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한 장면을 떠올려 그 순간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감정을 느꼈는지, 아이 시점으로 글 써보기
내 특징 중 하나는 옛 기억을 잘 잊는 다는 것이다. 특히 안좋은 기억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사건처럼 지워지기에 이점이 있지만 필요한 기억도 잘 잊힌다. 그렇다보니 어린 시절도 뭐 하나 글감으로 떠오르지 않는다. 떠오르는대로 손이 가는대로 써봐야겠다.
아빠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지금까지 산악회를 다니고 계신다. 그렇기에 좋던 싫던 아빠를 따라 등산을 자주 갔다. 집 앞에 있던 버스를 타면 한 번에 도봉산을 갈 수 있었고, 정상까진 자주 가지 않았다. 자주 가는 길이 몇 개가 있어 아직도 어떤 장소는 머릿속에 남아있다. 엄마는 등산은 커녕 걷는것도 싫어하는 사람이라 항상 툴툴대고 계셨고, 정상에 자주 못 오른 이유 역시 보통 엄마였다.
산은 포장도로가 아니기에 불규칙하고 난해한 바닥을 가지고 있다. 튀어나온 뿌리, 흔들리는 돌, 젖은 흙, 미끄러지는 모래. 그렇다보니 발을 디딜 곳을 신중히 골라야 한다. 그리고 난 잦은 산과 계곡 경험으로 어디에 발을 딛으면 될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땅에 충분히 박혀있는 돌, 들썩이지 않을 뿌리, 광택이 나지 않는 흙모래. 예나 지금이나 집에서 게임하는게 최고인 나였지만 바닥을 파악해서 안전하게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은 퍼즐과 같아서 좋아했다. 그 당시엔 인정하지 않았지만 지금 떠올려보니 좋아했었다.
그러나 더 좋아하던 것은 따로 있었다. 앞 사람과 두 세 발자국 차이로 따라가면서 그 사람의 발자국 그대로 걷기. 앞 사람이 밟았던 곳을 밟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미리 알 수 있다보니 생긴 습관이었을테지만 어느새 그 사람의 발자국을 기억해서 그대로 밟는것 자체를 더 좋아했다. 처음엔 같은 곳을 밟는 것에 지나지 않았는데, 점점 그 사람이 밟은 위치와 각도를 정확히 밟아 한 사람 발자국 흔적만 남길 수 있게 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토끼가 자신의 발자국을 되밟아 흔적을 지우듯 내 발자국을 남기지 않고 이동하는 것이 재밌었다.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를 집에서 가까운 곳을 다녔다. 그리고 내겐 두 살 아래의 남동생이 있다. 우리는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이 아침을 먹고 같이 등교했다. 그렇다. 난 아침마다 동생의 발자국만 밟으며 학교에 갔다. 이 즈음에 이르러서는 6보 정도는 동생이 밟은 자국이 눈에 보였다. 그럴리가 없지만 동생이 밟은 곳은 왠지 좀 더 노란색으로 보였다. 두 세 보 정도는 아주 쉽게 따라 밟을 수 있었고, 어쩌다 몇 보 더 멀어지면 난이도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걸 성공적으로 밟아내는 것이 이 놀이의 묘미였다. 그리고 동생은 내가 이런걸 했는지 모를거다 아마.
지나가다 왕관 택시를 보면 실패 무효를 한 번 쓸 수 있었다. 그렇지만 보통은 그때그때 핑계를 댔다. 방금은 사람이 지나가서 무효야, 아 갑자기 누가 불러서 무효야, 동생이 자기 맘대로 출발해서 무효야.
그리고 동행이 없을 땐 눈에 보이는 모든 숫자를 합쳐서 한 자리 숫자로 만들기, 추월당하지 않기, 상상의 날아다니는 검을 만들어서 휘두르기, 눈 감고 목적지까지 도달하기 같은 것들을 하면서 걸어 다녔다. 과거를 떠올리다 보니 오늘 점심 산책 때 쇼츠를 보면서 걸었던 것이 조금 부끄러워진다.
아, 그리고 이번 숙제가 늦은 건 뒤늦게 합류했기 때문에 무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