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장창 2022 회고 (TMI 1편)

Byte8teBit·2023년 1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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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때문에 와장창...?

개발자라는 직업을 시작하고 약 1년 반이 지났다. 사실 비전공자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조금 더 준비하는 시간을 오래 가지고 갔기 때문에 나와 함께 공부한 친구들에 비해서 조금 더 늦게 출발점을 지났다. 2021년 중반을 약간 넘긴 시점에서 미약하게나마 시작한 나의 개발자 인생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회고해보고 내 자신을 명확하게 하기위해 글을 남긴다.

왜 때문에 개발자를...?

1. 프롤로그

나는 개발자를 하기 전까지 사진작가를 하는, 지극히 평범한(그렇다고 지금 평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20대 후반을 보내고 있었다. 사진작가가 된 이유를 말하자면 그것도 나름 긴 이야기가 될 것이기에 나중에 풀어볼 수 있으면 풀어보는 것으로... 여튼 전공과도 상관없는 사진작가를 하고 있던 내가 왜 점점 더 전공과는 멀어지는 일을 선택하며 결국에는 개발자의 길을 걷게 되었는가 생각해보면 <개발자>라는 직업은 내가 뜬구름을 잡는 "과학자가 되고 싶어요!" 같은 어린 시절의 <멋져보이는 직업 고르기>를 벗어나 현실적으로 가지고 싶었던 첫번째 직업이라는 것이었다.

2. 난 그냥 바람의 나라를 하고싶었던것 같기도...

한창 컴퓨터 학원에서 자녀들에게 컴퓨터 자격증을 따게 하는 것이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기본적인 투자라는 개념으로 학부모들 사이에서 핫했던 적이 있었다. 컴활 시험장에도 초등학생들이 넘쳐나던 때였다. (물론 나도 그 중 하나였고...) 컴퓨터 학원에 다닌다고 하면 공부보다 버디버디, 바람의 나라를 부모님께 혼나지 않고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라 생각해서 부러워하는 주변 친구들도 종종 있었다. 컴활 공부를 할 때에는 그냥 외워서 시험보고 자격증을 따는 것만 생각했었는데 (사실 대부분은 빨리 공부 분량을 끝내고 자유시간에 친구들과 게임을 하고 싶었을 뿐이지만), 내가 개발자라는 꿈을 생각하게 되었던건 사실 컴활보다는 정보처리기능사 시험 공부를 하면서부터였다.
정보처리기능사 자격증을 공부할 때에는 컴퓨터 학원에 대한 붐도 줄어들기 시작할 때였고, 실제로 학원에 학생들도 많이 줄었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나는 컴퓨터가 좋아서 다녔었는데 덕분에 <나모웹에디터>를 통해서 홈페이지 만들기를 처음 경험했던 기억이 난다. 나모를 재밌게 만지던 나를 보며 넌지시 컴퓨터 선생님(어릴 때는 학원이든 학교든 다 선생님이라고 불렀다.)은 정보처리기능사를 따보는 것이 어떻겠냐며 이야기를 하셨다. 덕분에 <비쥬얼베이직>을 사용하여 코딩-이라고 부르는 것도 민망했지만-을 경험하게 되었다. 컴활 때와는 다르게 5명을 넘지 않는 작은 소규모 인원으로 준비한 정보처리기능사를 따고나니 컴퓨터 학원이 사업을 정리하며 내 컴퓨터 학원에 대한 추억은 끝이 났다.

3. 그래서 왜 안되는데요?

정보처리기능사를 따면서부터 나는 개발자가 되고 싶었다. 중학교에서는 컴퓨터 과목 선생님 눈에 들어 선린 인터넷 고등학교에서 방학동안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기회까지 얻을 수 있었다. 학원보다 전문적인 컴퓨터 교육을 받은 첫경험이었다. 아침에 수업을 들으러 가는 그 길이 너무나도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를 선택해야 하는 기간이 왔다. 사실 선택이라기보단 그냥 따라가는 것이었지만...(그 당시에 일반 인문계는 흔히 말하는 룰렛돌리기로 랜덤 지정 당하는 방식이었다.) 부모님께서 그렇게도 바라던 외고에 가기에는 약간 모자란 성적에 실망하던 부모님의 얼굴이 아직도 선하다. 하지만 방학동안 참여했던 선린 교육 프로그램으로 가산점을 얻어 선린에 지원할 수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오히려 좋을지도...?'라고 슬며시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내 유년시절의 마음 고생은 생각보다 지독했다. 부모님 세대에게 개발자란 3D 업종 그 자체였다.(아버지가 눈에 불을 켜고 화를 내면서 막으셨다. 말 그대로 진짜 불이 붙은 것 같았다.) 부모님과의 마찰로 매일 야위어가던 나는 결국 백기를 들고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내가 제일 후회하는 순간이다. 지금의 부모님이 제일 후회하시는 순간이기도...

4. 늦은게 어딨어 그냥 진행시켜!

운이 좋게도 대학을 해외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유학을 떠났다.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같이 수업을 들었던 한 사람이 있다. 머리가 백발로 성성한 어르신이, 그것도 본인 사업을 가지고 계시다는 분이 비즈니스에 도움이 될까 싶어 대학교에 진학했다고 하셨다. 더 놀랐던건 그 사업이 결혼 파티를 준비하고 직접 디제잉까지 하는 개인 사업이었다는 점이다. 나이가 무색할만큼 (사실 나보다 더 젊게 사셨던 것 같다.) 에너지가 넘치고 대단한 분이었다. 그 분이 하셨던 말이 기억난다. '인생에 늦은게 어디있나, 그냥 하고싶은걸 지금 하게나'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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