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도 (feat. 글또)

hwibaski·2024년 9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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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글또 10기 지원요건에는 삶의 지도라는 주제로 글을 써야하는 항목이 있다. 해당 글을 쓰며 나의 삶을 되돌아보고, 글또의 지원요건도 충족시고자 한다.

게임 없이 못 살아

어린 시절은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자라지는 못했다. 맞벌이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그 덕분인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외로움에 대한 일종의 내성 같은 것이 생겼다. 엄마는 이런 나에게 많은 경험을 시켜주기 위해 없는 살림에도 여러 학원을 보냈던 것 같다. 아마 그것 말고는 뾰족한 방법이 없었으리라. 그런 엄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게임을 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한때 유튜브 영상에서 아버지가 아들의 플레이스테이션을 망치로 때려 부수는 영상을 봤었다.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우리 아빠도 게임에 빠져 있던 아들의 컴퓨터 케이블을 잘라버린 적도 있었다. 그 정도로 나는 게임을 좋아했다.

영문학과생 그림쟁이의 삶을 꿈꾸다.

게임을 좋아했지만, 학교 공부를 못하는 편은 아니었다. 고3이 되어서 대학 원서를 작성해야 할 때 큰 고민 없이 부모님의 권유로 영문학과에 지원했다. 성적에 맞춰서 영문학과에 수시 전형으로 입학했고, 아무 생각 없이 학교에 다녔다.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는 꽤 공부를 열심히 했었다. 영문학에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뭔가를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았고 열심히 할 수 있는 건 학교 공부라고 생각해서 그저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운 좋게도 교직 이수 과정에도 합격해 교사의 길을 잠시나마 꿈 꿔 보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학생들을 가르치는 나의 모습을 진지하게 상상해 보았다. 그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내가 학생들을 잘 가르칠 수 있을까? 아니, 나는 영어를 좋아하는가? 나는 영어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데 좋은 교육자가 될 수 있을까? 라는 고민들 끝에는 나는 무엇을 하면서 살고 싶은가? 나는 어떤 걸 좋아하는가? 라는 질문에 도달했고, 나는 내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다는 현실을 직시했다. 결국, 대학교 3학년 때 나에 대해 탐구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섰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건 게임이었다. 게임을 좋아했지만, 프로게이머가 될 수준은 아니었다. 막연하게 게임과 관련된 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 어찌 보면 너무 간단하게도 몇 번의 인터넷 검색을 통해 게임 캐릭터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고, 난데없이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오래 한다고 해서 다 되는 건 아니다.

놀랍게도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다짐하고 나서 큰 고민 없이 교직 이수 과정을 덜컥 취소했다. 3학년 초반까지 4점대인 학점을 받을 만큼 열심히 했던 학과 공부도 소홀히 했다. 근데 전혀 아무렇지가 않았다. 방향과 목표가 선명하게 정해지니 목표를 이루는 것과 상관이 없는 활동들은 아무 미련 없이 떨쳐낼 수 있었다. 상쾌하고 선명한 그 느낌이 좋았다. 인생이 뚜렷해진 것 같았고, 목표가 생긴 인생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일을 다른 사람이 쉽게 하는 것 같으면 그 사람이 그 분야의 엄청난 고수라는 말이 있다. 한 장의 그림을 그리기까지는 많은 내공이 필요했다. 대학 입시로 그림을 배운 것이 아니었고, 그림에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림을 배우는데 긴 시간을 투자할 수밖에 없었다. 봐줄 만한 한 장의 그림을 그려낼 실력을 얻기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림을 배운 지 5년 만에 게임 회사에 지원해 볼 만한 포트폴리오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이 기간에 오랫동안 포기하지 않고 무언가에 매진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됐다. 그리고 남들과의 비교보다 과거의 나 자신과의 비교를 성장의 지표로 삼을 수 있는 정신력도 얻게 됐다.

하지만, 포트폴리오를 완성하고 게임 회사에 지원할 시기에 코로나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채용 프로세스를 끝내고 합격 통지를 받은 사람들조차 입사가 취소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코로나는 심각했다. 코로나가 언제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갈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객관적으로 봐도 이러한 시기를 뚫고 합격을 받을 정도로 그림이 매력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랜 기간 아르바이트와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으로 겨우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자, 그마저도 계속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수많은 불합격 통보와 함께 내 의지는 더욱 꺾였고 그리 어렵지 않게 그림으로 밥법이해야겠다는 생각을 포기하게 되었다. 서울에 있을 필요가 없던 나는 부모님이 계시는 대구로 내려왔고 외삼촌이 운영하는 전기 공사 회사에 현장직 막내로 급하게 일을 시작했다.

