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개발자 신입으로 까지 과정

Gritty·2023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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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 개발자로써의 발자취🎮

게임 개발에 왜?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라는 생각의 구렁텅이에 빠져 깊게 생각해보니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내가 고등학교 때 문과 였는데 어쩌다 코딩의 길로 들어가게 된 것이지?? 부터 생각이 났다.

코딩! 코딩이 좋아! 이래서 진입은 아니였다.

나는 중학생, 고등학생 초까지 체대 입시준비를 하는 학생이였다. 그러다가 한 친구(귀인?)을 만나 애니의 세계와 게임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어 나의 소울 메이트 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 중에서 오버워치를 가장 좋아 했는데 그중에 삐쀼삐쀼 거리는 바스티온을 필두로 상위 500위까지를 이루게 되는 쾌거를 이뤘다

그렇게 바스티온의 앵무새(브레인)의 말을 들으며 유저들을 학살하거나 학살당하며 잉여롭게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있엇는데, 어느 순간 이런 게임은 어케 만드는거지에 대한 의문점이 생겼다.

이런 의문점을 가지고 게임 산업에 대해서 찾아보니 게임이 만들어지는데 많은 직종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많은 직종에서도 유독, 나에게 꽂힌 직종이 게임프로그래머라는 직종이였다. 왠지는 모르겠는데 그 때 당시에 그냥 게임 프로그래머가 가장 멋져보였고 가장 나랑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에 바로 게임 프로그래머가 되는 방법에 대해서 찾아보게 됐고 한 결심을 내렸다.

문과의 엄청난 교차 지원!(문송합니다 엔딩)

고등학생 때, 체육 입시였던 나는 예체능 과가 없던지라 당연히 문과쪽에서 수업을 듣고 있엇기에 일반적으로 컴퓨터 공학과에 지원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거라고 차라리 국민대, 단국대 이런쪽의 문과쪽이나 체육 관련 학과에 집어 넣고 나중에 전과를 하는게 낫지 않겠느냐고 우리 담임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이 반응이 당연한게 운동만 하던 애가 갑자기 코딩 한다고 컴공을 간다는게..) 하지만 난 위 짤 처럼 내 내신 성적이라면 인서울 컴공과는 갈 수 있지 않을까 (문과 총 내신 2.2인가 그랬으니..) 라는 오만 방자한 생각에 빠져 위 짤 처럼 인서울 대학교들에 내신을 다 집어 넣었고 담임선생님의 조언으로 경기권 학교에도 컴공 관련 과를 한 개 집어 넣었다.

그 결과로

모든 서울권 학교는 떨어지 게 됐고 담임 선생님의 조언으로 집어 넣은 경기권 학교만 붙게 됐다.

그 때 당시에 나는 자존감이 바닥을 치며 재수를 할까 라는 생각을 가졌는데 마음 한 켠엔 수능 공부보다 빨리 코딩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코딩 학원을 다니게 됐고 그냥 경기권에 있는 학교를 다니게 됐다.

학부와 학원의 병행 공부로 인한 피폐, 그리고 성장

학교에서는 문송합니다였던 내가 부족한 수학적 지식을 주로 공부 했고 학원에서는 C와 C++에 대해서 공부했는데 이 때, 나는 죽는 줄 알았다. 그냥 학교 공부 학원 공부 그리고 그냥 공부만 하다가 1학년이 끝나게 됐고 그래도 코딩 실력과 삼각 함수도 잘 이해 못했던 C언어로 포물선 공식을 적용하는 프로젝트도 한 개 만들어보며 내가 성장 하고 있다는 것을 몸소 체감 하고 있엇다. 근데 너무 힘들어서 1학년 끝나자마자 사회 복무 요원으로 국방의 의무를 하러 도망? 갔다.

사회 복무요원 일과 XeroSoft에서의 게임 팀 프로젝트의 병행

사회복무요원으로써 일을 능숙(능히 숙련되지 못함)하게 처리하며 요원으로써의 삶을 살아가는 찰나, 한 대학교 친구와 연락이 닿았고 그 때, 같이 게임 프로젝트를 진행 해보자는 말을 들었다.

