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컴퓨터와 수학이란,

준리·2022년 5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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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딩을 시작한지 약 8개월이 지났다.
시간이 참으로 빠르게 지나갔고, 그 시간동안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릴적부터 컴퓨터학원을 다녔다. 초등학교 4학년정도 였으려나. 마을버스비 왕복 200원을 가지고 사회복지관으로 컴퓨터를 배우러갔다. 그 땐 도스와 윈도우가 혼재된 컴퓨터 교실이 있었고, 나름의 경쟁 체계 속에서 가능성이 보이는 사람들만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앉을 수 있었다. 앞에서 두 번째 줄 컴퓨터까지만 무지 빨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쩌다보니 나도 앞 줄에서 컴퓨터를 배울 수 있었다. (타자가 빨라서 였을까?)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몇몇 학생들만 특별과정으로 컴퓨터그래픽스 운용기능사 자격증반을 운영했다. 나도 그 반에 속해있었다. 그리고 시험을 보러간 기억있다. 시험장엔 대부분 어른들이 있었고, 나를 무척이나 신기해했다. 하지만 매 번 전화로 합격자 확인을 했을 때 한 두 문제차이로 필기 시험에서 낙방했었다. 그렇게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의 고전을 경험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어 동네 컴퓨터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부모님은 보습학원도 안보내시고 나를 컴퓨터 학원에 보내셨다. 그래서인지 컴퓨터 자체에 대한 부담은 내게 없었다. 학원을 다니며 워드프로세서3급, 워드프로세서 2급, 워드프로세서 1급, 컴퓨터활용능력 2급, 정보처리기능사를 중학교 2학년 때 취득하게 되었다. 그 당시 우리집은 그리 유복한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학원비가 밀리기 일쑤였다. 나는 학원에 다니기 싫었다. 눈치가 보이기도 하고... 그때 원장선생님께서 외상으로 학원을 다니게 해주셨다. 돈은 나중에 받아도 괜찮으니 그냥 학원에 다니라고 하셨다. 그땐 어려서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그리고 나의 미래에 대한 조언을 해주셨다.

너는 쪽 컴퓨터 계통으로 갔으면 좋겠어. 아니 가야해

지금 생각해보면 싹쑤가 보였던 것일까.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잘하고 재미있는 것을 일찍 찾았던 것인데 그걸 그땐 알지 못했다.
나는 공부를 그리 잘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일단 흥미가 없었다. 근데 컴퓨터는 괜찮았다.

그러다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친구들과 노는 것에 재미가 들려 학원을 빠지는 날이 잦아졌다. 오히려 잘됐다고도 생각했다.
나는 여전히 공부를 못했고, 특히 수학을 못했다. 답을 찾는 것엔 잼병이었다.

고등학교 진학이라는 인생의 선택이 나에게 주어졌다.
그저 흘러가는대로 잔잔하게 살아온 내게 주어진 선택은 앞으로 나의 삶에 꽤나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 시절 나 나름대로의 고민과 정보를 끌어모아 컴퓨터 보안을 전공으로하는 실업계고등학교를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 포함 친구 3명과 함께 마음을 먹고 담임선생님께 면담을 신청했다.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하신 우리 엘리트 담임선생님은 실업계에 가면 인생이 망한다는 늬앙스로 나의 결정에 콧방귀를 뀌셨다.
(그래도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렇게 나는 다른 방향의 깜빡이를 켰고,
인문계 그리고 수학을 못하는 나는 문과로 흘러가게 되었다.
잘 아시다시피 컴퓨터계열은 이공계다. 수학을 잘하는 자가 컴퓨터를 잘한다라는 느낌의 사회적 풍토가 자리잡고 있다.
나는 정확한 정답을 찾는 것보다 사회계열이 더 좋았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과 나에게 더 궁금증이 생겼다.
컴퓨터와 더욱 더 멀어지면서 인생을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방황하기 시작했다.

지나온 10년의 세월 속에서 문득 그 때의 선택이 나비효과가 되어 지금의 내가 되었다고 후회한 적이 많았다.

