을 기하는 자세도 배웠다.
성공이 좋아
2. 기한을 지키기
- 42SEOUL의 공통과정에는 '블랙홀'이라는 시스템이 있다. 블랙홀은 게임의 생명처럼 작용해서 결과적으로 각 과제를 정해진 기간 안에 통과하지 못하면 42seoul의 학생자격이 박탈된다.
- 진척이 더딘 이론 공부에만 매달려 있던 시기에 동료가 '그러다 블랙홀 간다. 일단 되게 만들어 놓고 그 다음에 하고 싶은 공부를 해라.'라고 조언해주었는데, 이때 내가 과제의 '기한'을 기준으로 일을 하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크게 깨달을 수 있었다.
- 일단 되게 해 놓으니 기한에 쫒기지 않아 마음이 편했고 다시 시작한 이론 공부도 속도를 내 끝낼 수 있었다.
3.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의 중요성
- 42SEOUL 운영진들은 42SEOUL 공통과정을 잘 진행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여러분은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잘 만든 것'이란 말을 자주 했다. 일에 대한 의지뿐 아니라 주변 환경을 정리하고 가꿔나가는 것도 일을 잘 하기 위해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배웠다.
- 교육과정 동안 주거 관련 문제(긴 통학시간, 계속 바뀌는 거처, 집의 소음)가 나를 가장 힘들게 했었는데 이 부분을 초반에 해결하기 위해 좀더 노력했으면 42SEOUL에 좀더 집중할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42SEOUL의 교육장 강남에 있었던 것부터 잘못이 아니었던가 싶기는 하지만..
- 한편, 이 시기에 '환경을 바꾸는 건 에너지가 더 소모되는 경우가 많다. 나를 바꾸는 건 쉽다. 불평만 말고 나를 바꿔볼 생각부터 하라'는 조언을 들었는데 그때 살짝 뼈를 맞았다. 실제로 '바꿀 수 없는 환경'이라는 문제에 닥쳤을 때 거기에 나를 맞추려고 하다 보면, 사실은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때도 있고 오히려 더 좋은 방식을 찾기도 한다는 것을 기억하기로.
발견한 나의 강점
자기 장점을 모른다는 치명적인 나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내 멋진 점을 쥐어짜적어 보자.
1. 목표 달성을 위한 추진력
- 42SEOUL을 알게 되고 도전을 결심했을 때 '이게 아니면 안 된다'는 간절함이 있었다. Pisine이라 불리는 1달 간의 선발과정 기간 동안 강남에 숙소를 잡고, 기상시간을 앞당기고, 하루 종일 공부했다. 선발기준이 비공개였기 때문에 예상되는 평가요소를 모두 만족하기 위해 온 신경을 기울였다. 코로나로 격일출석만 허용되는 상황을 보완하기 위해 출석 불가 요일에 만나 동료학습하는 스터디를 만들어 운영했다.
- 20살 이후 줄곧 무기력했던 나였기 때문에 뭔가를 위해 온 힘을 다하는 것은 이제는 잃어버린 내 모습이라고 생각했었다. 내 안의 활기를 찾을 수 있어서 정말 소중했던 한 달이었다.
2. 정보의 왜곡을 해결하는 의사소통 능력
- 팀 프로젝트에서 UI회의를 미흡하게 마친 탓에 팀원들이 이해하고 있는 내용이 서로 다를 때는 피그마로 지금까지의 논의내용을 그려 왔고, 내가 우리 팀 코드에서 발견한 자료구조적인 문제를 말했지만 팀원이 잘 이해하지 못할 때는 클래스 다이어그램을 간단하게 배워 그려서 설명했는데 효과가 좋았다.
- 그밖에도 중구난방인 용어를 통일시킨다거나 레퍼런스를 가져온다거나 하는 식으로 회의 시간의 혼란을 줄이는 데에 기여했다.
- 정보의 왜곡이 있을 때 그 원인을 찾아서 해결하는 것이 재미있는 것 같다. 보조적 툴의 사용이나 규칙의 추가를 통해서 의미를 보다 확실히 하는 작업에 시간을 좀더 투자하면, 이후의 의사소통 과정은 더 효율화된다.
내 성장의 방향은
나와 다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 부족한 점을 비춰볼 수 있었고, 동료들로부터 배운 것들이 많았다.
먼저 내 일하는 방식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하자.
1. 일단 해보기
- 본격적인 시작을 하기 전에 '아직 준비가 덜 됐어'라며 준비만 너무 많이 하는 것이 나의 단점이었다.
- 내가 문제가 있는 코드를 앞에 두고 '여기가 문제인 것 같은데 어떻게 바꿔야 할까? 이렇게 바꾸는 건 말이 안 되는 거 같고, 저렇게 바꾸는 건...' 하면서 생각만 하고 있을 때, 팀원이 그냥 내키는 대로 고친 후 결과를 확인해 보던 일이 내게 큰 인상을 남겼다.
