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취업 준비생이 되었다

Teasan·2021년 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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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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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트캠프를 수료하고 몇주는 체력을 회복하는데 힘을 썼다. 약 5-6달간의 빡쎈 일정에 당시 몸과 마음에 큰 타격을 받았던 상태였기 때문에 하루종일 잠만 자거나 탄수화물을 한바가지 먹거나; 하는 식으로 에너지를 회복했다. 매일 코드 창을 열어 뭔가를 해보려고도 했지만.. 웬일인지 온종일 잠이 쏟아져서 정신을 못차린 상태로 며칠이 그냥 흘러갔다. (상담 선생님은 오랜시간 소모된 에너지를 다시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하셨다.) 동기들끼리는 우리들의 이런 시기를 '불안한 행복'이라고 여겼고, 자주 농담처럼 그 말을 주고 받으며 서로의 '불안하지만 어쨌든 휴식'을 응원했다. 그리고 정신을 좀 차리고 보니.. 놀랍게도 2주가 지나있었다.


그 시절 동기들이 안부를 물을 때마다 내가 보내던 짤..

좀 정신을 차리고 나서는 주변의 친한 동기들을 하나 둘 모아, [취업준비스터디]를 조직하고, 매일 모각코를 열고, 정기적으로 면접기출이나 코어자바스크립트 스터디 등의 잔잔바리 일을 도맡으며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Notion 도 직접 만들어서 팀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는데, 안타깝게도 Notion 참여율은 저조했다. ㅋㅋ)

남들이 보기에는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아무튼 종일 슬랙과 디스코드에 상주해있던 동기들에 비해서 좀 편하게 준비를 시작했던 것 같다. 개발자로 전향하기 전, 과거에 취업 준비생이었던 경험(정말 지옥같았다.)을 생각하면서 이번에는 길어질지도 모르는 시기에 시작부터 스트레스를 크게 받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한달 정도가 지나니 다른 스터디 팀원들이 슬슬 취업을 하게 되면서 당연히 스터디나 모각코는 흐지브지되었다. 주변의 연이은 취업 소식에 이러다가는 영원히 취업을 못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점점 엄습하기 시작했고, 같은 생각에 떨고 있는 친한 동기와 뿜빠이(?)로 구매한 리액트 강의를 병행하며 토이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주변의 멘토님이나 이미 취업한 동기들은 '공부'를 더 하느라, 취업준비를 미루지 말라는 조언을 했다. 취업 후에 회사에서 직접 경험하는 것과 혼자 공부하는 것의 질 자체가 다르며, 직접 부딪히면서 배우는 것이 훨씬 성장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고(당연히 실무에서 부딪히면서 성장하는 것이 더 빠르고 효율적일 것이다.) 지금에와서 더 공부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그냥 다시 취업준비에 돌입할까? 하루에도 수십번 생각이 바뀔 정도로 고민도 많았다.

한달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꽤나 만족스러운 한달이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부트캠프 기간 중에는 세달이라는 시간 안에 어쩔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커리큘럼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이 방법이 맞는건지 늘 불안한 상태로 코드를 쳤는데, 이번에는 나의 언어로 정리하고 복습하고 나의 속도대로 이해하며 한줄씩 코드를 만들었다. 그랬더니, 웬걸 개발이 너무 재밌는 것이다!

물론 부트캠프에서도 아주 고통스럽게; 개발을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당장 처리해야 하는 일 정도로 생각될 때가 더 많았다. 돌아보면 좀 후회가 된다.) 이 정도로 코딩이 너무너무 재밌어서 그 다음날에 눈 뜨자마자 책상에 앉아 코드를 칠 만큼 큰 재미나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는 건 인정해야 할 사실이다. 지금은 개발이 재밌다. 물론 재미를 느끼는 찰나의 순간보다는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혀 우울해하고 울면서 코드 칠 때가 더 많지만.. 그래도 책상에 진득하게 앉아 키보드를 뚝딱거리며 치다보면 언젠가는 해결이 된다. 어쨌든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고 정진해나가면 언젠가는 반드시 그 문제가 해결이 된다. 나는 이것이 개발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한달간 키보드를 부셔가며?! 열심히 코드 치던 나)

남들이 보기엔 두달이 그리 짧지 않은 취준기간이라 생각하겠지만, 작년부터 지금까지 무직자로 지내온 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가 취준기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제목에도 써놓았던 것처럼 (장기) 취준생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의 힘으로 개발자가 되기 위해서 직장에 다니며 1년간 돈을 모았고, 부트캠프에 들어가기 전까지 계속 과정을 따라가려 준비를 했기 때문에 실질적인 시간은 어쩌면 더 길 수도 있을 것이다. 홀로 준비를 해야했기에 남들보다 훨씬 오래 걸렸고, 현재까지도 다른 동기들에 비해서 무엇이든지 속도가 늦다고 생각될 때도 있다.