그 때 나의 결정에 조금 더 소신이있었더라면,
그 때 선생님이 나를 조금 더 지지해주었더라면,
그 때 부모님이 나의 진로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었더라면,

사회생활이 힘이 들 때면 억지 후회를 들이밀며 남을 탓하기 바빴다.
그렇게 마음 한 켠에 아쉬움을 묻고, 적당히 타협하며 나름 잘 살아왔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사회과목을 좋아했던 나는 20대의 대부분을 공공정책에 몸 담았다.
수평적인 문화와 내가 스스로할 수 있다는 주체성에 매료되었다.
그 과정은 충분히 즐거웠고, 그 결과는 충분히 인정받았다.
불특정 다수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는 일은 성취로 살아가자고 다짐한 나의 20대의 신념과도 맞닿아있었다.

하지만 영원하진 못했다. 우연을 빙자한 필연의 여러 사건들로 나의 신념은 갈기갈기 찢어졌고, 흩날렸고, 희미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게도 번아웃이 왔던 것 같다.
개인에 의해 처참히 무너지는 탑을 보며 모래성임을 깨달았고, 철저히 무력감을 느꼈다.
당사자성을 잃었고, 좋은 세상, 좋은 사회가 되는 것이 그리 간절해지지 않았다.
문득 나를 위해 살아온 인생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무엇을 좋아했지? 무엇을 하고싶지?

잊혀진 줄 알았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그래, 해보고 후회하자.
그렇게 컴퓨터, 프로그래밍, 코딩이라고 불리우는 것들을 시작했다.

그래! 해보고 후회했다.
처음부터 너무 잘할 것 같았던 환상은 처참히 무너졌고, 공부를 너무 멀리했던 탓에 의자에 앉아있는 것조차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해봤다는 것에 대한 후련함은 있었다.
지독했던 시간을 견디다보니 꽤나 재미도 찾을 수 있었다.
오래 버티는게 이기는 거라고 했다.

앞으로 이 길을 더 가보려고 한다.

이 길에는 역시나 수학이라는 놈이 자리잡고 있었다.
회피하고 돌아가고 눈감아봐도 내 앞에 나타났다.
이젠 더 이상 피하고 싶지 않다.
코딩 = 수학이라면 정면돌파해보고자 한다.

그 동안 과학, 우주, 프로그래밍, 사회현상 등을 접하며 느낀 점은 그 안에 수학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교과서 속에 잠자고 있던 수학이 아닌 나와 함께 살아가는 수학말이다.

또한 내가 궁금한 세상을 알아가기에 수학이 필요하다면, 이번 기회를 더불어 배워보고자 한다.

결국 컴퓨터를 잘하려면 정말 수학을 잘해야하는지 궁금했고,
사회적인 인간이 수학과 코딩을 통해 얼마나 생산적인 인간이 될지 궁금했다.

이렇게 거창하게 컴퓨터와 수학에 대한 생각을 쓸 생각은 없었다.
아무튼 소문만 난 잔치가 되지 않길 바라며, 오늘의 다짐을 마친다.

그 길 끝엔 내가 찾는 보편적이고 단순한 진리가 있기를!
나의 용기와 너의 응원에 오늘도 감사하며,
우연이 결국 필연이었음을 깨달으며,


살아가면서 너무 늦거나 이른 건 없다.
넌 뭐든지 될 수 있어
꿈을 이루는 데 시간제한은 없단다.
지금처럼 살아도 되고 새 삶을 시작해도 돼
최선과 최악의 선택 중 최선을 선택을 내리길 바라며
네가 새로운 걸 보고 새로운 걸 느꼈으면 좋겠다.
너와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후회 없는 삶을 살면 좋겠구나.
조금이라도 후회가 생긴다면 용기를 내서 다시 시작하렴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중 에서 / 2021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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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디 풀스택 개발자

1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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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25일

소문난 잔치가 된 나의 기록을 돌아보며 오늘부터 다시 시작!
나는 지금 fullstack 을 수강하며 JS를 깊게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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