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7살까지 먹은 지금까지 매 순간 미래를 위해 열심히 살지 않았다. 단지 운이 좋았을 뿐. 여기에 오기 전에도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은 더 그렇게 느낀다. 내가 지금까지 원해서 이룬 것들이 있었지만 그것들을 얻기 위해서 내가 마음속으로 간절하지 않았고 최선까지는 다하지 않았다는 것은 내가 알고 있다. 동기들의 과거 스토리를 들으면 나처럼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고 그들은 내가 보기에는 적어도 '삶의 한 순간' 만큼은 열심히 살아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용기를 가지고 자기가 머릿속에 그린 그림을 현실에서 그려나갈 때 나는 용기를 갖기는 커녕 소극적이었다. '나중에는 그래도 직장 얻어서 일 잘하고 살겠지' 같은 막연한 생각이나 하면서 살았다. 그러다 정글을 만났고 안일한 생각으로 2차에 지원했다가 떨어지고 3차에서 마음을 다잡고 결국 여기로 왔다. 내가 절실한 것인지 아닌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기회가 내 느슨했던 삶을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세게 조아줄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고 생각했고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보면 다행히도 그 마음이 통한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개발 프로젝트도 해봤고 알고리즘 공부도 해봤지만 지금까지 여기에서 보낸 일주일 만큼 개발에 시간을 써 본적이 없는 것 같다. 여기에 들어오기 전부터도 알고리즘 공부를 꾸준히 해보았지만 금방 나태해져서 똑같은 페이스를 유지하기가 힘들었는데, 여기는 모두들 자연스럽게 공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있어서 내 목적에 집중하기 좋고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도 늘었다. 환경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내 생각보다 훨씬 큰 차이였다. 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운영진분들께서 첫 날부터 팀 프로젝트를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커리큘럼에 운영진분들의 노력이 녹아있는 게 잘 보인다. 솔직히 말하면 여기에 와서도 내 이전 습관들이 남아있어서 그런지 쉬고 싶다는 생각도 정말 많이 들었지만 나는 이렇게 좋은 분위기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었으니 이 기회를 최대한 잘 이용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매 주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팀이 계속해서 교체되는데, 이것 또한 허투루 짜지 않고 의도적으로 짜고 있는 것 같다. 여기에 온 지원자들 중에서는 이미 전산 공부를 하고 온 사람도 있고 경험이 없는 사람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랜덤으로 매칭하게 되면 팀끼리의 전력차가 크게 벌어지기 때문에(첫 주차와 같이 기간이 얼마 안된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일부러 경험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고루 섞어놓았다. 나는 두 분류 중에서 한 가지를 고르라면 경험이 있는 편으로 볼 수 있다. 이전에 안드로이드 앱 프로젝트 개발로 협업을 하면서 git, Notion의 사용법을 익혔고 협업으로 어떤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는 지 미리 경험을 했고 전산학과를 나왔기 때문에 나는 다른 지원자들에게 커리큘럼 초반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남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나에게도 도움이 된다. 나는 정글에서 내가 어떤 것을 꼭 얻기 위해 남을 도와야 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 않다. 누군가 힘들어 하는 것이 있으면 남의 공부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도와준다. 그것은 내 공부에도 도움이 되고 남의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 그리고 남을 돕다보면 그게 언젠가 작든 크든 나에게로 돌아오더라. 아버지가 그런 식으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자주 보았다. 내가 피해보지 않을 선에서 호의를 베풀면 이에 감사함을 느끼는 사람은 나에게 은혜를 갚아준다. 나도 살면서 그렇게 호의를 베풀어보니 결국은 돌아오더라. 내가 꼭 대가를 바라고 다른 사람을 도와야겠다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그 대가가 나에게 돌아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내가 살면서 가장 열심히 임했던 것 중의 하나는 게임이었다. 이제보니 나는 게임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게임을 즐기는 방법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누군가는 일상생활에서 느낄 수 없는 짜릿한 쾌감의 한 순간을 맛보기 위해서 즐기고, 내 캐릭터가 강해지는 모습을 보며 즐기고, 게임의 분위기를 즐기고, 자신의 실력이 상승하는 것을 즐긴다. 나는 내 실력이 상승하는 것에서 가장 큰 재미를 느꼈다. 고등학생 때부터 스타크래프트2를 즐겨 했었는데 고등학교 졸업을 한 이후로 남는 시간에 게임을 하니 자연스럽게 실력이 늘었다. 게임을 하다 보면 나보다 삐까뻔쩍한 테두리를 가진 고티어 유저들을 만나는데, 그걸 보면서 나도 랭킹전 승급을 해서 그 멋진 테두리를 가져보고 싶었다. 그래서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내 리플레이를 분석하고 난 어떤 점이 강점이고 어떤 점이 약점인지, 내가 어느 타이밍에 가장 강력하고 어느 타이밍에 가장 약한지. 그리고 내 강점을 언제 부딪히면 상대를 쉽게 이길 수 있는지를 연구했다. 나는 피지컬이 뛰어나지만 판을 그리는 플레이를 잘 못했기 때문에 초반부터 피지컬로 찍어누르는 스타일을 연구해서 결국은 티어를 올리는 데 성공했다. 그 이후에도 게임을 계속하며 최고점으로 한국 서버 상위 1%를 달성했다.
