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떠보니 개발자 - 1

Sol·2023년 3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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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의 아카이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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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나치게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또한 2022년에 작성하고, 2023년에 마무리하는 글입니다.


독학으로 개발을 공부하던 시절부터, 마주치는 오류나 새로운 생각들을 모두 에버노트에 아카이빙 하는 버릇을 들였다.
개발자로 취업하고, 반년 정도까지는 사견이나 감정 없이 글을 쓰고 블로그에 올렸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사적인 감정이 가득한 글들만 써댔다. 블로그에 올리기에는 부끄럽고, 변명스러웠다.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니 내 블로그는 텅텅 비어있고, 이력서에 써내린 경험들을 증명하기에는 아쉬웠다.

내가 봐도 내 이력서는 신빙성이 부족했다.
"개발자 블로그는 감성 없이 기술만 딱딱 적힌 게 좋아!"라는 편견 뒤에 숨고 싶었다.
하지만 이력서 사기범이나 허풍쟁이로 사는 게 더 싫더라.
내가 지나온 인간적인 실수, 감정적인 대응, 몇 번을 생각해도 부당했던 순간들.
이러한 부끄러운 기억들을 그냥 전부 써내기로 했다. 퇴고 없이, 각색 없이.


한 달에 적어도 한 번은 글을 쓰자.
다짐은 개같이 박살 났다. 변명을 하지 않기 위한 변명을 쓰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부디 이 회고 글이 나에게 하는 변명이 되질 않길 바란다.
지난 1년(2021.10 ~ 2022.10) 동안 나는 이렇게 지내왔다.

퇴사/이직

2021년 1월 개발자로서 처음 입사한 회사는 절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좋은 경험뿐이었다.
나에 대한 부족함을 많이 느꼈고, 좀 더 넒은 시야를 갖게 됐다.

아직 실 서비스를 운영하는 회사가 아니었고,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투자를 받는 단계였다.
그래서 퇴사 시기에 실 서비스에 대한 호기심과 갈증이 많이 생기게 됐다.

이직을 준비하면서 규모가 있는 회사보다,
작지만 실제로 서비스를 하고 있는 회사들을 찾게 됐다.
체계나 환경이 부족한 것은 늘 예상했기 때문에 별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2021년 10월 작은 스타트업에 이직하게 됐고 이 예상은 보기 좋게 찢어진다.

왜?

입사 이후 입 밖으로 소리는 못 냈지만, 계속해서 "왜?"란 말만 되니였다.
노션 페이지는 많지만, 필요한 정보는 보이지 않았다.
JS로 작성된 react-native 코드는 Webstorm으로 열자 오타가 쏟아져 나왔다.
프로젝트의 리포짓을 클론 해서 빌드하고,
시뮬레이터로 여는 이 간단한 과정이 이틀이나 걸렸다.
내가 받은 기기는 맥북 m1 pro였기 때문에 m1 오류의 가능성도 생각해야 했었다.
react-native와는 첫 만남이기에 모든 오류들이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었다.


우선 m1의 오류인지, 기존 프로젝트의 오류인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입사하자마자 야근을 하게 됐고, 멘탈이 많이 나갔다.
열심히 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 잘해야 하는데 잘 할 수가 없었다.

근본적인 의문들이 너무 많았다.
왜 프로젝트가 이 지경이 되도록 픽스가 없었는지
코드의 볼륨은 또 왜 이렇게 거대한지
백엔드 코드는 공유조차 되지 않고, 망망대해에 표류된 것 같았다.

다른 팀원들에게 도움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들도 모르는 게 많았고,
이전 퇴사자들의 레거시들이 많았었다. 물론 인수인계는 없었던 것 같다.
팀장까지 포함해서 모두 경력 2년 미만에 주니어들이었다.
딱딱한 팀 분위기, 소통은 없었고, 문제 인식은 존재하지 않았다.

어찌저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긴 했다.
m1 관련한 스크립트와 프로세스를 정리해서 별도의 리포지토리를 운영하기로 했다.

해결 방법에 대한 글을 작성 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쎄한 느낌은 왜 틀리지 않을까

이 회사의 가장 오래 근무한 팀장(1년이 좀 넘었다 들었다.)은 나에게 기존 서비스 코드의 리뷰 발표?와 개인 과제를 진행하고 자신에게 제출과 발표를 하라고 했다.

우선 코드 리뷰는 굉장히 성실하게 임했다.
오타를 수정하고, react-native-navigation 문서를 참고해 기존의 코드 중 오류를 발생하고, 의도치 않은 기능들을 수정했다.
앞으로 TS 마이그레이션을 미리 준비한다면 어느 부분을 수정해야 할지도 정리해서 발표했다.
처음으로 해본 코드 리뷰여서 열심히 준비했었다.

하지만 발표를 하면서 의아한 부분이나, 코드의 의도를 묻는 부분에서
돌아오는 대답들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여기서 이 navigation 함수는 index 1이 default 값이여서 이후 stack이 순서대로 쌓이는데 왜 0으로 지정이 돼있나요?

