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관을 경계한다

Jerry·2021년 6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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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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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뭘 좋아하세요?" 물음에 어렵지 않게 대답 할 수 있게 됐다.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집중력을 끌어올려 일 하기 전, 빨대로 깊게 들이마신 차가운 커피가 단숨에 몸 속에 퍼질 때 그 기분.
주말 아침, 옷을 대충 챙겨입고 생태 공원을 한바퀴 돌고 들어오며 사온 커피. 샤워하고 나와 아직 새벽과 아침의 경계에서 마시는 그 여유로움.
차를 타고 여행갈때, 테이크 아웃한 커피를 마시는 자유로움.

나는 맥주를 좋아한다.

금요일 저녁 퇴근 후, 크림 같은 거품으로 층을 이룬 생맥주의 한 모금.
인터넷에서 본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만든 그럴듯한 요리, 에델바이스 캔맥주, 그리고 영화
초여름, 기분좋은 바람을 맞으며 테라스 있는 펍에서 마시는 맥주

나는 종이책을 좋아한다.

출퇴근 할때 스마트폰 웹서핑 대신 종이책으로 디지털 디톡스.
바닷가 앞에 자리한 여행지의 낯선 카페에서 읽는 소설, 설레는 마음.
모든 소음이 잦아든 밤, 주황과 노랑을 섞은 스탠드 불빛에 비춰진 활자는 안정감을 준다.

나는 글을 쓰는 지금을 좋아한다.

한동안 듣지 않았던 좋아했던 철 지난 노래들을 플레이리스트에 가득 담고.
타닥타닥 울리는 키보드로 흩어져 있던 나의 감정 조각들을 모으고 이어본다.
온전히 스스로에게 집중해보는 이 시간이 좋다.

나도 내가 처음이라..

생각해보면 "나도 나를 잘 모르겠어" 하는 말은 당연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성향과 가치관이 적나라하게 밝혀진 게놈지도 같은 건 없으니 타인을 알아가듯이 스스로를 알아가는 것도 충분한 학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마치 머신러닝 하듯이.

나이가 든다고 자연스레 스스로를 찾고 주관이 뚜렷해지는 것은 아니다.
나이, 세월 그 자체 보다는 그 시간 동안 어떤 경험을 하였고, 그 경험에서 어떤 기분을 느끼고, 무슨 생각을 하였고, 무엇을 깨닫는 지가 중요하다. 스스로에 대한 탐구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시간은 그저 생체리듬으로 지나갈 뿐이다.

주관은 시야를 가릴 수 있다.

작년에 한 사내 초청 강연에 참석했었다.
강연자는 포노사피엔스의 저자 최재붕 교수님이었다.
강연 주제는 코로나 이후 급격하게 바뀔 사회와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할지에 대해서였다.

강의 내용 중 나를 되돌아보게 한 내용이 있었다.

"변화하는 트랜드를 따라 가지 않고 익숙함만 추구하게 되면 고립됩니다."

스스로에 대해 알아갈수록 안정감을 느꼈다. 익숙한 행동양식과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고정관념이 생기는 것을 경계하였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정관념이 생겼었다.

전자책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고, 전자책으로 독서를 하는 사람이 점점 체감이 되었지만 종이책을 고수했던 것이 생각났다.

종이책이 주는 눈의 편안함 이유로 전자책은 시도도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과 달리 아날로그 감성을 추구하는 나의 모습에 취해 있었고 그것이 나의 아이덴티티라고 생각했다. 실상은 새로운 것에 시도하는 것이 귀찮은, 나의 익숙함이 만들어낸 고집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무조건 트랜드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경험해보기 전에 기존의 익숙한 틀에 맞추어 그것을 불필요한 것으로 재단하는 것을 경계해야하는 것이다. 그게 나와 맞지 않을 수 있지만, 그것을 경험해보고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고정관념으로 거부해서는 안되는 거라 생각이 들었다.

화제가 되고 트랜드가 되는 것들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이고 그것은 미세하게 사회를 점점 변화시킨다.
나는 서비스 개발자로서 대중들의 취향과 성향을 지속적으로 따라가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서비스를 만듦에 있어서 무엇보다 제일 우선이 되는 것은 사용자와 시장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수의 의견이 무조건 옳다는 데에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지속적으로 새로운 것을 접하면서 스스로의 생각과 가치관으로 만든 성에 고립되지 않는것. 변화하는 사회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계속해서 성장하고 변할수 있는 주관을 만들어 가는것. 그럼으로써 경험해보지 못하고 나와 다른 것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에 의의가 있다.

주관은 완성이 아니다.

성장하지 못하고 고립된 주관은 없느니만 못하다.

주관이 생기기 전 우리는 더 다양한 경험을 하려 노력한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재단하지 않고 뛰어든다.

주관이 생기면 우리는 우리가 정립한 세계의 틀에 맞춰 안정감있는 삶을 살아간다.
새로운 것, 내 기준에서 벗어나는것은 불필요하고 이해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생길수 있다.

하지만 하루 하루의 경험으로 만들어진 주관이니 만큼, 우리의 주관은 말 그대로 "주관적"이고 완전할 수 없다. 여태까지 주관을 만들어 온 것 처럼, 앞으로도 계속해서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더 다양한 것을 인정해야 보다 더 객관적인 "주관"을 가질수 있다.

주관이 아집이 되지 않고 우리 삶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우리는 계속해서 새로움을 배우고, 이해하고, 인정해야한다.

최근에 아이패드를 사서 전자책 시장에 동참했다. 삶의 질이 수직 상승했다 ^~^

여전히 마음이 차분해지고 싶을때, 종이책이 주는 안정감이 좋아서 종이책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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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하이웨이

1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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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8일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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