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022년 1월, 1년 6개월간 근무하던 IT 스타트업에서의 개발자 생활을 정리하고 퇴사를 결심하게 된다.
회사의 일 밖에 없는 내 삶에 대한 회의감
, 번아웃
, 회사의 새로운 조직 개편에 대한 불만족
, 사업을 통해 경제적인 자유를 얻고 싶은 갈증
주변 사람들이 내게 퇴사하는 이유를 물어올 때 나는 다양한 이유들도 그들에게 내가 퇴사할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떤 이유는 오래부터 가지고 있던 것이었고 또 어떤 이유는 다소 즉흥적으로 만든 이유로 상대를 납득시키기 위한 그저 혀놀림에 불과했다.
재밌게도 이런 상황들과 말이 반복될수록 퇴사하기 위한 이유는 점점 견고해져갔고 퇴사에 대한 내 마음이 더 깊게 뿌리내리게 되었다.
그 당시 내가 퇴사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복합적이고 다양한 이유들이 있겠지만 한마디로 조금 쉬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였다. 퇴사를 준비하며 사람들과 만나고 스스로에 대해 돌아볼 수 있게 되었는데 내가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과 굳이 짊어지지 않아도 될 책임감으로 인해 스스로를 과하게 채찍질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매일 아침 출근하기 위해 일어나는 일이 예전보다 귀찮게 느껴졌고 전철에서 내리고는 회사 건물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산책을 하다 들어가고는 했다. 부쩍 먹고 싶은 음식도 없고 삶에 활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스스로를 발견하고는 했었다.
회사에서의 생활이 부정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퇴사를 이야기하니 많은 동료들이 적잖이 놀라했다. 함께하는 업무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되었고 주변 동료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그들에게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로 보였던 거 같았다.
그들은 퇴사하는 원인이 외부의 요인인지 묻고 이를 개선하고 싶다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결심을 한 상태였고 다른 이들이 해결해줄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했기에 조심스럽게 사양의 말을 건내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퇴사를 한다고 하자 묻던 말은 "그래서 뭐할거야?"였다. 나는 전부터 퇴사를 생각해왔지만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는 못했다. 우선 휴식을 취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체계적인 타임라인은 없었지만 하고 싶은 일들은 있었다.
- 카카오톡 이모티콘 만들기
- 회사에 의존하지 않고 수입 창출해보기
- 나만의 서비스 만들어보기
퇴사를 생각하게 되자 단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고정적인 수익에 대한 걱정이었다. 당시 코스피가 3000을 돌파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경험할 정도로 투자에 대한 열풍이 불었지만 이로 인해 발생한 수익은 내게 안정감을 주지 못했다. 휴식을 목적으로 하는 휴직이기는 했으나 금전적인 부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휴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어떤 경우든 이 문제를 고려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나는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편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파이프라인을 모색하던 중 이모티콘 시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모티콘은 출시만 된다면 지속적인 관리나 고객응대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고정적인 수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다. 사실 이미 전에 회사를 다니며 재미삼아 그렸던 그림을 보고 친구로부터 "꽤 잘 그리는데? 나중에 이모티콘 한번 도전해봐!" 라는 말을 들었던 나였기에 이번 기회에 시도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퇴사를 준비하며 퇴근하고는 집에서 틈틈히 이모티콘 작업에 돌입했다. 이모티콘을 만드는 방법은 이미 책이나 강의, 유투브 등 참고할만한 자료들이 많이 있었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중요한 것은 사용자가 공감할만한 메시지와 참신한 캐릭터에 대한 아이디어였다.
나는 길지는 않았지만 개발 업무를 하며 겪었던 상황들과 주로 겪는 고충을 경험하며 개발자가 사용하기 좋은 이모티콘을 만들어봐야겠다고 결심했고 작업을 진행했다.
처음은 나를 모티브로 특징을 뽑아내어 캐릭터를 만들었다. 개발자답게 항상 노트북과 씨름하고 힘들어하는 컨셉으로 준비했고 부푼 마음으로 회사 동료들에게 피드백을 받았다.
하지만 나의 예상과 달리 좋지 않은 평가를 받게 되어 캐릭터에 대한 고민을 다시 하게 되었다. 특정 외형과 성별을 가진 캐릭터보다는 다양한 사용자가 사용할 수 있도록 성별을 구분할 수 없는 귀여운 강아지로 방향을 틀었다.
