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공자가 왜 개발자를 하려고 해요?

garden·2022년 6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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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같은 사람이 오면 안 되는 곳인가요?

"전공이 아닌데 왜 개발자를 하려고 하세요?"

비전공 지원자가 면접에서 많이 받는다는 질문이다. 질문자마다의 의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으나, 나는 이 질문을 받게 된다면 속 뜻을 이렇게 해석하겠지.

1. 유망한 직종이라니까 별 생각없이 안일하게 뛰어든 것 아니냐
2. 그래서 조금만 기대와 다르면 금방 그만둘 것 아니냐
3. 우리는 그런 나약한 쇠끼랑은 일하지 않는다

이것저것 찾아보다보면 겁을 주는 사람들도 있다. 비전공 개발자 지망생이 쏟아지는 상황이라도 전공유무가 생각보다 중요할 수 있단다. 오히려 지금같은 상황이라 더 중요하게 볼 수도 있다는 글도 여럿 보았다.

"개발자 계속 하실거죠? 진지하게?" 에 대한 답을 준비하지 않으면 나의 취준길이 위험해지는 걸까?

그러면... 대답을 어떻게 해?

🙃 특별한 이유가 없습니다

개발자가 되고 싶어진 계기가 대단하지 않아서 곤란하다.

날백수로 9개월

비상경 어문계열 단일전공 대졸자가 지원할 만한 직무엔 뭐가 있을까? 길이 정해지지 않은 게 어문전공의 매력이라는 우스개 소리도 우습다. 살 길 찾아 흩어지는 선후배들을 보면 일반적인 길이라는 게 분명히 있다. 공무원, 은행, 영업, 해외영업, 무역업. ...하고 싶은 게 없는데요?

그래서 백수로 9개월을 보냈다.
말로는 취준생이라고 하는데 실상은 취준도 안 하고 먹고 자고 싸기만 하는 아메바였다. 취업하는데 재미 따지는 사람이 어디있냐고 뜬 구름 잡지 말라던데, 나는 그게 정말 중요한 사람인데 어쩌란 말이냐. 하루에 깨어있는 시간 중 절반 이상을 쓰는 일인데 재미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재미가 있어야 되는데요

하고 싶어야 움직이는 게 내 장점이자 단점이다. 다르게 말하면, 흥미로 시작한 일이라면 중간에 괴로워서 죽을 것 같아도 끝까지 간다는 말이다. 이래서 내 주변인들은 나한테 행동력, 책임감 이런 태그를 붙이곤 하는데 실상은 그냥 재미로 움직이는 재미주의 사람이다.

데이터 분석이라는 거..재밌어 보인다

백수 10개월 차.. 모종의 계기로 데이터 분석 직무에 관심이 생겼다. '데이터로 말하라'는 문장도 멋있고, 미래에는 데이터 모르면 살아남기 어렵대서 빅데이터 교육과정에 지원했다. 교육내용은 웹개발 2개월 후 1차 프로젝트(4주), 데이터 분석 2개월 후 2차 프로젝트(3주)였다.

🕺웹 개발 뭔데 왜 재밌는데

스프링 MVC로 고객센터 게시판을 만드는 게 1차 프로젝트에서의 내 임무였는데 하루하루가 너무 괴롭고..재미있었다.

무섭기만 하던 에러창을 반기게 된 것,
에러 번호를 확인하자마자 무슨 파일부터 봐야할 지 알게 된 것,
ajax로 조회수를 db에 저장하는 데에 성공한 것,
view에 만들어 놓은 표 안에 db 내용이 짠 하고 들어오는 것..

parameter 따라 View-Controller-Dao-Mapper-xml 갔다가 sql문 확인하고 따라 돌아오면서 debug 출력문 확인하고 에러 수정하고 이런 게 정말 머리 터질 것 같고 시간이 금방 갔다. 이런 세계가 있었구나.