- 생각이 정체되어 있을 때는 일단 아무 거나 해보면, 맞는지 바로 확인해 볼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생각이 나기도 한다는 것을 배웠다. 이제는 누가 고민만 하고 있으면 '일단 해 봐'하며 독촉하는 사람이 되었다.
2. 양에 압도 당하지 않기
- 해야 할 것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거나 난이도가 높아 보이면 멘붕이 오는 나..
- '내가 생각한 것보다 어렵지 않다.' 정보처리기사 필기 준비를 앞두고 누군가가 블로그에 써 놓은 이 문장이 내겐 효과적이었다. 그리고 정처기에 합격하면서 한 번 더 체득. 시작을 앞두고 자신이 없을 때 되뇌자.
4개의 팀과제를 하면서 협업 상황에서 내가 배운 것은 이렇다.
3. 팀원을 최우선으로 두지 않기
- 이 말은 상대적인 것에 유의. 사람을 좋아하는 내가 그동안 팀원에 지나치게 큰 비중을 두고 일을 해왔기 때문에 이렇게 적은 것이다.
- 처음 한 팀과제에서 나보다 실력이 월등한 동료와 팀을 이루게 되었고 팀원은 내게 자신이 공부하려는 자료들을 연달아 공유했는데, 이것을 다 소화해내야 토론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따라가려고 급급하다가 결국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적이 있었다. 나한테 맞는 자료를 내가 찾아서 했으면 오히려 빨랐겠다는 후회를 했다. 이후에는 팀원들의 공부 속도에 연연하지 않고 내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었다.
- 다른 한 번은 약속된 것을 계속 못 해오는 팀원이 있어 '각자의 공부 속도는 다르니까'라며 기다려 주었는데, 알고 보니 그 팀원은 자신의 다른 스케줄에 집중하느라 소홀한 것 뿐이었다. 그렇게 몇 주가 흘려 보낸 뒤 막판에 때우듯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팀워크'만'을 중요하게 여긴 것이 실수였다.
- 팀워크보다 중요한 것은 일정과 결과물이다. 팀워크도 결국 공부/일을 잘 해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함을 기억하자.
4. 토론은 짧게 하기
- 적어도 IT분야에서 정답은 컴퓨터가 알고 있다는 특성이 있어서 더 그런 것 같다.
- 문제에 대한 토론은 좋지만, 상대의 말이 잘 이해되지 않을 때나 동의할 수 없을 때는 어느 정도 선에서 대화를 끝내고 자리로 돌아 와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대화를 끝장(?)내려고 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배웠다.
동료와의 관계 맺는 방식은 이렇게 하자.
5. 내 실력에 자신감 갖기
- 회의 중 아이디어가 생겼을 때 '나는 실력이 부족한 편이니까, 내 아이디어가 해답일 리 없다'고 생각해서 말을 하지 않았다가 나중에서야 같은 아이디어가 나와서 채택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 겸손과 자기비하는 다르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그냥 지르자.
6. 공사 분리하기
- 모두 친구가 되어야 하고, 모두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 하지만 42SEOUL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입과 초기에 한 사람과 어색한 사이가 됐는데 나는 이 곳을 떠날 수 없었으므로, 그런 강박을 버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 팀과제로 만난 사람들과도 친구가 될 필요 없이 필요한 만큼만 친하게 지내다가 웃으며 안녕할 수 있는 마음의 거리를 배웠다.
나를 도와주는 환경
2년 동안 내가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무엇인지 이것저것 테스트해볼 수 있었다. 앞으로 이 조건들을 만족시키는 루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자.
- 아침시간의 활용
- 9시간의 취침
- 적게 자주 먹기, 따뜻한 음식 먹기
- 샤워
- 수영
- 긴 통근시간, 붐비는 지하철이 컨디션에 크게 작용함
- 따로 또 같이 작업하기, 백색소음 (=너무 혼자 작업하지 않기)
- 사람들을 조직하기
- 적당한 수준의 목표 (=너무 높지 않은 목표)
- 전체적인 그림(상위개념, 목차, 파일구조, 다이어그램 등)을 먼저 파악한 후 세부를 파악하기
- 두 가지 일을 병행하여 진행하기 (=하나만 하지 않기)
마치며
42SEOUL 공통과정 그리고 공통과정을 진행하는 동안 생긴 부수적인 상황을 통해서 배운 것이 참 많았다. 42SEOUL에 입과하기 직전 나는 막 '성장'에 대한 욕구가 생기고 있었고 그것이 '알아서 배울 것을 찾기'라는 42SEOUL의 교육관과 잘 맞아 떨어진 것도 있었다. 진작 배웠어야 할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이제라도 배운 것이 어디냐 싶다..
건강 문제로 중단했던 수영을 1년 전 다시 시작했는데, 사실 이렇게 체력을 완전히 회복한 것만으로도 처음 42SEOUL에 입과하면서 세운 큰 목표 하나를 이룬 것이다. 그 동안 잘 살았다고 치고, 앞으론 더 잘 살아 보기로 하자!
예슬상 항상 응원합네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