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기 ] 나에게.

Hailee·2020년 1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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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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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14일.
현재 시각은 4시 4분 전.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내일의 시작을 위해 잠들어있을테지만,
코로나 블루로 주말을 통으로 날린 나는 정신이 또렷한 채 깨어있다.

위코드 15기라는 이름으로 정신없이 지내왔으며
어느덧 4주라는 시간이 흘러, 벌써 1차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기분이 묘한 것 같다.
얼른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를 기다려왔으면서도, 아직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다.
남들은 괜찮다고 할지 몰라도, 나는 나 자신을 알고 있기 때문.

물론 좋은 사람들도 너무 많은 곳이지만. '이전에 일하다가 왔는데 왜 잘하지 못해요?'라는 시선 그리고 말들이 나를 괴롭혔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사람들의 스쳐지나가는 말에 내가 깊게 파고들었던 것이겠지.

구구절절 설명하면 무엇하리. 그저 작은 회사에서 힘들게 시간 낭비하다가 온 것처럼 보일텐데.
많이 만져보고, 많이 만들어봤다.
위코드에서 배우면 배울수록, 아 내가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이미 배우고 만들어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문제인고 하면 그 모든 개념들을 알고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 내가 했던 것들을 정확하게 설명해내지 못한다는 점.
깔끔한 문법으로, 완벽한 예외처리를 하지 못했다는 것.
나 자신을 몰아붙이는 나의 성격이 나를 점점 더 갉아먹는 것 같다.


이미 어설프게 무언가를 겪어본 것이 독이 된다.
이미 겪어보았기 때문에 지금 하는 것이 얼마나 작고 사소한 것인지, 이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 남아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도 엄청 뿌듯하게 나 자신을 칭찬하지 못한다. 남들이 모두 기쁨을 누리며 뿌듯해할 때에도, '아직 갈 길이 구만리인데, 이제 이걸 끝낸거야'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혼자서 너무 초조하고, 잘 해내는 사람들을 보면 질투가 난다.
내가 반년동안 믿고 의지했던 부장님에게 들었던 말, '하람씨한테는 이 업계가 안 맞는 것 같아. 하람씨가 잘 할수 있는 분야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아'
너무 힘들고 자존감이 깎여 나가는 시기였기에 그 말이 내 속을 난도질했다.
정리하고자 하는 상황이었기에, 가장 힘이 되어주셨던 부장님이셨기에 웃으면서 '그러게요, 제가 분명 잘하는 분야가 있을텐데.. 다시 전공 찾아서 갈까봐요' 하며 웃었지만, 내 속은 말도 못할 정도로 너무 아렸던 기억이 난다.
(왜 굳이 새벽에 그걸 기억해내면서 이러고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변태취향)

정말 말로 표현 못할 것들을 겪어내면서 어떤 말을 들어도 이젠 많이 담담해져서 다 버텨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저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무너져내렸던 것 같다.
오기로 컴퓨터 과학과 편입을 하고, 부트캠프를 알아보며, 개발 관련 책들을 사모으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를 위한 공부가 아닌, 그 사람들의 말을 부정하고 싶어서 몸부림치는 행동들이었던 것 같다.

퇴사할 때만 해도 내 머릿속의 나는 '혼자서 개발 공부를 하면서 보란듯이 좋은 곳에 취업해내서 증명하는 나'였는데,
현실의 나는 '우울감에 빠져 문득문득 그사람들을 곱씹으면서 눈물짓는 나' 뿐이었다.

정말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컴퓨터를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위코드 15기 등록 명단에 내 이름을 올려놓고도, 차마 결제를 하지 못했다.
'정말 그 사람들 말처럼 내 길이 아닌데 내가 오기부리는 걸까?' 라는 생각에 매일 머릿속이 복잡했다.
(오죽하면 사주까지 보러가서 매달렸겠는가. 그저 누군가가 내 인생을 결정지어줬으면 했다. 선택이라는 것이 너무 어려웠던 시기)

사실 맨날 이런 이야기만 해서 이젠 쪽팔리다. 누가보면 지만 사연있는 줄 알겠어..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있다구. 오늘 이후로는 슬픈이야기 금지!

신기하게도, 위코드를 시작하기 전 사전스터디 과제로 자기소개 홈페이지를 만들어오라고 했을 때.
내가 원하는 홈페이지를 만들어가며 맘처럼 되지 않아서 화가 나면서도,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밤을 새어가면서 만들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프론트가 더 재미있는건 확실. )
정말 너무 재미있었다. 인터넷의 모든 사람들의 홈페이지 예제를 보면서 더 꾸미고, 더 기능을 추가하고!
강요하는 사람도 없고, 내가 원하는대로. 내가 원하는 만큼!
이 때 다시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던 것 같다.

위코드 15기로서의 생활이 시작되고, 기본기를 다지는 시간이 지나고 본격적으로 프론트, 백엔드로 나누어졌을 때.
천천히 가면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눈에 띄게 달라지는 사람들의 모습에 혼자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왜 나는 못하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예 손에서 코딩을 떼어놓기 시작했다. 정말 4주차는 뭘 하고 보낸건지 싶을 정도. (반성해라)

멘토님이 그랬다. '하람님은 항상 긍정적이셔서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늘 알아서 잘 해내시고 있어서'
사실 저는 앞에선 웃지만, 뒤에서는 늘 스스로를 채찍질하고있는 바보입니다.
웃고 있지만 자꾸 옛날 생각과 뒤쳐졌다는 생각에 초조해 하고있는 바보!