생각지 못한 곳에서 생각지 못한 꿈

말이 전기 공사 회사지 건설 현장에 투입되어서 일을 하므로 굉장히 험한 환경이었다. 위험한 일을 하므로 선배들로부터 쌍욕을 들을 때도 있었다. 신축 건물 현장에 배관, 배선을 하는 일도 해보고 아파트 현장에 설치된 크레인 꼭대기에 배선하는 일도 하고, 가로등을 교체하는 일 등 짧은 시간이었지만 다양한 경험을 했다. 몸은 고됐지만 당시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기에 당시의 상황에 수긍하고 열심히 회사에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 홍보를 위해 랜딩페이지를 만들고 인터넷에 게시하는 방법을 조사해야 할 일이 생겼다. 다른 직원들은 이 일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나는 관심이 갔고, 자원해서 조사를 시작했다. 먼저, 가장 빠르게 홈페이지를 게시할 방법을 인터넷에 찾아보니 템플릿을 제공해 주고 틀 안에서 글자나 이미지들을 삽입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템플릿을 제공해 주는 서비스들의 타겟이 회사가 아니다 보니 자유도도 높지 않았고, 테마도 회사 홍보용으로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내가 원하는 대로 웹페이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웹페이지를 만드는 방법들을 검색했고 거기서 생활 코딩을 만났다. 무료 튜토리얼 같은 것들을 찾아보고 따라 해봤다. 놀랍도록 재밌었다. 3개월 만에 개발자가 될 수 있다는 부트캠프 광고를 보고 걱정과 동시에 희망을 얻었다. 웹 개발자가 되고 싶었다. 1년간 모아둔 돈을 가지고 부트캠프에 등록했다. 다시 상경했다.

30대 문과생도 개발자가 될 수 있다.

처음 해보는 개발이었지만 재밌었다. 어려운 것 천지였고,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적당한 창의력과 어느 정도 방법이 정해진 틀 안에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이 재밌었던 것 같다. 프론트엔드 웹 개발자를 생각하고 부트캠프를 시작했지만, 코딩에 대해서 알아갈수록 백엔드 개발을 할 때 더 큰 재미를 느꼈고, 적응을 잘했던 것 같다. 운 좋게도 부트캠프 수료 후에 작은 스타트업에 취업할 수 있었다. 레거시 이커머스 플랫폼을 몇 개의 기능을 추가하여 신규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프로젝트였다.

일 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잠을 줄여가면서 일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여기저기 찾아보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개발했다. 작은 서비스였고 짧은 기간이었지만 A부터 Z까지의 작은 사이클을 직접 경험해본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안심하고 계속할 수 있을 것 같던 회사는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투자 유치 실패로 인원 감축에 들어갔고, 초기 창업 멤버를 제외한 모든 직원이 권고사직 처리를 받게 되었다. 개발자로 취업한 지 1년 반 만에 다시 실업자 처지가 되었다.

개발을 포기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개발하는 것이 너무 재밌었고, 적성에 정말 잘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실업기간에는 오히려 부족한 부분들도 공부하고, 이력서도 점검할 수 있는 시기가 됐다. 그와 별개로 경기침체로 인해 구직시장은 너무 차가웠다. 약 250개 정도의 기업에 이력서를 제출했고, 지금의 회사에서 백엔드 개발자로 일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지금 재직 중인 회사는 물류 도메인인 주식회사 디버다. 퀵서비스를 제공하는 디버와 디지털 메일룸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포스트라는 두 개의 서비스를 가지고 있고, 나는 디포스트 서비스의 백엔드 개발을 맡고 있다.

마무리하며

이 정도 길이의 글을 얼마만에 써보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글또 덕분에 나의 삶을 짧게나마 한 번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글또 10기에 내가 선정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다. 선정이 되서 이런 글을 자주 쓸 수 있는 동기를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글을 쓰는 동안 차분하게 나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내용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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