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포자가 된 경로

Felix Yi·2020년 5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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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반복적인 계산을 하면서 산수에 질려버렸다. 문제를 못풀면 손바닥을 맞는 경험은 수를 다루는 시간에 뇌가 긴장하게 만들었다.

무서우면 친해지려 하지 않는다. '빨리 해치우려'한다. 덕분에 산수는 외웠다. 나눗셈도 외웠다. 그때부터 수학의 의미를 느껴 알지 못하고 수학 시간의 고통에서 도망치기 위해서 머리속에 무작정 밀어넣는 방식을 고수해왔다.

난 고물상에서 가져온 컴퓨터를 국민학교 2학년 때부터 만지고 3학년 넘어갈 정도에는 운영체제 가상 메모리 확보(himem.sys/autoexec.bat/config.sys)나 포맷등을 자연스럽게 하고 컴퓨터 부품을 마음대로 갈수도 있었다.

고물상에서 가져온 286 컴퓨터였고, 부모님이 그게 뭔지도 잘 모르셔서 내 마음대로 이렇게 저렇게 마음 편하게 가지고 놀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3 모의고사 언어영역 만점, 외국어 한두문제 틀렸던 적도 있다. (선생님이 재미있고, 수업이 재미있으면 성적이 올라감) 고3의 그 꽉 막히는 수업시간이 싫어서 매 시간 양호실 간다고 수업을 빼먹기도 했다.

고3 모의고사때 대학은 가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에 정말 열심히 풀었는데 수학이 4점인가 나와서 차라리 찍는게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된 뒤 수학을 완전히 놓았다.

내 타고난 기질이 학교 교과 과정에 '왜' 배우는지도 모르고 반복만 하는 고통(수학,한문)을 피하게 했다. 고통을 오래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려는 내 기질이 수학을 아는데 방해가 되었다.

성인이 된 후 수학이 필요 없었지만, 지금 이직 때문에 알고리즘을 알아야 하는 상황이고, 알고리즘을 배우다며보면 수학이 필요하다고 해서 수학 공부를 무작정 시작한다. 프론트엔드가 너무나 노가다성이 짙어서, 재미는 있지만 내 체력을 생각하면 다른 미래도 고려하는게 좋게단 생각도 들었다.

몇 십년간 수학을 놓았더니 고통의 기억이 옅어졌다. 수학 기호를 보면 눈은 보고 있지만 두통과 함께 생각을 이어갈 수 가 없었다. 매번 다가오고, 교실에 앉아있어야만 했으니까. 도망칠 수 없는 죽음의 위협은 상당한 정신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지금은 언제든 책을 덮을 수도, 영원히 수학을 안 볼 수도 있는 선택이 존재한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으니 그때와 같이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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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누구와도 같은 시장 육체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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