이 경험이 큰 경험이었다. 정말 신기한 것은, 어떤 게임이든 본인이 찍을 수 있는 정점에 한번 오르고 나면, 완전히 다른 게임을 접해도 랭킹을 쉽게 올릴 수 있다. 나는 게임에 재능이 없지만 게임을 많이 해보고 셀프 피드백을 한 것 밖에 없다. 이것은 재능이 없어도 자신이 갈 수 있는 최고점까지 가는 나만의 방법이다(그 이상까지 가는 것은 엄청난 노력과 재능이지만). 이것이 내 머릿 속에 있는 게임 이론이다. 정글에 처음 온 날 장병규 의장님이 말하셨던 정글의 목표는 "재능이 없는 사람도 억대 연봉자를 만드는 것" 이라고 하셨다. 그 분이 지금까지 살면서 보았을 때 재능이 없어도 그 수준까지는 충분히 갈 수있다고 확신하신 것 같았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내가 갖고 있던 게임 이론과 상당히 흡사해서 많이 놀랐다. 나는 이 이론이 게임에만 적용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글이 내가 갖고있는 철학, 인생관과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더욱 여기에 오길 잘 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기서 가장 얻고 싶은 것이 2가지 있다.
첫 번째는 운영진님들이 그렇게 강조하시는 기본기. 커리큘럼을 보면서도 어떤 내용을 배울 지 감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호기심이 많이 생기기도 하고 이걸 배운 것과 배우지 않은 것의 차이가 얼마나 클지도 궁금하다.
두 번째는 동료. 사실 이것은 정글에 들어오기 전부터 중요하다고 생각해여 꼭 신경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부분이다. 다행히 운영진분들께서도 꾸준히 동기들과 고루 섞여서 말할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는 것이 눈에 보여서 이 부분이 정말 마음에 든다. 나와 업을 같이하는 동료는 살면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가능하면 모든 사람들과 다 친했으면 좋겠지만 꼭 그게 안되더라도 친한 사람들과 그룹을 이루고 밖에 나가서도 꾸준히 연락하는 사이를 만들고 싶다.
추가로 매형께서 모 대기업에서 퇴사하고 몸 회복을 위해서 쉬시다가 12월부터 슬슬 다른 회사로 가려고 여러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동료들과 한번씩 식사 자리를 만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쉬고 있는 동안에도 자기네 회사로 오라고 러브콜을 엄청 많이 받았다고 한다. 실제로 스타트업을 창업하거나 규모가 큰 기업에서 개발자를 찾을 때도 지인 추천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하긴 그도 그럴것이, 회사 입장에서도 실적을 잘 내고 있는 사원이 추천하는 사람들은 어느정도 검증이 되어있다고 볼 수 있고 추천을 하는 사원 입장에서도 믿을 수 있는 사람과 같이 일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에게 다 좋은 것이다. 후에 나도 동료들에게 "우리 회사 와서 같이 일하자" 라고 말하거나 다른 동료들에게 그런 말을 듣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어떻게 이런 기회를 얻었나 싶다. 나처럼 여유롭게 설렁설렁 살던 사람이 다른 간절한 사람들을 제치고 이렇게 선발되어서 와도 되나 싶은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결국은 내가 선발되어서 기회가 나에게 오지 않았는가. 다른 간절한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열심히 해야한다. 나는 매 순간 미래를 위해 열심히 산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정글에 들어온 이 시간을 내 삶에서 열심히 살아본 "삶의 한 순간"으로 만들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삶을 능동적으로, 주체적으로 살고 싶다. 아직은 구체적으로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정하지 않았지만 목표가 있으면 용기를 가지고 돌파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