그 친구와는 취향도 여러모로 맞고 서브 컬쳐 쪽에 관심도 많이 있엇기에(같이 일본 여행 가서 아키하바라만 3일동안 거주함) 서브 컬쳐 쪽 게임을 제작 하기로 했다. 그런데 내 코딩 실력이 부족하고 첫 게임 프로젝트다 보니 여러모로 부족한게 많아 비주얼 노벨 장르의 게임 개발을 시작하게 됐다.(사실 비주얼 노벨도 그 때 당시엔 내가 좋아했엇다)

어느날 소꿉친구가 좋아졌다 프로젝트 출시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아침 점심, 초저녁까지는 사회복무요원으로 국방의 의무를 진행 했고 밤에는 잠을 줄여가며 게임 엔진을 찾아 봤는데 그 때, 비주얼 노벨 장르를 만들 때는 대부분 렌파이 엔진을 사용한다는 정보를 얻고 렌파이 엔진을 통해 게임 개발을 진행 했다.

근데 나는 파이썬을 모르는 상태라 또 잠을 줄여가며 어느 한 인도인 유튜브를 보고 공부하고 어느 한 스택 오버 플로우의 정보 글을 보며 공부하면서 게임 코드를 작성했다.

그 결과로는 어쨋든 출시함! 이 됐다. 아 몰론 코드 내부 상황은 이랬을 거다.

그래도, 내가 짠 코드로 대화 스크립트가 넘어가고 저장, 로드, 회상 여러가지 시스템이 돌아가는 것을 보며 뿌듯함을 느꼇엇고 팀 프로젝트가 어떻게 진행 되는지에 대한 경험을 얻었음에 뜻 깊은 프로젝트였다~ 라고 감상에 젖어 있자 마자 바로 두 번째 프로젝트로 들어갔다. 몰론, 구상부터 시작이기에 내가 할 일은 적었다. 그냥 같이 회의에 참여하는 정도랑 같이 프로젝트 할 팀원 찾아보기 정도였다.

복학과 어느날 이종족이 좋아졌다 프로젝트 출시

그렇게 사회복무요원을 마치고 나서 대학교에 복학을 하고 두번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두 번째 프로젝트도 비주얼 노벨 장르였다.

이 때는, 유니티 엔진을 사용해보고 싶었기에 유니티 엔진을 통해 CSV 파일을 파싱하여 대화 스크립트를 진행하거나 시나리오 분기점을 나누는 시스템 오디오 매니저 유니티 서드파티 에셋인 Do Tween을 사용해보는 경험등 유니티 엔진에 관한 많은 경험을 얻게 됐다.

이 때 코드는 아무래도 첫 출시작인 어소좋(어느날 소꿉친구가 좋아졌다)의 코드 품질이 좀 더 낫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 봤자 스파게티 코드의 집합체) 싱글톤, 매니저 패턴을 사용 해 본 경험만으로도 충분히 값졌다. 그리고 벌써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 게임을 두개나 출시 한 사실이 가장 뿌듯했다!

국비지원 교육(인하대학교 미래인재 개발원)과 대학교 수업의 병행

나는 병행을 하는걸 참 좋아하는 것 같다. 대학 수업과 팀프로젝트의 병행, 사회 복무요원과 팀프로젝트의 병행 그리고 이번에는 국비지원 교육과 대학교 수업의 병행을 했다.

왜? 인하대학교 미래인재 개발원에서 했을까?

먼저, 팀에서 같이 일했던 친구(귀인?)의 추천 때문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이 친구의 모습을 보니 많은 팀 프로젝트를 하는 것 처럼 보였기에 나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 지금까지 같이 팀 프로젝트를 해 경험을 쌓긴 했지만 사실, 개발 부분에는 나만 존재했기 때문에 같이 코딩을 치고 프로젝트의 형상관리를 어떻게 진행하는지에 대해 몰랐기 때문에 해당 국비 지원이 꽤 매력적으로 보였다. 실제로 같이 개발하는 방법에 대해 많이 알아갔고 부족한 코딩 실력도 여기서 많이 늘게 됐다.