4주차의 나는 질투가 많은 천성때문에, 자꾸만 나 자신을 비교하는 천성 때문에 일은 하지도 않으면서 혼자 방구석 스트레스만 받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결국 회원가입, 로그인은 마무리 지었지만. 말이 좋아 회원가입, 로그인이지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 것이라는걸 알잖아?
왜 열심히 하지 않아?


재택으로 전환된 4주차덕에, 본격적인 혼자서의 생활 + 코로나 블루가 덮쳐서 혼자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원래 사람은 혼자 있을 때 온갖 생각을 다 한다고 하니까)
적당한 코로나 블루와 외로움이 나 자신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어쩌다가 나는 이렇게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조급해하며, 몰아붙이는 사람이 되었는가?
왜 성취감을 즐기지 못하는거야?

스스로를 용서하기로 했다. 갑자기 분위기 용서라서 좀 웃길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진지하니까 괜찮아.
좀더 나 자신에게 관대해질 필요가 있어. 내 모든 문제는 그래야 해결되는 것들이거든.

어짜피 너보다 잘하는 사람은 늘 있어. (사수를 생각해) 어짜피 새로운 기술은 늘 나오고, 난 매번 그 선두에 있을 수 없어.
아무리 백엔드가 재미없고 프론트엔드를 배우고 싶어도 완전한 프론트, 백이란 없다는 걸 알잖아.
너는 지금 과거의 너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개념이 잘 잡힌 채 코드를 작성할 수 있는 주니어 개발자야.

이제 너를 힘들게 했던 과거의 기억들과 너의 실력은 잊고, 그 기억들을 바탕으로 열심히 해 나가면 돼.
내가 겪었던. 내가 만져본 그 수많은 프로젝트들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있고 (적어도 네이버 블로그 속엔 남아있어 괜챠나)
너의 경험들이 언젠가 빛나는 순간이 올거야. 그 때까지는, 어쩔 수 없이 우직하게 해나가야만 해.

지금 이 순간에 누가 더 잘하고, 누가 더 못하고 이런건 의미가 없는 걸 알잖아?
그저 나 자신과 고독하게 싸워나가는 것을, 아직 2달 더 해야한다는 사실만이 중요한거야.
내가 처음 이 커뮤니티에 발을 디뎠을 때 느꼈던 그 따듯함, 든든함 그리고 얼마든지 질문해도 된다는 그 안도감!
그 감정들에 감사하면서 지내다 보면 두달 뒤엔 더욱 성장한 내가 되어있을거야.

호신이 만들고 싶어했잖아. 호신이 만들어야지!
그러려면 열공해야지><

단순히 질투심만 느끼는게 아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코드를 짰는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접근했는지. 이러한 사실들을 궁금해 하는 나 자신이 너무 사랑스러워.
사실 내가 질투하고 있다고 느꼈지만, 난 그저 더 성장하고 싶었던거야.
내가 너무 못한다고 슬퍼했지만, 난 사실 당장 증명해내고 싶어서 조급했던거야.
잘 해왔고, 더 잘 할 수 있어!

지금 하는 그대로, 사람들과 잘 소통하면서. 잘 다독여 가면서 주어진 상황에서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자.
본인이 잘한다고 남 무시하는 맛에 사는, 그런 '그 회사'사람들처럼만 되지 말자.
조금만 더 나에게 관대해지고, 같이 가고있는 동기들에게 좋은 동료로 기억될 수 있는 그런 개발자가 되자.

2주가 지났을 때, 더 탄탄하게 성장한 하람이가 되어있길 바래

그리고 이제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까 얼른 자자.
내일부터 화이팅이야. 잘 할 수 있어!


과정을 즐거워 하려면, 결과에만 집착하지 않으려면 내가 하고있는 것을, 내가 살고있는 삶도 괜찮다고 나를 설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인생은 당신을 표현하는 과정입니다
Oprah Winfrey

아무것도 아닌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야말로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다
Nicolas Boileau

profile
웹 개발 🐷😎👊🏻🔥

6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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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14일

1차 프로젝트 화이팅하세요 하람님!!! :)

1개의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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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15일

하람님 잘하고 있어요!! 우리 화이팅해요!!

1개의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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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19일

사전 스터디때 하람님이 만드신 자기소개 페이지를 보고 압도 당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선 지하철에서 짧게 이야기 나누었던 것도 기억이 납니다. 전 회사에서 겪었던 경험, 학사 공부를 하시는 이유, 위코드에 오시게된 이유 되게 인상깊게 들었습니다. 자신의 약점(?)을 피하지 않고 정확하게 바라보면서, 확실하게 노력하시는 모습을 보고 멋지다고 생각 했었읍니다. 너무 잘하시고 계신 것 같읍니다. 화이팅 하십샤 ^-^ 👍

유투부 재미있게 보고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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