많은 시도와 고심 끝에 강아지 모델을 정하고는 다시 작업을 이어나갔다. 이번에는 그 전보다 퀄리티가 좋아졌음을 체감했고 이제 퇴사해 받을 수 없는 동료들의 피드백 대신 가족과 주변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첫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미승인이었다. 첫 술에 배부르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2주간 열심히 만들었기에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이모티콘의 어려운 점은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을 때 떨어진 이유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없고 심사 기준 또한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심사 후에는 오직 결과만 제작자에게 전달이 되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보강해야 하는 쉐도우 복싱 같다는 느낌이 작업하는 내내 들었다.
심사에서 떨어지고 나는 내 이모티콘의 부족한 부분에 대해 여러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구하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개발자를 타겟으로 했던 기존 컨셉에서 노트북을 사용하는 더 넓은 직장인을 타겟으로 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려 컨셉에 변화를 주었다. 또 이모티콘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주변 의견을 받아들여 이모티콘을 보강했다.
작업을 마치고 2차 시도를 준비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이모티콘 하나는 런칭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작업을 이어 갈수록 불확실한 기준과 언제 통과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결과는 이번에도 미승인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나는 빠져나올 수 없는 늪에 빠진 기분이었다. 처음 시작했을 때 느꼈던 즐거움이나 몰입했던 열정은 더이상 없었다. 나는 고민 끝에 이모티콘 만들기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여태 했던 작업과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과정에서 그래픽 툴을 익힐 수 있었고 전혀 몰랐던 이모티콘 시장에 대한 통찰을 할 기회였기에 충분히 좋은 경험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리고 내가 무언가 주도적으로 진행해갔던 이 행위가 내게 많은 자신감과 활력을 불어 넣어주었다. 나는 이것 말고도 하고 싶던 일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털고 돌아서기로 했다.
웹 개발을 공부하고 실무를 하며 항상 가졌던 생각은 내가 온전히 웹 서비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고 사람들에게 제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간단한 토이 프로젝트나 기능 개발 등은 많이 경험해봤지만 내가 가진 능력을 통해 주도적으로 실제 비즈니스 가치를 제공해보지는 못해봤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이 이를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개발 요청건이 올라오는 프리랜서 플랫폼을 둘러보며 클라이언트를 찾는 일에 돌입했다.
당연히 아무런 이력도 포트폴리오도 없는 내게 제안은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원하는 기능을 만들어 줄 능력을 갖추고 있고 해결해주고 싶은 마음도 가득했지만 나의 능력을 평가할 객관적인 증명 자료가 없기에 시장에 공개된 다른 이들보다 신뢰를 받기 어려웠다.
나는 고객을 찾는 방식에 변화를 주어야 했다. 기존에는 고객이 나를 평가하고 일을 제안해주기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방식이었다면 이번에는 내가 직접 클라이언트에 일일이 전화를 하고 그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문제 해결 방법을 이야기해 설득하는 능동적인 방식이었다.
이런 영업이 처음인지라 많이 미숙하고 마음만 앞서서 그르치기도 했는데 다행히도 이런 적극적인 액션 덕분에 사이트 제작을 원하는 첫 비즈니스 클라이언트를 찾을 수 있었다.
계약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견적서와 계약서를 작성해야 했고 추후 현금영수증 발행을 위해 사업자 등록을 할 필요도 있었다. 이 과정은 내가 여태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었고 사이트를 만드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 중 하나였다.
계약이 체결되고 계약금을 받게 되니 내가 지금 벌린 일을 체감할 수 있었다. 여태껏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일하던 내가 아무런 지원도 없이 스스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한다는 마음에 두려움이 앞섰지만 나를 선택해주신 사장님에게 어떻게든 좋은 결과로 보답하고 싶은 책임감과 감사한 마음 또한 가지고 있었기에 반드시 잘 해결해내야만 했다.
이후 사이트 기획부터 디자인, 제작 및 배포까지 웹 사이트 제작에 필요한 모든 작업에 몰두했다. 작업에는 총 두 달 정도가 소요되었고 내 첫 비즈니스는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사이트 제작 사업을 하며 배운 것이 참 많다. 계약서 작성하기, 세금계산서 발행하기 등 개발 외적으로 신경써야 할 것이 참 많다는 것을 느꼈다. 무엇보다도 고객이 원하는 요구사항을 정의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보통 회사에서 업무를 할 때는 기획자나 PO에 의해 요구사항이 정의가 된 채 일을 전달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요구사항에 따라서 기능을 구현하면 된다. 하지만 이제 클라이언트와 직접 소통하며 디자인을 하고 필요한 기능을 이야기하다보니 이 부분에 많은 리소스가 사용되었던 거 같다. 사장님은 웹 개발 종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현업의 언어가 아닌 일상적인 언어로 소통해야 했다. 어떤 요구사항은 사장님의 피드백을 반영했고 어떤 요구사항은 사장님을 설득해야 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며 사장님의 사이트가 점차 틀을 갖추게 되었다.