개발자 할 생각은 없었는데

'웹개발이 재밌긴 한데 난 데이터 분석 배우려고 들어온 거니까.'
이 생각은 정확히, R 수업 시작 1주일 만에 바뀌게 된다.

데이터 전처리하고 시각화로 그래프 짜고 이런 것들이 아주 재미없었던 건 아니었다.

문제는 데이터 엔지니어링을 직무로 결정하기엔 웹개발이 더 재밌다는 점이었다.

화룡점정

2차 프로젝트가 데이터 분석이 아니라 MSA 구조 공부라고요?

다른 조들은 데이터 받아서 전처리하고 R로든 파이썬으로든 시각화하고 머신러닝 돌려서 결과 도출하는 과제를 받았다. 우리 조는? 갑자기 MSA 구조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최종발표에서 pt 할 수 있을 만큼을 목표로. kafka가 뭐야? eureka는 또 뭔데. ribbon이 로드밸런싱을 해준다고? scale out을 해야하는 이유는? 나는 냅다 도커를 파기 시작했고 도커 데스크탑 깔아서 shell 에다 docker ps 치다가 docker file 해석하고 앉았다.

우리 조 과제의 목적은 다름이 아니었다. 빅데이터 분석 결과는 결국 웹에다 뿌려야 한다. 분석역량도 중요하지만 분석 결과를 서비스에 적용하기위해 많이 쓴다는 MSA life cycle을 파악하는 것이 바로 우리 조 과제의 명분이었다. 데이터 분석 프로젝트가 맞기는 한 거 아니냐는 일말의 명분.

💃 오히려 좋아.

MVC도 재밌었는데 스프링 부트로 MSA는 신세계였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 상태인지 일 분 일 초 깨달으면서도 너무 재밌었다. 남들 데이터 분석하고 있을 때 또 다시 웹을 하면서도 불안하긴 커녕 좋기만 했다.

실력도 뭐도 잘난 것 하나 없는 코딩 6개월차 취준생 주제에, 이 일이라면 정년까지도 지루할 일 없겠다는 상상으로 설렌 것이다.

나 웹개발자 할래~!!

🤦그래서? 대답은 어떻게 해

돌아가서, 전공자가 아닌데 왜 개발자를 하냐는 질문을 듣는다면 무슨 대답을 해야할까?

"저는 재미가 있어야 움직이는 사람인데요. 개발이...재밌는 것 같은데요?"

이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영문과인데요. 영어 전공이면 프로그래밍 전공 맞는 거 아닌가요?"

나가.

🤞초면에 신뢰를 얻겠다는 환상

이쯤되니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답변 중에서 질문자를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는 선택지가 있는 지 의문이 든다.

신뢰 문제에 대한 검증이 맞다면 더더욱 그렇다. 신뢰는 시간을 들일 수록 공고히 쌓을 수 있다. 얼마나 설득력있는 서사를 품고 있어야 처음보는 사람에게 말 몇 마디로 그럴듯한 신뢰를 줄 수 있는 걸까?

물론 채용담당자는 그 동안의 포트폴리오, 프로젝트 경험, 자격증 등으로 지원자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를 측정하려 할 것이다. 도망가지 않고 지치지 않을 비전공자라고 말로 어필하는 것이 전부가 아닐 것이다. 당연히도.

그러면 비전공자인지 전공자인지에 대해 더더욱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거 아닌가?

결국 해당 질문은 사람과 상황에 따라 크리티컬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설사 중요하다 해도 다른 부분에서 충분히 보강할 수 있다. 신뢰 문제가 아니라 처음부터 전공유무가 무엇보다 중요한 회사라면 모집요강에서부터 명시를 해놓겠지.

🤸 이래도 될까? 🤸

저는 비전공자이지만 개발자를 하고 싶습니다. 재미있는 걸 하면서 먹고 살고 싶은데 게시판 만드는 거 너무 재밌었고 다른 것도 해보고 싶어요.

안 되면 어쩔건데....
취준 시작하면 면접에서 똑같이 말해보고 후기 써보기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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