그렇지만, 현재의 나는 더 없이 제 속도로 나의 길을 잘 가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우습게도 부트캠프 수료 직후에는 개발자라는 타이틀이 어색하고 부끄러울 때가 많았는데, 이제는 떳떳하게'프론트엔드 개발자'라고 소개할 수 있을 만큼 개발이 재밌고 흥미롭다. 또 매일 같은 시간에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과 같이 습관처럼 책상에 앉아 코드를 치는 게 일상이 되었다. 무기력한 자신에게 화만 내던 지난 3년을 생각하면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발전이라 생각한다. 아직 신입 개발자로서 배워야 할 것도, 에너지 효율적인 면에서 더 노력해야 할 것도 많겠지만 지금까지 달려온 나를 믿고 계속 갈수 있겠다는 강한 확신이 생겼다.

장기 취준생이 된 현재, 틈틈히 토이프로젝트를 하면서 취업 지원을 시작한지 약 열흘 정도 되었다. 서류지원 과정에서조차 광탈(;)했던 경험도 여러번 겪어야만 했지만 어쨌든 웬만해서는 상처받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탈락 결과를 확인했을 때, 당연히 후회와 아쉬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 감정도 5분을 넘기지 않고 직후엔 다시 책상에 앉아 해야할 일을 한다. 프로젝트든 코딩이든, 삶이든 어쨌든 시작하지 않으면 '영원히' 끝낼 수 없다. 실패하더라도 늦더라도 나는 그렇게 매일 책상에 앉아서 무언가를 끝내기 위해 다시 시작한다. 어디선가 우연히 본 글귀처럼 '어려운 건 어렵게 얻겠다는 양심' 을 계속 생각하면서. 끝없이 공부를 하고 수십번 지원을 하고 실패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기. 정직하고 성실하게 어려운 것을 어렵게 얻기 위해서 노력하기.

하루에도 몇번씩 마음이 불안해지고 힘들어질 때마다 모니터에 메모장으로 써놓은 자기다짐과 같은 글을 반복해서 읽는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엔 약간 부끄럽지만 아무튼 지금의 내게는 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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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공부가 '적성'에 맞는 개발자. 근성있습니다.

4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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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21일

민님이 개발을 즐겁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된 것부터 엄청난 결과물이 아닐까요!!
제가 요즘 보는 지연님도, 부트 캠프 기간 때 보다 더 즐거워하면서 하고 계시는 것 같아서 저에게도 동기부여가 되곤 한답니다 :)
민님은 늘 열심히 하시고, 힘든 그 기간도 잘 견뎌내셨으니까 꼭 2년을 투자하고싶다 라는 마음이 100프로 확신되는 그런 회사를 가게 될 수 있을거라고 믿어의심치 않고 있어요.
다음에 민님과 함께 토이프로젝트를 하고싶어요! 하게 될 수 있는 그 날까지 저도 제 자리에서 열심히 하고있겠습니다.
민님의 장기취뽀? 화이팅!! 늘 응원하고 있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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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21일

민님이 취뽀걸즈를 조직해주신 덕에 정말 외롭지 않게 취준에 임할 수 있었어요. 면접 예상문제 정리해서 노션에 올려주시고, 모각코 방도 매일 운영해주시고..무엇보다 불안해하는 제게 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셨죠. 제가 민님 덕에 가장 큰 수혜를 본 사람인 것 같아요. 언제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취업준비를 하면서 느낀 점은, 회사는 결국 사람의 아주 작은 일부분만을 볼 뿐이고 회사에서 떨어진다고 해서 그 사람이 부족한 사람인 것은 아니라는 거에요. 민님은 이미 훌륭한 개발자시니까 그걸 알아볼 만큼 안목 있는 회사가 금방 나타날 거에요. 제가 항상 응원하고 있다는 거 잊지 마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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