일부 codepush 함수에서 필수 매개변수가 빠져 있는채로 작성돼 있는데 수정하지 않아도 되나요?

이런 질문을 하면

전임 개발자가 해놓은거라 모르겠다.
일단 동작하는 코드에 있어서 왜 의문을 구하는지 모르겠다. 등등...

짜증이 섞인 말투로 이런 대답들을 했다.

이외에도 코드 컨벤션이나 handler 함수명을 통일하자는 의견을 제의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바꾸려고 하지 말아라."는 팀장의 말을 듣고,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팀장은 지나치게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다. 코드의 의문을 갖지 말아라?
내가 의욕이 앞서 실수한 것일까? 스스로 의심하고 의심했다.
하지만 그 때 팀장은 나를 따로 불러 얘기하기 시작했다.

Sol(나)의 말투가 전투적이다. 주변 사람을 위협하는 것 같다.
이미 몇명은 팀장에게 찾아와 불만을 토로했다.
대표님이 사무실에 있을 때는 오류에 대해서 얘기하지 말아라.
Sol은 아직 업무에 들어가기엔 이른 것 같다. 우선 스터디를 진행하고 있어라.

지금(2023년)까지도 정말 큰 스트레스로 남게 되는 일화다...
사실 이 부분 때문에 글을 올리지 않으려 했다.
나 같아도 이 글을 보면 "아 이 사람이 말을 거지같이 했나 보네 ㅋㅋㅋ"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너무 억울했다. 평소 큰 체구 때문에 오해를 많이 받아서 말투를 조심하고,
중학교 시절 발성장애가 있어 치료도 받았기 때문에 이런 오해 자체가 너무 슬펐다.
자연스레 나는 수동적인 사람이 돼버렸다. 무언가 의견을 내는 것이 두려워졌다.
노래 소리만 나오는 침묵의 사무실은 감옥같았다.

몇 번의 코드 리뷰, 몇 번의 개인 과제 나에 대한 평가는 계속해서 진행됐지만,
프로젝트와 서비스의 인수인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팀 회의에서도 제외됐다.
능력이 부족하고, 팀에 어울릴 수 없는 사람으로 판명된 것 같았다.
예상하지 못한 절망이었다.

이 글을 써가며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
스스로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을 과장해 표현하는 게 아닐까?
개인의 능력 부재를 타인의 문제로 돌리는게 아닐까?
사실 내가 문제인데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끝없이 의심했다. 억울함도 많고, 아쉬웠지만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성장할 수 없다.
변명은 그만하기로 했다.
나는 낙제점을 받은 것에 대해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다가오는 수습 3개월 차 그동안 감사했다고 인사를 전하러 갔으나
돌아오는 것은 정규직 채용이었다.

?

인사팀은 나에 대한 아니 개발팀에 대한 상황을 아예 모르고 있었다.
소통의 부재가 심각해도 너무 심각했다.
나에게 겉돌지 말고 적극적으로 일에 참여하고, 근무에 집중하라 요청을 했다.
인수인계를 받은 것도 없고, 팀 회의에 참석도 못 하게 하는 상황.
대체 나에게 무슨 요청을 하는 걸까?

이 무렵부터 팀장을 제외한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게 됐다.
나를 싫어할까 두려워했었는데.
오히려 나에 대해 전투적이라 생각한 사람은 전혀 없었고,
팀장이 인수인계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며 나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다른 팀원이 왜 나에게 의견을 표출하지 않냐며 되물어봤을 때는 울고 싶었다.

이러한 일들을 저지른 팀장은 갑작스레 퇴사 선언을 했다.

떠나는 날에는 자신이 해야 할 엑셀 업무를 나에게 넘겨주었다.
엑셀 내용 중 특정 코드가 잘못 작성돼 있는 것 같다는 내 의문에
내가 잘못 본 것이라며, 제발 그냥 업무를 열심히 하라는 말을 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잘못 작성된 것이 맞았고,
내가 엑셀을 정정하는 동안 입을 꾹 닫고있는 모습을 보면서 안쓰러운 감정을 느꼈다.
떠나는 날까지도 자신을 위해서 방어만 하다 가는구나 싶었다.

생각해 보면 그냥 약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실수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 했고,
의문을 공격으로 받아들일 만큼 업무에 자신이 없었다.
내 말투가 전투적이라 거짓말을 해서라도 내 입을 다물게 만들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냥 안쓰러웠다.
이 사람을 이해하고 포용할 만한 여유가 나에게는 없었다.

나는 좀 더 상냥한 말투를 연습하게 됐고,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좀 더 기르게 됐다.
최근 프론트엔드 팀 리드 역할을 맡았을 때,
소통에서 좋은 피드백을 받고 만족하기도 했다.
상황은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아야지. 지금도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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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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