그래서 다시 커피와 함께 1년 동안 다시 공부 공부 공부 + 팀프로젝트를 했다. 솔직히 병행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작년에 이 병행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빨리 종강했으면 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버텼다.(종강해도 팀프로젝트는 계속됐지만)

그리고 이 때 가장 개발적인 실력이 많이 늘었던 것 같다.

역시 멘토와 강사님의 있고 없고는 꽤 차이가 큰 것 같다. 첫 학원에서는 강사님의 실력이 좋았지만 수강생들이 워낙 많다보니 나에게 일일히 피드백 해주지 못했는데 이 국비지원 교육에서는 수강생들끼리도 친하고 강사님과도 친밀하게 지내다 보니 여러모로 서로 도움을 주며 같이 성장했엇던 것 같다.

대학 생활의 끝, 국비지원 교육의 끝, 그렇게 취준생의 길

작년 12월부터 포트폴리오와 이력서를 정리하며 코딩 테스트의 준비를 위해 프로그래머스를 풀며 취업 준비를 했다. 그렇게 정리를 다하고 강사님에게 리뷰를 받으며 수정에 또 수정에 또 수정... 무한 수정의 지옥에 빠졌었다. 그렇게 수정을 다하고 강사님에게 오케이 사인을 받고 게임잡이라는 사이트에 많은 지원을 햇엇다.

그렇게 지원을 하고 일주일 후

그 누구도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 때 당시에 공고에 8개정도를 넣었던 것 같은데 아무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아 멘붕에 빠져있엇다. 그리고 당연히 자존감도 바닥을 치고 있엇다

이런 사실을 국비지원을 같이 듣는 친구들에게 말하니 게임잡 사이트를 열어보라 했다.
그래서 열고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이 친구들이 그냥 50군데정도를 지원한것이 아닌가. 솔직히 이건 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지원하는게 잘못은 아니잖아? 라는 생각이 들어 친구들이 지원한 회사를 하나 하나 보며 나와 성향이 맞는지, 내가 이 회사에 도움이 될만한지, 내가 성장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며 지원한 회사를 간추렸다. 그렇게 간추려보니 30곳 정도 지원하게 됐는데 기적처럼 다음 날 바로 면접 제의가 계속해서 왔다.

첫 면접의 아픔 그리고 무한 면접

첫 면접은, 그냥 충공깽이였다. 학부생임에도 불구하고 운영체제, 컴퓨터 구조에 대한 질문을 반 정도는 대답하지 못했고 인성 면접의 질문 리스트에 대한 대책도 하지 않아 완전 망했엇다. 첫 면접을 본 면접관들의 시간을 허비하게 만든 것 같아 너무 죄송했엇다. 그 이후로 나는 밤을 새며 면접 준비를 했고 다양한 회사에서의 면접을 보며 떨어지고 합격하고 하게 됐다. 면접도 여러번 보다 보니 꽤 익숙해져서 보면 볼 수록 긴장이 별로 안 들게 됐다. 글을 읽는 독자분들도 면접을 두려워하지 말고 여러 곳을 보는 것을 추천한다. 면접도 이론 공부와 실습 공부다!

그렇게 면접을 14번 정도 보게 됐는데 결국, 내가 원하는 곳에 최종 합격을 하게 됐다!

그렇게 신입은 최종 합격한 곳에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와 같은 말은 없다. 회사에 들어가자 마자 엄청난 긴장감에 그 날 하루는 하루종일 배가 아팠다. 그래도 같은 팀원분들이 모두 착하고 나에게 잘해주셔서 그 다음날은 긴장감이 덜 했다.
모두 실력이 좋고 열심히 자기 개발을 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열심히 자기 개발을 하며 빨리 회사에서 일인분을 하겠다고 다짐 하게 됐다.

현재, 나는 능이버섯이 아닌 능히 할 수 있다는 마음 가짐으로 회사를 다니고 있다.
열심히 살자.

지금까지 게임 프로그래머가 되기까지의 회고록이였다.
읽어줘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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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게임 클라이언트 개발자에서 서버 개발자로 전환 하고 싶은 Gritty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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