작업을 모두 마무리하고 잔금을 받게 되었을 때 뿌듯함을 잊지 못한다. 항상 어딘가에 소속되어 급여를 받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경제활동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나였는데 이렇게 스스로 일을 찾고 내 능력으로 사람들을 돕고 그에 대한 보상을 받는 행위는 내가 세상을 조금 더 넓게 볼 수 있게 해주었고 내가 가진 능력에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과정이었다.
나는 재직하면서도 부트캠프에서 코드리뷰나 멘토링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런 남에게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공유하는 활동은 스스로 기술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정말 좋은 수단이다. 게다가 돈도 준다니. 퇴사 후 개발에 대한 감이 떨어지는 것이 걱정인 내게 이보다 더 좋은 활동은 없었다.
멘토링은 화상으로 진행되며 과제에 대한 코드 리뷰, 과제를 하며 어려웠던 부분 혹은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진행되게 되는데 이는 온라인으로 코멘트만 남기는 일반적인 코드리뷰보다 더 다양한 상황과 질문들을 마주하게 되어 마치 기술 면접을 보는 듯한 상황이 자주 연출되고는 했던 거 같다.
나는 재직 당시 동료들과도 알고 있는 내용들에 대해 설명하거나 이야기할 일이 종종 있었는데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내가 아는 것들을 잘 전달했을 때 보람과 기쁨을 느끼고는 했다. 멘토링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특히나 열정적이고 궁금한 것들이 많기 때문에 이들에게 최대한 도움이 되고자 노력했고 이 활동을 퇴사 후에도 이어간 것은 돌아봤을 때 너무 좋은 선택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홈페이지 사업을 통해 배운 것이 있다면 서비스라는게 사실 별게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어떤 형태로든 가치(유익한 정보 혹은 즐거운 감정 등)를 전달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는 언젠가 세상에 공개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O2damn이다. 이 프로젝트는 내가 개발을 공부할 때 만들었고 첫 회사에 취업을 도와준 고마운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내가 특별히 애정하기 때문에 토이 프로젝트에서 끝나는 것은 조금 아쉽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이 이 친구를 세상에 보여줄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완벽한 서비스는 없다는 것을 알기에 핵심 기능만 완성 후 배포해서 사람들과 소통하며 더 디벨롭해 가는 것을 목표로 진행하게 되었다. 이미 전에 만든 레포지토리가 있었지만 그때의 코드를 리팩토링하는 것보다 새로 만드는 게 더 좋을 거라고 판단하여 바닥부터 새롭게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코드도 퍼블릭하게 공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미 만든 경험이 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어떻게 만들었는지 기억이 흐릿했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막상 만들려니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데 어려움을 마주하고 이를 해결해갈 때마다 내가 개발을 즐기며 공부했던 때가 떠올랐다.
나는 재직할 때 업무를 주도해서 진행하던 타입은 아니었던 거 같다. 전달받은 요구사항을 주어진 타임라인 안에 구현해서 제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이고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만든 제품이 제공하는 가치에 대해 생각하거나 이를 통해 보람을 느끼는지 등은 부수적인 것들이었고 당시 나는 문제없는 제품을 빠른 시일 안에 제공하기에만 초점을 맞춰 스스로를 강하게 압박했던 내 모습을 생각하게 되었다.
프로젝트를 완성하고 작업하며 알게된 지식과 만드는 과정에 대한 정리글을 작성하며 스스로 한층 더 성장함을 느꼈다. 비록 아직 많이 부족하고 사용자도 많지 않지만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 프로젝트 덕분에 내가 개발을 좋아한다는 것과 어떻게 개발해야 즐겁게 일할 수 있는지 방법을 깨달을 수 있게 되었던 거 같다.
퇴사를 하기 전에는 결코 경험할 수 없을 일들을 그 짧은 6개월동안 참 많이 겪을 수 있었던 거 같다. 글에는 전부 적지 못했지만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고 포기하며 좌절하는 일도 있었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더 잘 파악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고 성장할 수 있는 시기였기도 했다.
회사를 다니지 않는 삶도 충분히 성장할 수 있고 그 자체로 결핍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라는 교훈을 이번 휴직 기간 동안 느낄 수 있었다. 다음에 다시 일을 하게 된다면 더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던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